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vecin Sep 16. 2023

* 저, 엄청 아프거든요! (2023.09.16.토)


엄청 아프거든요! (2023.09.16.) *     


  - 저, 엄청 아프거든요!     


   언젠가 아침 등굣길에 미끄러져서 깨진 무릎에 거즈를 붙였다는 A가 찾아와서 상처를 보여주었다. 놀라서 질문했다.     


 - 아…. 엄청 아팠겠다…. ㅠㅠ

 - 네…. ㅠㅠ

 - 이만해서 다행이야!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주변에 아이들 없었어??

 - 있었어요…. ㅠㅠ

 - 앗! 진짜??? 괜찮았어??

 - 창피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후다닥 일어나서 올라왔어요…. ㅠㅠ

 - 진짜??

 - 그랬더니 더 아파요…. ㅜㅜ     


   또 (작은) 상처가 났다면서 밴드를 받으러 교무실에 오는 아이들도 많다. 살짝 긁히기만 해서 상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미미한데 죽을 것같이 아픈 표정으로 밴드를 달라고 하니 안 줄 수가 없다. 그 표정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 좀 있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 딱지가 생기면 괜찮을 거야!

 - 요즘 녀석들은 엄살이 심해!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냥 보낼 수 없어 조심스럽게 밴드를 붙여준다. 굳이 밴드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데 밴드를 붙여야 한다는 B에게 물었다.    

 

 - 무슨 이 정도에 밴드를 붙여! 밴드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 붙여야 해요!!!

 - 왜요??

 - 패션이거든요!!!

 - (어이없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     


   그러면서 다른 쪽에 붙어있는 밴드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상처 난 곳에 다양한 캐릭터의 밴드를 붙여서 패션 감각을 뽐내고 있었다. 상처 난 곳에 붙여진 캐릭터 밴드가 마치 훈장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상처로만 보이지 않고, 이제야 붙이고 싶은 밴드를 붙일 수 있는 마땅한 핑계가 된 것 같아서 즐거워 보이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의 세상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상처에 붙이는 밴드도 종류가 다양하다. 상처 난 부위를 티 나지 않게 감출 수 있는 살색 밴드도 있지만, ‘이건 상처야!’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캐릭터 무늬의 밴드로 아예 눈길을 사로잡는 다양한 패션 밴드가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그리고 이걸 요즘 녀석들은 마음껏 활용하는 것이고.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 저, 다쳤어요!

 - 저, 상처 났어요!

 - 저, 엄청 아프거든요!

 - 여기 좀 봐주세요!



   살다 보면 내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다. 아무리 보아도 착한 구석이라고는 없고 오히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물인데도 아무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C나, 흥청망청 돈을 써대는데도 여전히 풍족한 D나, 라면과 담배로 평생을 살고 있지만 건강하게 살고 있는 E나, 3년 동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수능이 대박이 나서 좋은 대학에 갔다는 F나….


   이와 달리 착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을 소소하게나마 돕는 삶이지만 때마다 어려운 일이 생기는 G나, 외식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근검절약하는 삶이지만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H나, 무슨 일이 생길까 그토록 건강을 챙기는데도 언제나 허약한 I나, 50분의 수업이 끝난 뒤 10분의 쉬는 시간에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책상에 앉아서 죽어라 공부하는 데도 좋은 성적이 아니었던 J나….     


   가장 이해되지 않는 일은, 1+1=2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왜 1+1=2가 되지 않고 1+1=0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1+1=100이 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때로는 왜, 1+1=-100이 되기도 하는가!     


 - (전도서 8: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하게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때가 더 많아서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30기를 위한 학교 설명회 전날 2층 교실을 둘러보다가 컴퓨터실 앞에서 무언가를 가리키면서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3학년 여학생들을 만났다.     


 - 뭐가 우스운 건가요??

 - 이것 때문에요….

 - 뭔데요??

 - 컴퓨터실 밖에 붙여놓은 사진 중 일부를 누가 칼로 오려놓았는데, 컴퓨터실 안이 다 보인다고 안쪽에서 하얀 종이를 붙여 놓으셨어요….     


   무슨 말인가 하고 보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사진의 오른쪽 작은 부분을 누군가가 칼로 오려내었는데 안쪽에서 종이를 붙여놓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오려진 것이 아니라 원래 무늬인 것처럼 티가 나지 않고 깔끔했다.     


 - 와~~아!!! 누가 이렇게 오려내었을까??

 - 그러니까요!!

 - 와~~~ 내가 좋아하는 장난이야~~~ 선생님은 이렇게 재치 있게 장난하는 게 좋더라~~

 - 네????     


   멋진 사진에 스크래치 즉 상처를 낸 것이지만, 그 나름대로 하나의 무늬가 되었다는 것이 내 눈길을 끌었고 생각에 잠기게 했다. 이런 글을 읽었다.    

 

 - 흉터가 돼라. 뭔가를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 Be a Scar. Do Not be Ashamed of Living through Something.

 - (네이이라 와히드 Nayyirah Waheed)     


 - 흉터 : 생물의 몸에 난 상처가 아물면서 남는 흔적     


   ‘흉터’란 상처가 아물면서 남는 흔적이라고 한다. 상처가 나서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아물게 된다’라는 것에 희망이 생기게 되고, 아물게 되면, 그 흔적이 남는다는 것도….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뭔가를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에 기뻤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살아 내면서 남는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로 들렸으니까.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에게는, ‘흉터’라는 단어에서 멈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뭔가를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의 희망찬 의미로 나아가기에는 시간, 오랜 시간,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건 상처’라는 것을 예쁘게 포장할만한 밴드도 없고, 티 나지 않게 숨길만한 밴드는 더더욱 없으니, 누군가 이런 밴드가 있으면 나에게 선물해 주면 좋겠는데….     


   누구 없을까…. 이런 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컴퓨터실 복도에 붙여져 있는 사진….     


   약간 티가 나더라도 보기에 나쁘지 않으면 좋으련만….     


#상처  #밴드  #딱지  #패션_밴드  #캐릭터_밴드   #전도서_8장_17절  #흉터  #Scar  #Nayyirah_Waheed  #네이이라_와히드  #흔적  #아물다  



작가의 이전글 * 앗! 나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