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lephant in the Room (2025.01.04.(토)) *
- The Elephant in the Room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A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가 오기 전까지 간간이 몇 마디를 나누었던 B가 기억날 때가 있다. 같은 반도 아니었기에 친하지도 않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단지 몇 번 부딪혔던 정도의 친구이기에 B의 됨됨이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다만, 공부를 꽤 잘했다는 것, 서울에 있는 교대에 진학했다는 것, 그리고 아주 짧은 커트 머리에 검은 테 안경을 썼고 투박하고 퉁명스럽고 메마른 목소리를 지녔으며 감정이 묻어나지 않고 웃음기 없는, 굳은 표정의 차가운 친구였다는 것이 뚜렷이 기억난다. 글을 쓰다 보니, 버스를 기다리던 A 정류장에서 보았던 B의 모든 이미지가 떠올라서 깜짝 놀랄 지경이다.
많은 이야기도 해 보지 않았던 B가 기억나는 것은, 그의 독특한 사고 때문이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이게 뭔 소리인가?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게 무슨 말이야??
- 나는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거든. 내 것을 챙기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인데, 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챙기고 내 것을 손해보고 나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사람의 일반적인 습성을 거스르고 회피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까지 좋은 말을 듣는 거니까, 결국은 나쁜 거라고 생각해.
아주 정확한 서술은 아니겠지만, 대략 저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다시 정리하자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나쁘다, 그런데 그것을 거슬러서 착하다는 것은, 본성을 거스르면서 하는 행동이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니, 결국은 나쁜 것이다. 본성대로 행동해라. 그것이 맞는 것이다. 착한 것은 나쁜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A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서 윙윙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논조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그런데도 이런 생각을 하는 B가 무척 멋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맹해 보일 수도 있는 아이였는데, 나름대로 독특한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그의 말이 맞고 안 맞고는 둘째 문제였다. 얼마나 나에게 강하게 박혔으면 지금도 생각이 날까. 그런데 요즘 B의 말이 가끔 떠오른다. 그 말이 떠오른다는 의미는, 그녀의 논조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12)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4:11, 18:14)
이 말씀을 가지고 C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입니다.
- 높아지고 싶다면, 자기를 낮추십시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 높아지려고 일부러 낮아지는 척하라는 건가??
- 그러면 결국은, 높아지고 싶다는 거잖아?
- 처음부터 자기를 높이는 것이 더 솔직한 거 아닌가??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도 아닌데,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사실 요즘 B가 더 급격하게 떠오른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성경 곳곳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31)
-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누가복음 10:27)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그것도 어렵지 않게! 문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게 실현 가능한가?
-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라디아서 5:14)
-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눈에 보이는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며 최고의 법이라고 이토록 외치신 것은,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그래서 우리가 이 문제 때문에 얼마나 괴로울지를! 그래서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던 것이다.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12)
이토록 많은 기독교인이 있고 교회가 있고 수많은 예배와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아름다운 세상에서 점점더 멀어지고 척박해지고 메말라가며 거칠어지고 예의 없어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넘치지만, 눈에 보이게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운, 실현되기 어려운, 또 지속되기 어려운 우리 인류의 과제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실현되기 어려운, 불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말을 어떻게든 아등바등 실현해 보려고 애쓰고 있으니, 우리의 삶이 이토록 힘든 것이다.
‘착한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놀라운 주제를 조곤조곤 설파하던 B는 아마도 어디에선가 (독특한 사고를 지닌)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불편하고 원하지 않겠지만, 지금 낮아지면 네가 원하는 대로 높아질 수 있어!’를 말하던 C도 어디에선가 설교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어?’ 또는, ‘너 자신을 아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으면 해 봐! 그런데 가능할까?’를 외치는 하나님에게 감히 대답해 본다.
- 불가능합니다, 저는!
- 깨끗이 두 손을 들겠습니다!
- 노력은 해 보겠지만, 될 것으로 생각하고 노력하지는 않겠습니다!
- 어차피 안될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 노력해 보다가 그만둘게요.
- 그래야, 덜 힘들 것 같아서요.
여느 해처럼 신입생 연수가 있었다. 합격자 발표를 하고 가장 가까운 토요일 오전에 진행한다. 학생들은 중학교 과정 시험을 치르고 학부모들은 강의를 듣는데, 올해는 D 강사의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E 선생님의 대입에 관한 강의가 진행되었다. 특히 D 강사의 강의가 상당히 길어서 힘들었지만, 졸면서 듣던 강의 중 이런 문구가 나와서 눈이 커졌다.
- The Elephant in the Room.
-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기 꺼리는 문제, 금기시되는 주제
여기서 ‘코끼리’는 내가 불편해하거나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코끼리를 무시하면서 불편해할 수도 있고,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애쓰며 지낼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2025년이라는 놀라운 숫자가 펼쳐졌다. 희망찬 새해 첫 주이니 그에 맞는 (눈에 보이지 않는) 멋진 기대와 각오와 소망으로 시작했지만, 우리를 힘 빠지게 하고 힘 있게 일어나고 싶은 생각을 다시금 주저앉히는 것은 바로 눈에 보이는 묵직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 현실을 못 본 척, 안 본 척할 수는 없으니, 애써 가벼운 척, 모르는 척, 가끔은 즐거운 척, 슬쩍 스쳐 지나가 볼까 한다. 내 방에 있는 거대한 코끼리와 사이좋게, 어쩌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이루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꿈꾸어 보면서 말이다.
- 하나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코끼리가 제 이웃이었던 건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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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4.(토)) 신입생들을 위한 포토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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