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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Mar 03. 2024

* 올라온 적도 없는데 하산이라니?? *

* 올라온 적도 없는데 하산이라니?? (2024.03.02.토) *

올라온 적도 없는데 하산이라니?? (2024.03.02.) *   

  

 - 올라온 적도 없는데 하산이라니??     


   이번 주 3일 내내 새 학기 준비를 위한 교사 연수가 진행되었다. 1학년의 특성상 이미 작년 10월 말부터 신입생을 위한 프로그램 준비로 분주했던 터라 해오던 일에 좀 더 박차를 가하여 학생들만 생각하면 되었지만, 올해는 유독 선생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오랜 직장생활이 나에게 깨닫게 해 준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 없다’라는 것. 누가 나에게 좋은 말을 해도 방긋, 나쁜 말을 해도 방긋, 좋은 말을 해도 한 귀로 흘릴 것, 나쁜 말을 하면 더욱더 한 귀로 흘려보낼 것, 어떤 이는 계속 내 옆에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스쳐 지나갈 것이며, 사랑했지만 어떤 이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날 것이고, 원하지 않던 어떤 이는 계속 내 옆에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니, 한때 나의 시간에 잠시 있을 사람들로 생각하고 사람에 절대 연연하지 말 것 등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직장이란 곳은.  

    

   특히 열정이 넘치는 나의 뜻에 반(反)하는 사람은 빨리 떠나보낼 것, 스트레스받지 말 것, 그에게서 빨리 도망쳐 나올 것, 그의 손을 놓아 버릴 것, 떠나보낸 그에 대해 절대 돌아보지 말고 후회하지 말 것 등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잘되지 않는 일이지만 결론은 하나다.      


 -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다.     


   언젠가 A에게 말했었다.     


 - 사람에 대해 평가하지 않으려고요.     


   교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는 것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일이나 사람에 대한 평가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신기하다. 다른 이들이나 사건에 대해서 본인의 관점에서 아주 쉽게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러면서 생각한다.     


 - 왜 저렇게 본인의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자기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되던 담임교사와 달리, 학년이나 업무를 맡은 부장은 조금 다르게 일을 하게 된다. 나 혼자 맡은 일을 해버리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일이 다른 부서와의 협조나 협의가 필요하고, 가장 힘든 것은 다른 부서가 먼저 움직여 주어야 내가 맡은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애가 닳는데 다른 부서는 나와는 달리 여유가 있는 경우도 많고, 주로 저녁이나 주말에 제정신이 돌아와서 업무를 하는 나로서는 남들이 쉬고 있을 때 연락하는 예도 많아서 다른 이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일을 할 때 다른 부서를 배려하고 서로 조화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은 내가 맡은 부서가 중요하니까. 또 요즘에는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많아서 그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B에게 말했다.     


 - 제가 올해 하산을 해야 했어요.     


   나의 이 말에 B가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 올라온 적도 없는데 하산이라니??

 - (모두) 하하하~     


   그러니깐. 정상에 올라간 적도 없는데 하산이라니.      


   몇 주 전 회의가 끝난 뒤 C에게 말했었다.     


 -  오늘 계속 들은 생각은, 이 일이 제가 꿈꾸는 교직에서의 삶, 목표와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전혀 꿈꾸지 않는 일에 시간을 쏟는 제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 부서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큰 소리로 외치며 무언가를 쟁취해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맞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던 내 눈에 보석같이 빛나는 D가 보였다. 그는 크지 않은 목소리와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 제가 부족함이 많아서요,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 저를 볼 때마다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와 식사하면서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 제가 작년 2학기부터 학교를 위한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 뭔가 익숙해지는 느낌으로 제 마음대로 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 아! 이제 이곳을 떠나야겠다.

 - 내가 잘하지 못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고요.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 이렇게 귀한 사람이라니!’. 자신감으로 충만해서 자기를 어필하려고 안달이 난 사람은 당연히 아니었고, 무언가 자신감이 없어 이것저것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아니었던, 정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비올라 조크(Viola Joke) 라는 것이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역할을 하는 어중간한 비올라를 비꼬는 유머라고 할 수 있다.     


 - 현악 4중주의 뜻은?

 - 괜찮은 바이올린 연주자, 형편없는 바이올린 연주자, 한때 바이올린을 했던 연주자, 바이올린을 싫어하는 연주자가 모여 작곡가를 까는 모임     


 - 비올리스트가 틀린 음을 연주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법은?

 - 활이 움직이고 있다     


 - 2명의 비올리스트를 음정이 맞게 연주하게 하는 방법은?

 - 한 명을 데리고 나간다.     


   뚜렷하게 주목받는 바이올린이기를 원하던 때도 있었고, 아예 소리가 낮아서 잘 들리지 않는 첼로이기를 바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내 심정은, 중간 정도의 소리를 내는 어중간한 비올라라고나 할까.      


   자신 있게 또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하던 모든 일들에서 힘을 빼고, 어쩌면 필요하지만 조용하게 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으로 올해의 목표를 삼으려고 한다.      


  - 저, 이렇게 자신 있거든요!

  - 저를 보시죠!     


   아, 이 목소리에 지쳐가고 있는 나에게, ‘저, 부족해요! 그러니 도와주세요!’를 조용히 말하고 있는 D의 옆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첼로의 매력적인 저음보다는 높고 바이올린의 뚜렷한 고음보다는 낮아서, 현악기가 함께 소리를 낼 때 잘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고 구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존재인 비올라.      


   아마, ‘조용한 자신감’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진짜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조용하다고 한다. 요란하지 않다는 것.        


   약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2024년을 바라보는 신입생들에게, 비올라 음악 한 곡을 권해본다. 바이올린의 고음이나, 첼로의 저음보다, 비올라의 중간 음역에 딱 맞는 곡.     


   주목받고 빛나는 1등이 되고자 한다면 힘들고 고된 한 해가 되겠지만, 2등 정도 하고자 한다면, 해 볼 만하지 않을까. 또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게) 1등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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