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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Feb 03. 2024

* ? ! (2024.02.03.토) *

* ? ! (2024.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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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으면 왜,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는 걸까요?>라는 기사를 읽었다. 노인은 청년보다 비언어적 표현 인식이 어려워서 자기가 들은 것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불안하기 때문에 방금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한다고 하니, 대화할 때는 리액션을 크게 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거나 경력이 조금씩 쌓이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 말고도, 말이 많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언젠가 3년 차인 A 선생님이 말했었다.     


 - 선생님~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서, 종례가 길어져요. 제가 말하면서도 제 말을 끊지 못하겠어요. 어떻게 하죠??     


   그 말에 내가 대답했었다.     


 - 선생님이 그러니, 저는 얼마나 길겠어요. 저는 그냥 다 말하는데~ *^_^*     


   나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말을 줄이고 꼭 필요한 말만 하면 좋을 텐데, 나는 왜 잘되지 않는 걸까. 말을 짧게 해야 진짜로 들려주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릴 텐데….     


   쉽고 단순한 것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무엇이든지 가득 채워야 하고 길게 길게 만든다. 어려운 것을 쉽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전문가일 텐데, 그런 분야에 전혀 소질이 없는 내가 3장으로 만들었던 회의자료를 한 페이지에 쏙 들어가는 자료로 만들어내었던 B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비워내야 채우지.

 - 짧게 만들어. 미션이야.     


   언젠가 C와 한동안 이렇게 문자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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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저 문구는, 빅토르 위고가 소설 <레 미제라블>을 출간한 뒤, 출판사 대표와 나누었던 가장 짧은 편지 내용이다.     


 - 내 책이 잘 팔리고 있나요? 평판은 어떤가요?

 - 네! 잘 팔리고 있고, 평판도 좋아요!     


   굳이 이런저런 문구를 쓰지 않고 ‘?’와 ‘!’만으로도 충분히 의사 소통이 가능했던 내용이었기에 C와 오랜 시간 저렇게 문자로 소통했다. 요즘 세대들이 말을 줄여서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된다. 너무 즐거웠던 문자 대화법이었다.     


   지난주에 출판사 대표 D를 만났다.     


 - 선생님, 에피소드가 너무 많으니 줄이셔야 해요.     


   조만간 출간될 <반짝반짝 작은별 2023>의 에피소드를 줄이라는 말에 일주일 동안 에피소드 삭제를 단행했으나, 결국에는 중도 포기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 도저히 빼지 못하겠어요. 모두 다 재미있고 소중해요.     


   음악에서도 f(포르테-세게, 크게)로 표현하는 것이 p(피아노-여리게)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냥 힘을 다해서 내리치면 되니까. 내가 좋아하는 타법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쾅쾅 힘있게 크게 치는 것을 좋아하고, 타악기처럼 피아노를 작곡한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기도 한다. 그래서 p(피아노-여리게)로 연주하는 것은 귀가 간지럽고 연주도 잘 안된다.     


   말하거나 글을 쓰는 것도 길게, 많이 하는 것보다, 짧게 함축성 있게 중요한 것만 간.단.히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도 많은데, 쓰는 글도 길고 길어서 나조차도 힘들다. 왜 이렇게 하고 싶은 말과 쓰고 싶은 글이 많은 걸까. 어떻게 하지. 특히 글을 쓰면서는 몇 날 몇 밤을 새우기도 할 것 같다. 글을 짧게 쓰기 위해 삭제하고 요약하고 수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비어있는 공간을 참기 힘들어서 무언가로 채워야 하고, 필요한 내용을 짧게 요약하는 것을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내가 무언가를 비워내야만 하는 시즌이 되었다. 다른 것으로, 새것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내고 덜어내고 내려놓아야 하는데. 쓸데없는 것들, 할 필요 없는 것들, 가치 없고 의미 없고 없어질 것들, 생각들, 행동들, 결국에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내 손에서 떠나갈 것들을 선별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비워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좀 더 가볍고 홀가분할 수 있을까.     


   내가 질문하면 누군가 명쾌하게 대답해 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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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도에 입학했던 27기 녀석들과의 학급 단톡방들이 남아있다. 1학년 때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학년 조회 종례를 했었고, 2학년과 3학년에 올라가서도 중요한 행사 때나, 해가 바뀔 때나, 학년이 바뀔 때, 수능 전, 올해 1월1일 등등 메시지나 편지를 자주 보냈었다.    

 

   졸업식 전날인 어제, 마지막 전체 메시지를 보냈고, 졸업식을 마친 오늘, 이제 단톡방을 폐쇄한다는 진짜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더니, 반마다 아이들이 답장을 단다.     


 - 이 방을 없앤다고요?? 안 돼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들에 깜짝 놀랐다. 좀 가볍게 해 주려고 했더니 아이들은 그냥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주문까지 한다.     


 - 졸업해도 계속 편지나 메시지 주실 거죠, 선생님?

 - 글 읽으면서 힘이 나거든요! 눈물도 나고!     


   오늘 졸업식에서 27기 학부모 대표가 졸업 축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멘트를 해서 행사장 맨 뒤에 서 있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 1학년 부장 선생님이신 E선생님(내 이름)께서 늘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모두를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진심으로.

파이팅팅팅~~~ *^_^*     


   힉년 조회 종례나 주말 편지의 맨 마지막을 장식했던 나의 고정 멘트였기에 27기와 관련된 학생과 학부모들은 잊을 수 없는 멘트이기도 하다.      


   애써서 했었던 일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해 주는 아이들, 학부모가 있다는 사실에,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 주었던 날.     


   졸업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만들어 놓은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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