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vecin Jan 27. 2024

* 저는 성실한 사람이에요(2024.01.27.토) *

 저는 성실한 사람이에요 (2024.01.27.) *     

 - 저는 성실한 사람이에요     


    며칠 전 A의 전화에 잠이 깼다.     


 - (졸린 목소리로) 여보세요~

 - 어쩌고저쩌고~

 - 네~~ 그렇게 할게요.

 -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 아, 오늘 처음 말해서 그런가 봐요.

 - 아니, 지금 몇 시인데, 자고 있었던 거죠??

 - (완전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림) 아, 아닌데요??

 - 아닌데~ 자다가 깬 목소리인데~~

 - 앗! 아니에요.     


   며칠 뒤 비슷한 시간에 A가 또 전화했다.     


 - 어쩌고저쩌고~

 - 네~~ 그렇게 할게요.

 - 오늘도 자고 있었죠?? 목소리가 영~~

 - (민망해서 엄청 큰 소리로) 하하하~~ 아니거든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방학을 통해서 매번 깨닫게 되는 것은, 하루가 너무도 짧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짧을 수 있을까. (늦은 아침 또는 이른 점심)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제 무언가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책상에 앉으면 오후 2시가 훌쩍 넘어 있는 듯. 본론으로 진입하기 전에 이것저것 주변을 검색하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오후 5시가 되어 있어서 하루가 다 지나간 느낌이 든다. 왜 이렇게 하루가 짧은 걸까. 방학 동안의 나의 하루는 아마도 5시간도 안 되는 듯. 아마도 너무 늦게 일어나서 그런 것일 거다. 도대체 그동안 출근은 어떻게 했던 것일까.      


   B에게 말했다.     


 - 집에 있으니까 오후 4시만 되어도 하루가 다 지나간 느낌이에요. 학교에 있을 때는 오후 7시여도 한참인 느낌이었는데….     


   유독 이번 방학의 하루가 더 짧게 느껴지는 것은 몇 가지를 규칙적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겠다고 나름대로 정해놓은 것 중 성경 읽기와 기도하기와 같은 것들은 예상했던 대로 잘 지켜지지 않았다. 반면, 3주째의 방학이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시점까지 매일 지키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매일 걷기’이다.      


   학교에서 C가 늘 질문했었다.    

 

 - 하고 있는 운동이 있나요??

 - (멋쩍어하며) 아뇨. 없어요.

 - 있는 것 같은데요??

 - 아뇨. 전혀 없어요. 시간도 전혀 없고, 운동도 좋아하지 않고요.

 - 그래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사람처럼 몸이 쭉 뻗어있는데요??

 -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지만, 얼굴에 화색이 돌며) 아, 그래요?? *^_^*     


   점심을 먹고 운동장 주변을 한 바퀴씩 도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늘 말했다.     


 - 아, 추워요.

 - 하루에 15분 이상, 햇빛을 봐주어야 한대요.

 - 직사광선이 싫은데요. ㅠㅠ

 - 밥 먹고 도는 게 가장 좋대요.

 - 밖에서 하는 것보다, 실내에서 걷는 걸 하면 좋을 것 같아요.

 - 밖의 공기를 마셔야죠.     


   2020년 코로나 시작 초에 잠깐 하던 실내 걷기를 이번 방학에는 왜 하고 싶었을까. 누가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 것도 아니었지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왜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규칙적으로 하겠다는 다짐을 한 것일까. 거의 매일 똑같은 흐름으로 하루를 보냈었던 한 학기, 일 년이 마무리되면서, 매일 하던 것들이 갑자기 멈추어 버리니 무언가의 규칙성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3년 전에 사놓았던 운동복이 약간 헐렁하다는 것과 3년 동안 신지 않았던 운동화와 실내 머신이 여전히 쌩쌩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위안이 된다.      


   30분 동안 2.5km, 70분은 5.2km, 그리고 90분을 걸으면 7km 정도인데, 나 자신을 위해서 하루에 이 정도의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아…. 정말 하기 싫다….’라는 생각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빠짐없이 매일 걷는다’라는 다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며칠하고 말았을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 D에게 했던 이 말이 기억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저는 성실한 사람이에요.

 - 푸하하~~~ 뭐라고요???

 - 아니,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흐트러짐 없이 하는 사람이라고요.

 - 푸하하~~~*^_^*     


   운동으로 살을 뺀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다시 살이 찐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살을 뺄 일은 없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걷기를 했더니, 그 시간대에 걷기를 하지 않으면 다리가 아파온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멈추지도 못하겠고.     


   걷는 것을 사랑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방학 동안 하기로 했으니, 방학이 끝나고 나면, 무언가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 다리가 아파온다. 걷기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휴….


   ***********************     


*** 학교에서 아이들의 계획적인 공부 습관을 위해서 만든 ‘나의하루’라는 노트를 학생도 아닌 내가 2023년 1년 동안 3권째 쓰고 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이 노트보다 시중에서 만들어진 플래너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다.     


   (2024)에 신입생들에게 제공할 ‘나의하루’를 위해서 이 노트를 제법 잘 사용하는 학생들에게 양식을 변경해 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의견을 주었다.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우리의 삶이, 인생이 되는 놀라움을 깨닫기를 바라며.     


   아이들은 방학을 잘 보내고 있을까….     


#성실   #방학   #게으름   #규칙   #매일_걷기   #걷기   #운동   #머신   #계획   #나의하루   #플래너



작가의 이전글 *3년 동안 무얼 가르친 걸까요(2024.01.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