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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Aug 12. 2023

* 머리 예쁘게 하시고! (2023.08.12.토) *

머리 예쁘게 하시고! (2023.08.12.) *     


  - 머리 예쁘게 하시고!     


  1년에 2번 미용실에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믿지 않는 그 사람들이 이상했다.

      

 - 왜 믿지 않는 거야??     


  하긴 웨이브가 탱글탱글하고 윤기까지 나고 있는데, 그 머리가 6개월에 한 번 하는 파마머리로 믿어지기는 어려웠을 터.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빗지 않는 것. 그리고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 그리고 외출하지 않는 날은 간간이 감지 않아보는 것. 그럼, 1년에 2번만 머리에 손대면서 생동감 있는 모발로 지낼 수 있다.    

 

  사람이나 업체나 한번 정한 것을 웬만해서는 잘 바꾸지 않는 나로서는, 미용실도 20년 넘게 같은 선생님 A에게 하고 있다. ‘같은 곳’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A가 미용실을 바꿀 때마다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가 사는 곳 주변에서 돌고 계셔서 다니는 데 어려움은 없다.     


  이사 간 곳 주변에 있던 큰 미용실에 들어섰을 때 처음 방문했다는 나에게 걸어온 디자이너가 A였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내 머리를 담당하고 있다. 세탁소와 미용실은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들었는데, 이 말이 진실임을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보다도 내 머리를 더 잘 알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파마를 해야겠다고 해도 손상된다고 말리기도 하고 예쁘지 않다며 본인이 알아서 색상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말이 그렇게 믿음이 갈 수가 없다. 웨이브가 잘 풀어지지 않는 내 머리를 보면서 늘 말했다.     


 - 미용실에 돈을 주지 않는 머리죠.



  내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스타일과 색상을 좋아하는지, 무얼 싫어하는지 알고 있는 A이기에, 가서 인사하고 앉기만 하면 된다. 파마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서로 대화할 수도 있을법하지만, 별로 말하지 않는 나의 특성을 아는 A도 이것저것 묻지 않는다. 그래서 A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묻지도 않았고, 나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전혀 불편하지 않은 고객과 미용사의 관계였다. 주로 방학 때 2번 오는 고객 정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로 인해서 여동생까지 A와 만나면서 불안불안했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본인 이야기하기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여동생님이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작년에 내 머리 스타일을 보고 내가 다니는 미용실과 디자이너를 캐물으셨던 B에게 나는 신신당부했었다.

     

 - 20년 동안 다녔지만, 저에 대해서 모르셔요. 선생님이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데 그걸 잠시 잊으신 B가 A를 찾아와서는 기어코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다. 지난겨울 A가 나에게 말했다.     


 - 선생님이시죠??

 - 아…. 네….     


  숨길 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부터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불편함이라니….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본인의 이야기도 하지 않던 A가 군대에서 자극받아 제대한 후 다시 입시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하며 나의 조언을 구한다. 미용실에서 입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중간에 머리를 좀 자르는 일을 더 하면서 작년부터 횟수가 1번씩 늘었다. 멋쟁이들은 파마를 한 듯 안 한 듯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또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작년에는 좀 더 강하게 해달라고 주문했었다. 여동생이 내 머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었다.     


 - 평생 파마를 안 할 생각인가 봐?? 절대 풀어지지 않겠는데??     


  이번에 A에게 이 말을 했더니 폭소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강하지 않게 했고 머리를 좀 잘랐다. 짧아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를 알고 있는 A는 그걸 생각해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조절해 주었다.   

  

  1년에 2번 미용실에 가면서 하는 행사 중의 하나는 잡지를 보는 것인데, 이번에는 잡지가 없다면서 어떤 책을 준다. 어떤 작가가 만화체의 그림과 짧은 글들을 쓴 책이었는데 앞에 필자의 사인이 있었다. 책을 보며 내가 말했다.     


 - 음…. 저도 책을 냈는데, 혹시 관심 있으세요??     


  깜짝 놀란 A가 말한다.     


 - 당연하죠! 알려주세요! 당장 살게요! 그런 건 막 홍보해야죠!     


  20년 동안 함구하고 있던 서로에 관한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20년 동안 한 사람에게 내 머리를 맡겼다는 것이 그냥 흡족할 뿐이다. 이번에 A에게 말했다.     


 - 선생님~ 저는 선생님밖에 모르는데, 아프시면 안 됩니다~     


  A가 없다면 내 머리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또 그 사람과 익숙하게 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다 말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20년 동안 맺어진 이 관계를 누구와 대체할 수 있을까….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인 백아(伯牙)와 그의 음악을 이해해 주던 친구 종자기(鐘子期)의 관계를 일컫는 ‘지음(知音)’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벗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가장 의미 있는 관계는 나의 ‘음’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데, 그런 사람이 나에게 있는지 생각해 본다. C는 지음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 처음 만났는데도 내 마음의 '음'을 아는 사람, 마치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 이유도 모른 채 바로 마음이 연결되는 사람, 무슨 말을 할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는 사람    

 

  생각도 못 했는데 ‘아, 지음인가?’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일보다, 요란한 ‘나만의 음’을 이해하고 알아주고 들어주던 지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원해지고 멀어져서 나를 서글프게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 1년에 2번 하는 머리, 예쁘게 하시고!     


  1년에 머리를 2번 한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말해 준 D에게 대답해 본다.     


 -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좀 붉어졌어.     


  나의 음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관계들이 잘 지속되도록 해야 할 텐데….   

  

*******************************     


*** E에게 소개받아서 내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가 좀 발전해서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좋던지!     


  F 대표와 그의 지음들, 같은 뜻을 품고 회사를 함께 차린 동료 3명도 만났다. 멋진 여성 커리어우먼들이었다.     

  격려하기 위해 메시지 화분을 골라서 보냈다.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기를, 화분도, 회사도! 


  또 무엇보다 그들의 관계, 지음(知音) 이 더 견고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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