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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Oct 14. 2023

* 노력하지 않아도 (2023.10.14.토) *

노력하지 않아도 (2023.10.14.) *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 외부 강의를 듣기 위해 선택했던 곳은 S대학교 평생교육원이나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등이었는데 그나마 학교에서 가기가 쉬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 저녁에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서는 7교시가 끝나자마자 나와야 했는데, 몇 년 전까지 진행했었던 일을 지금 돌아보니 어떻게 했었나 싶다. 아마도 ‘배우고 싶어~’라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A가 물었다.     


 - 그랬으면 박사 과정을 하지 그랬어?

 - 생각했었고 진행했었죠. 그런데 학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지금은 글을 쓰고 있고요….     


   S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는 글쓰기를 비롯한 상담, 심리학, 세계사 등 다양한 강의를 들었고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에서는 음악과 미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특히 듣고 싶은 분야는 음악이었지만, 아카데미에서의 음악 강의들은 모두 평일 오전이어서 들을 수가 없었기에 주말에 개설된 미술 강의만 수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평일 목요일 저녁에 음악 강의가 개설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 강의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왜냐하면 B를 만났었기 때문이다.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150명이 넘게 많은 사람이 참석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평론가 C의 전문적인 강의도 좋았다. 어느 날 강의실을 개조한다고 사람들을 앞으로 앉게 하는 중에 누군가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B였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에 고개를 숙여 인사만 하였는데 단정한 옷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수강자 중 가장 연세 있어 보이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B와 스승과 제자인 듯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예의 바르게 조용조용 말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B를 보기 위해서 신나게 아카데미로 갔었다. 강의가 끝나는 12월 중순까지 말 한마디 나누어 본 적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평일 목요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가끔 B가 빠지는 날은 속상했지만,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모르는 척 보거나 가끔 스쳐 지나가며 인사하는 걸 좋아했었다. 강의가 끝난 뒤 10분 정도 뒤에 수많은 엘리베이터 중 D 엘리베이터를 타고 E 통로를 통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짜 기뻤었다.     


   강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서글픈 마음으로 참석했고 강의가 끝난 뒤 B를 눈으로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날따라 3곳의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람들이 한가득 줄을 서 있어서 다른 곳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고 내 앞의 사람들이 내려간 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다니,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겠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옆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멈칫 멈췄다. 바로 거기에 B가 스승과 함께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옆을 스쳐 주차장으로 갔고 B는 스승과 헤어져서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예술의전당 대한음악사 복도 양옆에 있는 유리 벽면을 통해 뒤따라오는 B를 보면서 주차장으로 갔고 그렇게 이별하는 줄 알았다. 그때 내가 신었던 와인색 구두의 ‘또각또각’ 굽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던지, 지금도 내 귀에 선명하다.     


  주차장 몇 층에 내 차가 있었는지, B는 또 몇 층으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차를 탄 후 보통 때처럼 F 게이트로 나가려는데 게이트 공사를 한다고 차를 돌려야 했다. 내 차를 돌리면서 내 앞을 마주 보며 오는 B의 차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 아! B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관계는 안 되는 것이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될 관계는 되는 것    

 

   이렇게도 해석된다.     


 - 기회와 때가 올 때 일이 이루어진다.     


   오래전 G는 이렇게 말했다.     


 - 서로 노력해야 해!     


   관계를 맺는 데에 ‘노(오)력’, 그야말로 ‘노오오오오력’ ‘힘씀’ ‘애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맞는 걸까…. 그렇게 해야 ‘될 관계’가 되는 걸까…. 노력하지 않아도 ‘될 관계’는 된다는데….     


   B를 보아서 좋았지만, B를 못 보는구나 하고 상심하고 있을 때, 몇 번을 보내고 탔던 엘리베이터 때문에 B의 마지막을 보고, 차를 돌리다가 또 보게 된 B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시절 인연’이란 단어를 찾아본다.    


   항상 타던 엘리베이터를 몇 번 보내고 뒤늦게 탔다가 그토록 보고 싶던 B와 마주쳤던 이 기억은 그 이후로 나를 많이 바뀌게 했다. 무언가 놓쳤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 오늘은 누구를 만나게 하시려고 일부러 늦추시는 걸까….    

 

   야간자기주도학습 감독을 끝내고 아이들이 내려가기까지 10여 분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지막 정리를 하고 중앙현관문을 잠그고 천천히 1층까지 내려오다가 깨달았다.     


 - 아! 물통에 물을 담아 두고 티룸에 그냥 두고 왔네!     


   1층에서 H 집사님께 전화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10여 분 동안 내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B와의 이야기를 소환해 보며 생각한다.


- 그때 말이라도 한번 해볼걸….     


***********************     


*** I 선생님이 물었다.     


 - 선생님, 분홍색이 좋으세요, 보라색이 좋으세요??

 - 음…. 둘 다 좋은데…. 하나만 고르라면, 분홍색…??     


   갑자기 나에게 갖다주었던 장미꽃 묶음!     


 - 와우~~~ 이게 뭔가요??

 - 꽃다발 속에서 선생님께서 좋아하실만한 꽃으로 만들었어요~     


   엉망이었던 책상 위에 꽃을 놓아두니 무언가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아침에 와보니 꽃병이 없었다.     


 - 아! 어디 갔지??     


   I 선생님이 말한다.     


 - 제가 퇴근할 때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어요!

 - 아??? 냉장고에 꽃을요??

 - 냉장고에 넣어두면 좀 오래 가거든요!     


   퇴근할 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출근하면 다시 냉장고에서 가져다 놓았다. 며칠을 이렇게 반복하니 꽃이 오랜 시간 생생하다. 그런데, 좀 더 긴 시간 이 생생함과 화려함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노력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는 관계들….

   

   지금, 이 꽃이 냉장고에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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