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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Aug 26. 2023

* 저렇게 사랑이 쉽다면야(2023.08.26.토) *

저렇게 사랑이 쉽다면야 (2023.08.26.) *     


 - 저렇게 사랑이 쉽다면야….     


   사람이나 제품이나 한번 선택해서 관계를 맺은 것은 웬만해서는 잘 바꾸지 않는다. 한번 선택하면 잘 바꾸지 않지만, 선택되기까지는 좀 긴 시간이 걸린다. 이런저런 나의 기호에 맞아야 하는데 그렇게 내 마음에 ‘딱!’ 맞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어떤 제품의 이모저모를 알아보고 괜찮겠다 싶어서 구매했건만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어서 그냥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탐색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장바구니에 넣어서 실제 구매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는데, 그 오랜 기다림을 거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직접 사용했는데 결국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긴 한숨이 나온다. 이 루틴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니까.     


  사실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단지 마음에 드는 것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런 순서로 진짜로 나의 것이 된 제품들이 오랜 시간 계속 출시되면 좋을 텐데, 리모델링을 넘어서 아예 없어지는 제품들도 있다. 정말 내 맘에 쏙! 들었건만, 단종된 제품들이 있는 것이다. 그럼…. 다시 이 루틴을 시작해야 한다.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아 돌고 도는, 오랜 방황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휴….     


  물건을 살 때는 사용하던 제품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구매해야 하고 한번 구매할 때 1개만 사지 않고 좀 더 여유 있게 사놓는 편이다. 불안한 상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특히 나의 애장품이 되어 오랜 시간 사용하던 제품들이 단종되어 화들짝 놀라는 순간들을 몇 번 경험한 뒤, 마음에 드는 제품들을 좀 많이 구매해 놓기로 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제품들은 유명한 브랜드가 아닌, 중저가의 상품들이다. 몇 년 전, 내 마음에 쏙 드는 A 립틴트 10개를 구매했었다. 그 틴트를 받아들었던 2월부터 3년여 동안 입술을 붉게 만들 일이 없을 줄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올해 초부터 마스크를 벗고 다시 입술에 틴트를 바르게 되면서, 그때 10개를 사놓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 자신을 칭찬했다. 역시나 이 제품도 그사이 단종이 되었던 것. 사놓은 틴트가 사라지기 전에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 내가 사놓은 립틴트가 몇 개인지, 그중에 내가 사용하던 A 제품과 같은 것들은 없었다. 아, 얼마나 오래 찾아야 하는지…. 왜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이 이렇게 없을까…. 틴트 종류는 수만 가지인데 말이다.     


  누군가 선물한 제품이나 다른 사람이 유명하다고 하는 제품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한쪽에 두어야 한다. 언젠가 B와 함께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B가 추천했던 블러셔를 (나에게 맞지 않는) 거금을 주고 샀건만, 나는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에게 맞지 않아서. 결국 그 블러셔는 분쇄해서 파우더에 섞어서 사용했다. B가 이걸 알면 까무러칠 일일 듯하다. 아무리 유명하고 비싸더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사용할 수 없으니까….     


  나에게 맞는 립틴트나 블러셔를 찾는데도 이렇게 긴 시간이 쌓여야 하는데,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고 만나게 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과 셀 수도 없는 세월의 쌓임과 누군가의 특별한 도움이 있어야 한다.

      

  물건이야 많은 돈을 주고 구매했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한쪽에 버려두면 되지만, 사람은 나와 맞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을 일일이 만나고 이야기해 볼 수도 없으니…. 설명서를 보고 괜찮다 싶어서 구매했지만, 실제는 실망했었던 물건처럼, 이야기해보고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 아닌 것 같아’라고 느껴졌던 경험이 얼마나 많은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얼음같이 차갑고 냉혹했던 투란도트가 칼라프 왕자의 키스 한 번에 그 마음을 돌이키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 저렇게 사랑이 쉽다면야….     


  ‘한눈에 반한다’라는 것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얼음이었던 사람은 쉽게 불로 변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거니까…. 마찬가지로 불이었던 사람은 얼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얼음이었다가 불로 변하거나, 불이었다가 얼음으로 변한 것도 모두 경험한 나로서는 투란도트의 사랑법이 생소하지는 않았다. 다만 서로를 발견한 그들 사이에 쌓였어야 하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쉬웠을 뿐…. 하긴 칼라프도 투란도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키스에 사랑에 빠졌으니, 서로 비슷한 사람들인 걸까….     


  어쩌면 그런 속전속결의 사랑이 더 쉽고 간편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머리 아픈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제하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낭만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순수할 때는 이런 사랑법이 딱! 인데….    

 

  그런데, 나는 이미 순수하지 않은 시기로 접어들었는데 머리보다 그냥 마음이 움직이는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마음을 접어두고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계산기 두드리는 법을 잊은 걸까…. 아…. 계산기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계산해 보아야 하는 걸까…. 아…. 나는 계산을 해본 적이 없는데…. 

    

  사용하던 A 틴트와 같은 제품을 찾지 못해서 다른 제품들을 기웃거려야 하는 생각에 피곤하지만, 조만간 나에게 맞는 제품을 찾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며, 온갖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시간을 들이는데 이제는 지친 나이지만 그중에 몇 명은, 한 명은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만나게 되지 않을까 작은 소망을 하나 가져본다.     


  결국은, 찾게 되겠지….      

    

*** 개학하기 전날 보았던, (2023.08.15.(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오페라 극장이 아닌 토월극장에서 진행되었고 첫날 공연이어서 조금 걱정했지만, 상상 이상의 실력과 무대 연출을 보여주었던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     


  이렇게 빨리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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