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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Aug 19. 2023

* 시골에 가서 살 수 있겠어요?? *

* 시골에 가서 살 수 있겠어요?? (2023.08.19.토) *

시골에 가서 살 수 있겠어요?? (2023.08.19.) *     


- 시골에 가서 살 수 있겠어요??     


  정말 뜨거운 여름이다. 땅이 불타고 있는 듯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듯한 이 느낌…. 어젯밤에는 진짜 더워서 내내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었고 새벽에도 더위에 잠이 깬 뒤 도중에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이 있어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데, 에어컨이 없던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또 갑자기 드는 생각은, 자취하는 아이들 집에는 에어컨이 있을까 하는 생각…. 만약 에어컨이 없다면 어찌 지내고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3주간의 방학 동안 학교는 페인트 공사를 했고 분홍색, 노란색 등등의 벽면이 모두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아주 환하고 밝아졌지만 사실 내가 선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깔끔하고 차가운 분위기보다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겨울에는 엄청 추워 보일 듯해서 걱정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예전의 (지저분한) 교실 분위기가 아니라며 많이들 좋아한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없을 때의 학교 복도와 아이들로 넘실대는 학교 복도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개학하기 하루 전 아이들이 없었던 복도는 그야말로 싸늘하고 생명력 없는 회색빛이었지만, 개학한 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복도는 복도 자체가 춤추는 것 같이, 숨 쉬고 살아 움직이며 생명력 넘치는 밝고 화사한 하얀빛의 ‘생명체’ 복도였다. 이런 놀라운 느낌이라니!!! 그래서 이번 주 주말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 아이들 자체가 빛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복도를 뛰어다녔던 서로 다른 기수의 졸업생들이 연달아 방문했다. 21기 여학생 2명, 17기 남학생 2명…. 내가 담임했었던 17살의 아이들이 어느새 25살과 29살이 되어서 나타났다. 물론 그전에도 자주자주 얼굴을 보여주어서 대학교와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로 시간을 가졌었는데 이번 방문의 화두는 ‘직장과 취업’이었다.      


  몇 번의 이직을 하여 3번째 직장에 정착한 A, 직장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전문직에 도전하여 지금 결과를 기다리는 B, 또 전공을 살리는 직업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C와 D까지, 모두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중 A와 B는 공대를 나온 일명 ‘엔지니어’였는데 이런 말을 했다.     


 -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그만두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라게 하는 문구여서 무슨 말인지 되물었는데, 말 그대로 일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고 한다. 공대를 나와서 이런 위험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공부할 때는 몰랐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E는 이렇게 말했다.     


 - 회사마다 다른 거야.     


  지방에 있어서 더 힘들었다는 A가 이제는 좀 더 나은 직장에서 안정된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좋아 보였고, 전문직업인으로의 꿈을 꾸며 오랜만의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는 B가 사인을 해달라며 내 책을 내미는 모습은 나를 더 기쁘게 했다. 그가 가져온 책에 이렇게 적어 주었다.    

 

 - 너의 삶이 누군가의 모델이 되기를 바라며….     


  A와 B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 다른 사람의 돈을 내 호주머니에 넣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그 녀석들을 보며, 내가 처음 맡았던 남자반의 반항아였지만 그래서 내가 엄청 예뻐했던 A와, 무뚝뚝한 회장이었지만 어른과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해본 적은 처음이라며 편지도 많이 썼었던 B와의 소중했던 시간을 소환해 보았다.     


  수다쟁이였던 C는 얌전해졌고, 얌전하고 별말이 없든 D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던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서로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서로의 좋은 친구로 내 앞에 나타나 준 것도 무척 감사했다. ‘기드온의 300 용사’라는 학급 성가로 전교를 떠들썩하게 했었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추억 여행을 하기도 했다. 아름다웠던 그 시절….     


  시간에 쫓겨 헤어지면서 B가 아쉬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 선생님 이야기 들으러 온 건데….    

 

  이틀 동안 졸업생들과 옛날 일을 이야기하며 들었던 생각은 ‘옛날에 열심히 살았구나’였다. 정말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아이들과 함께해 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그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고, 무지무지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 힘으로 지금도 예쁘고 아름답게 자라가는 중이었고, 세상 속에서 꿋꿋이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했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 시골에 가서 살 수 있겠어요??



  그 옛날 F가 이런 말을 나에게 던졌을 때 그 말 뒤편에는 이런 느낌이 묻어있었다.     


 - 설마…. 시골에서 살 수 없지…???     


  그리고 그 말은 정확하게 나에게 맞는 말이기도 했다. 시골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G는 백화점과 S 커피점이 반드시 집 주변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백화점과 S 커피점은 하나도 관계없지만, 누가 보아도 시골과 맞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하지만 F에게 나는 말했었지….  

   

 - 나는 누구와 함께인지가 중요한 사람인데, 시골이든 어디든 뭐가 어렵겠어?? 네가 나를 데려가 준다면야, 살 수 있지!     


  2학기가 시작된 이번 주,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왜 아직도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걸까요?? 방학 동안 고민하셨겠죠…?? 그렇다면 노트에 아직도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유를 적어 보세요.     


  아이들은 진지하고 심각하게 들었고 노트에 각자의 이유를 적었다. 내가 출근하면서 항상 하는 생각을, 아이들에게도 해보도록 권유한 것이다.     


 - 내가 (아직도) 이 학교에 등교하는 이유

 - 내가 (아직도) 이 학교에 출근하는 이유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등교하는 이유에는 입시와 관계된 것들도 있고 급식과 교육과정 등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내가 아직도 이 학교에 출근하는 이유는 내 말을 들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이기 때문이고 이걸 매일 아침 짚어보며 출근한다는 것을 말해 본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대학교가 목표이겠지만 졸업하고 찾아오는 아이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입시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맡았던 아이들, 나를 찾아왔던 아이들에게는.     


  여름이 끝나가기는커녕 더 짙어지는 모양새이지만, 몇 년 뒤 졸업하면 찾아올 이 아이들과 함께 나누게 될 이야기,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과의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로 채워질 나와 너와 우리의 2학기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소망해 본다. 개학이 되었다.    

 

************************



*** C와 D가 가져온 꽃다발….     


 꽃바구니도 아닌, 꽃다발을 사 들고 온 학생들은 오랜만이었다. C가 이렇게 말했다.     


 - 선생님께서 꽃을 좋아하셔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해 주는 아이들이, 나에게는 있다.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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