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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 올리고! 양말 올리고! *

by clavecin

* 사연 올리고! 양말 올리고! (2025.01.11.(토)) *


- 사연 올리고! 양말 올리고!


노트북 화면에 예닐곱 개의 화면을 열어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A 일을 하고 있는데 B 선생님이 C 일에 대하여 질문을 하길래, D에게 문의해서 F 답변을 전체에게 보내려는데, 그 사이에 G 선생님이 H 일에 대하여 질문을 해서, 다시 I와 J에게 확인한 뒤, K 답변을 전체에게 보냈다. 여러 종류의 메시지 창을 열어놓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맞춤법이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L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 이제 손가락 힘이 다 빠졌나 봐요.

- 네??

- 받침이 빠졌네.

- 아, 어느 부분에서요??

- 선새님….

- (모두) 하하하!

- 앗! 왜 이렇게 되었죠! 제대로 넣었는데!

- 이제 일 할 힘이 없는 거 아녜요?

- 아닌데? 저 지금, 3월 초처럼 힘이 넘쳐나는데요?

- (모두) 하하하!


근래 나의 관심을 끄는 것들은 소품들이다. 예를 들어 텀블러 가방, 접시, 컵, 가방, 핀, 머플러 등등. 메인이 아닌 주변의 것들에 조금 신경을 쓰니 생각지도 않았던 행복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에 노트북 주변에 예쁜 것들을 놓으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노트북 겉뚜껑에 체코 작가인 알폰스 무하의 명화를 붙인다든지, 키보드에 핑크 색상 실리콘 커버를 얹어놓는다든지, 굴리굴리 그림이 그려진 핑크 색상 마우스 패드를 책상 전면에 깔아놓고 그 위에 악보가 그려진 작은 마우스 패드를 깔아놓는다든지, 노트북을 예쁜 핑크 색상 트레이에 올려놓는다는지, 핑크 색상 무선 마우스를 사용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물론 조화이기는 하지만, 예쁜 꽃도 눈에 보이는 곳곳에 세팅해 놓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미소를 짓게 하는 것들을 주변에 놓으니 일할 때 기분이 더 좋아지고 머리도 더 잘 돌아가는 느낌이다. 특별히 이번 겨울에 장만한 것이 있다면 토시인데, 소매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손가락부터 손목 조금 위까지 올라오는 레드 색상의 토시를 장만했다. 노트북을 두드릴 때 어려움이 없도록 손가락의 절반만 들어가는데 이 부분은 하얀색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다. 한 7천 원 정도의 이 토시가 얼마나 예쁜지, 교무실의 여자 선생님들이 보고 부러워했다. 그걸 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집에서는 팔뚝까지 오는 조금 더 긴 제품으로 와인 색상을 준비해 놓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일하는 맛이 꿀맛이다!

다OO에서 오래전 구매한 엔틱 분위기의 거울도 노트북 주변에 있는데 눈을 들었을 때 거울을 보며 잠깐씩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기분 전환에 큰 도움이 된다. 또 20여 년 전에 홈OO스에서 8천 원에 구매한 보라색의 꽃방석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앉을 때마다 꽃 위에 앉는 기분이다. 또 의자는 어떤가! 의자는 10여 년 전에 아이들이 선물해 준 핑크 색상 의자다. 물론 그 당시에는 김영란법이 적용되지 않던 (좋은) 시대였기에 아이들은 흔쾌히 선물했고, 나도 기쁘게 받았었다. 아! 그리고 책꽂이는 인디 핑크 색상이고 책꽂이 위에는 역시 다OO에서 천 원에 구매한 물결 모양 레이스 커버가 사뿐히 올려져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탠드! 연한 보라색 스탠드를 켜면서 책상 위가 돌아간다는 것도 말해 본다.

특히 이번 2학기에 집중했던 것은 스페인 작가인 에바 알머슨의 작품인데, 아주 오래전 M의 생일 선물로 구매하면서 너무 예뻐서 내 것도 함께 사서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컵을 에바 알머슨의 그림이 그려진 컵으로 바꾸었고, 집에서 준비해 온 저녁을 놓고 먹기 위해 예쁜 접시도 장만했는데, 이것 또한 에바 알머슨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 그녀의 대표작들을 담아놓은 엽서를 노트북 앞 책꽂이 위에 쭉 세워 놓았다. 컵이 놓여 있는 트레이에는 캐나다 작가인 자넷 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은 내 책상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한다.


- 선생님 책상에는 신기한 게 많은 것 같아요.


휑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책상 위에 평범하지 않은 것들로 꽉 채워놓았으니,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번잡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책상에 앉으면 이것저것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것들이 많아서, 책상에 앉아서 책상 위를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무채색인 나의 생활이 예쁜 색감으로 아름답게 채워져 가는 느낌이다. 이 예쁜 책상에서 올해까지 4년을 근무했는데 이제 곧 정리를 할 시간이다. 예쁜 책상과 어울릴만한 ‘의미 있는 일,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했었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열심히 살아왔던 2024년. 길고도 긴 학사 일정이 이번 주에 드디어 끝났다. 물론 2024년의 공식적인 일정은 2월까지 이기는 하지만, 일단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방학이었는지! 10월에 있었던 갑작스러운 임시 공휴일로 인해 겨울 방학이 이틀 더 늦게 시작되어서인지, 올해만큼 간절하게 기다렸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모든 것이 끝나가고 정리하는 12월과 1월이지만, 해야 하는 일, 정리해야 하는 일, 또 진행해야 하는 행사가 넘쳐났던 때였기에 더 많이 바빴던 2024년의 연말과 연초였다. 그래서 힘이 빠져서 지쳐있기보다는 다행스럽게도 늘 정신없이 분주했고 힘이 넘쳤고 머리가 잘 돌아갔다. N 방송에 이런 코너가 있다.


- 사연 올리고! 양말 올리고!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들었다.


- 사연을 올린다는 것은 알겠는데 양말을 올린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선물을 담아준다는 건가??


몇 주가 지나서야 축구와 관계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축구 선수들이 축구하다가 넘어지면 일어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양말을 잡아 올리거나, 프리킥을 찰 때도 양말부터 당겨 올리는 것을 '삭스 업(Socks Up)'이라고 하는데, 다시 도전하기에 앞서 자신을 추스르고 마음을 정리하는 의식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사연을 올리면서 마음가짐도 가다듬자는 의미의 코너였다. 재미있는 발상!

방학이란, ‘양말 올리기’ 즉, ‘Socks Up’과 같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기 전에 양말을 올리며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삭스 업!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

야호! 방학이다!


*** 방학을 위해 모든 것을 비운 (1-12) 교실.

물건이 채워져 있을 때는 정신없었는데, 모든 것을 비우니 너무 멋있어 보인다.


아, 양말을 올리기 전에, 내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던 것들을 모두 비우는 것이 필요한 걸까.

채우기에 급급했는데, 모두 다 비워낸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고 정갈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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