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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Sep 09. 2023

* 앗! 나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

* 앗! 나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2023.09.09.토) *

나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2023.09.09.) *     


 - 앗! 나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만 5세부터 다니기 시작한 학교생활을 돌아보면 초등학교 때는 유독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시기였다.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어려서 챙김을 받기도 했지만, 엄마의 말씀을 빌리자면 앉아있는 아이 중에 제일 의젓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차분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무언가를 맡기기에 적당한 믿음직한 학생으로 보였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OHP(오버헤드 프로젝터(overhead projector)라는 것에 슬라이드를 끼워서 스크린에 내용이 비치게 하여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선생님은 슬라이드 박스 가져오는 일을 늘 나에게 맡기셨다.     


 - OO야~ 교무실 가서 슬라이드 박스 가져와~     


   난 그게 그렇게 좋았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맡겼다는 것이 좋았고, 아이들 사이에서 선택받았다는 것도 좋았다. 교무실에 들러서 무겁지 않은 그 슬라이드 박스를 가져다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의 그 뿌듯한 느낌이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그 선생님의 성함도 기억난다. ‘오긍연 선생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던 중년의 선생님이셨다.     


   사춘기 시절인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 냉소적인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리한 눈으로 선생님들을 바라보던 학생이었는데 중학교 시절 A 선생님이 나에게 교무실에 가서 커피를 타오라고 하셨던 일이 있다. 문제는 내가 커피를 타본 적이 없었던 것. 우리 집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3 때 이후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른들만 마셨기에 커피 맛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이후였다.     


  믹스가 없던 그 시절, 교무실에 가니 커피가 있었는데 커피와 하얀 설탕은 알겠는데, 또 다른 하얀색 즉, 프림은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TV에서 봤던 갈색의 커피색이 나오도록 이것저것을 섞어서 갖다 드렸던 것 같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었다.     


 - 선생님이 나에게 커피 타오라고 하셨는데, 커피를 타본 적이 없어서 그냥 막 섞어서 갖다 드렸어. 왜 우리 집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거야!     


   좀 더 이성적이 되었던 초기 직장인 시절, 다른 교무실 선생님이 우리 교무실에 오시면 보통 이렇게 말씀들을 하셨다.     


 -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커피 한잔을 권하시던 분이 직접 커피를 타서 대접하면 될 텐데, 가끔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계셨다.  

   

 - B 선생님~ 커피 좀 타다 갖다주시겠어요??     


   여기서 B란, 나이가 어린 선생님이었다. 그럼 B 선생님은 일어나서 커피를 타서 갖다 드리셨다. 사실 나이가 어린 선생님이면 바로 나여야 했는데, 나에게는 그 말을 했던 사람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어쨌건 누군가에게 커피를 타다 갖다주어야 한다는 것에 나는 (속으로) 발끈했었고, 그런 상황이 나올 것 같으면 교무실을 나왔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 왜 커피를 타다 주어야 하는 거지, 누군가가?      


   다른 학교에 있는 C가 말했다.     


  - 새로 임용된 실무사님에게 교장 선생님께 커피를 타다 드리는 것이 하루 일과의 첫 번째 업무라고 전했더니, 그 실무사님이 그건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내가 말했다.     


 - 당연히 그 사람 업무가 아니지. 자기가 타 먹으면 되지, 왜 다른 사람이 타서 갖다주어야 하는 거지?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되던 업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데??     


   그래서 C 학교에서는 캡슐 커피 머신을 샀다고 한다. 그것도 교장실이 아니라 행정실에ㅠㅠ 교장실에 하나 놓아드리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대접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면 흔쾌히 할 수 있는 좋은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그걸 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물론 나도 다른 분에게 이런 일을 부탁드린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다ㅠㅠ     


   지난 1학기가 끝나가는 때에 한 학기 동안 고마운 분들을 생각해 보고 무언가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무엇을 대접하는 것이 나을까 내내 고민만 하다가 결국은 그만두었다. 이유는 인원 때문. 어림잡아 생각해 보니 40명 정도가 되었고, 거의 교직원의 절반 인원이었는데, 거창하게 할 일도 아니었고 ‘나머지 절반은 또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걸렸던 것. 그렇다고 전 교직원을 하는 것도 우습고. 식사를 대접하면 좋겠는데 어디서 어떻게 등등…. 머리만 아팠고 한 달 넘게 고민만 했었다.     


   가장 챙기고 싶은 분들은 급식실이었다. 학교가 크다 보니 식사 인원이 천명 정도 되는데 급식실 조리원분들이 너무나 적다고 들었고 스무 명이 넘던 인원이 지금은 열 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식사하러 내려가면 일일이 챙겨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들었다고나 할까….     


   2학기가 시작되고부터 또 고민하던 일을 이번 주에 있던 내 생일날에 작게 진행했다. 기준은 이것이었다.    

 - 티 나지 않게. 거창하지 않게. 작게.    

 

   무엇이든지 과하게 진행하는 나의 특성을 알기 때문에 잡은 기준이었고, 수많은 항목 중에 선택된 캔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업체를 검색했는지 모른다. 40명 정도를 하는데 20여 만 원이 들었지만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사실 한 달 정도 카페인을 끊어보기 위해서 8월 초부터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았다. 8월 6일까지 하루에 2잔 마시는 커피를 8월 7일 하루아침에 갑자기 끊겠다고 하니 가족들이 진짜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 왜 그러는 건데??? 어제까지 2잔씩 마셨잖아???     


   하기로 작정하면 또 과감하게 진행하는 나이기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졸음이 쏟아지는 나였는데,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데도, 전혀 졸리지 않았던 것. 커피는 그동안 나에게 무엇을 했던 거지???     


   모닝커피와 점심 이후의 커피가 당연하던 내가 결단을 가지고 한 달을 끊고 있던 커피를, D와 식사를 하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셨다.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가 커피를 끊고 있다는 사실이 1도 생각나지 않았다. ㅠㅠ. 아마도 D와의 식사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던 것이 분명하다. 커피를 절반 정도 마시다가 갑자기 외쳤다.     


  - 앗…. 나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ㅠㅠ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물을 마셨던 내가 오늘 드디어 커피를 다시 마시기로 했고 내 옆에 커피 한잔이 놓여 있다. 가족들이 또 말한다.     


 - 고작 한 달 끊을 거였어???     


   한 달 동안 커피를 끊어보니 피부는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다시 커피와 함께하는 삶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마신다는 것을 떠나서, 생각하는 시간, 차분해지는 시간과 돌아보는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또 그 시간이 나에게는 작은 기쁨이라는 것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     


*** 내 생일날 E가 주었던 카드….


   이게 내 모습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지만….*^_^*….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카드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카드를 오래간만에 받아본다.     


   E가 적어놓은 문구….     


 - 모든 순간순간들이 웃음으로 가득했으면 하는….     


   모든 것이 고마울 뿐….     


#커피  #OHP  #믹스_커피  #커피_타기  #캔커피  #커피_끊기  #카페인  #커피와_함께하기  #생일_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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