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꽂히는 일을 하세요! (2024.12.27.(토)) *
- 꽂히는 일을 하세요!
- 그게 무엇이든 즐겁게 하세요!
- 억지로 하지 마세요!
토요일 오전, 며칠 전 수리한 TV 화면 확인을 위해서 기사님이 오셨다. 이것저것 체크하고 설명해 주신 뒤 가시려는 기사님께 물어보았다.
- 아, 출장비는 어떻게 드리면 될까요?
- 며칠 전에 수리하셨으니, 오늘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사님이 오시기 전에 식사를 끝내려고 서둘렀건만, 30분이나 일찍 오시는 바람에 아침밥을 먹고 있다가 기사님을 맞이했던 가족들은 기사님이 가신 후, 이런 대화를 했다.
- 나는 모델이 들어오는 줄 알았어.
- 키도 훤칠하게 크시고 완전 잘 생기셨는데?
- 토요일 오전에도 일하시네.
- 대부분 사람이 토요일에 집에 있을 테니까.
- 뭐라도 드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토요일 오전에 아침밥을 먹고 있는 집에 오셔서 출장비도 안 받고 그냥 가셨던 (모델 같이 멋진 분위기를 풍기던) 중년의 기사님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은 드시고 오셨는지, 괜히 보이지 말아야 했던 일을 들킨 것 같은 심정이 왜 들었을까. 왠지 지금 하시는 일이 두 번째 직업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음료수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빈손으로 보내다니! 지금도 후회가 된다.
몇 년 전, A가 문서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내가 작성했던 B 문서를 보내주었다. A는 B 문서를 수정하여 작성한 C 문서를 나에게 보내주면서 한번 보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C 문서의 이곳저곳에서 이상한 것들이 눈에 띄었는데, 서로 다른 곳에서 진행되는 행사의 같은 시간대에 D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A에게 물었다.
- A~, 오전 10시에 D가 E에도 있고, F에도 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D가 E에 있다가, F로도 뛰어가야 하는 건가요??
- 하하하! 아, 글쎄, 원래의 B 문서에 있던 A를 D로 바꾸고, G(내 이름)를 A로 바꾸었어야 했는데, 생각도 못 하고 G를 A로 모두 바꾼 다음, A를 D로 바꾸려고 하니, A가 원래 있던 A인지, 바꾼 A인지 몰라서 그냥 모두 D로 바꾸어 버렸더니, D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게 되어 버렸더라고요. 그래서 뭐가 뭔지 몰라서 하다가 말았죠.
- 엥??? 하다. 만 서류를 저에게 준 건가요??
- 뭐, 그렇게 된 거죠. 하하하!
- 으이구!
언제나 서류를 꼼꼼하게 보아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실 시간이 많으면 문서를 꼼꼼하게 확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본문만 보고 첨부 문서는 확인하지 않고 결재하는 일도 많다. 그런데 어느 날, 첨부 문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확인했더니, H 문서 대신에 엉뚱한 I 문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결재를 올린 J에게 말했다.
- J~, H 문서가 아니라, I 문서인데요??
- 네??
그러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J에게 말했다.
- K가 첨부 문서를 보는지 볼까요? 아마 보겠지만, 요즘 바빠서 그냥 지나갈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달리 K에게서 연락이 왔다.
- 방금 올린 결재, I 서류가 첨부되어 있는데요, 확인해 주세요.
역시나 놀라운 K였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 수많은 서류의 첨부 문서를 일일이 확인한다는 걸까? K에게 물었다.
- 모든 서류를 다 확인하는 건가요??
- 바쁠 때는 그냥 지나가지만, 웬만하면 다 확인하죠.
- 놀라워라! 저희 것은 더 꼼꼼하게 보겠네요??
- 바빠죽겠는데, 일 제대로 안 할래??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허술하게 일하는 내가 겨우겨우 어떻게 1년을 지내왔다. 특히나 저번 주와 이번 주는 가장 바쁜 연말이었다. 온갖 학년 행사와 학교 행사가 몰려있기에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는데, 어제까지 거의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다음 주의 신입생 연수까지 끝내면, 2024년도의 모든 일이 끝난다.
어떤 행사가 진행되기 전에는 세부 계획서를 작성해야 하고, 행사가 끝나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문서로 시작해서 문서로 끝나는 것이다. 특히나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생활은 언제나 문서 작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저번 주와 이번 주의 행사도 보고서 작성으로 헉헉거리는 중이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서류 작성하는 것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가 목표였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온종일 서류 작성하는 것에 시간을 쏟고 있으면서도 실수투성이인 것이 신기할 뿐이다. 오늘 이런 말을 들었다.
- 꽂히는 일을 하세요!
- 그게 무엇이든 즐겁게 하세요!
- 억지로 하지 마세요!
듣는 순간에는 무척이나 솔깃하고 들뜨고 흥분되는 말이다. 누구든 이렇게 일하면서 살고 싶지 않을까! 확 꽂히는 일에 열정을 바치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꽂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해야만 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꽂힌 일이지만, 억지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원하고 바라는 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고, 그것이 속상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17살 아이들과 살아가는 나는 그나마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살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18살만 되어도, 19살은 더더욱,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17살의 아이들은 ‘꿈과 희망’의 허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그 이상 나이의 아이들은, ‘무슨 저런 거짓말을….’ 이런 표정이다. 그래서 더더욱, 17살 아이들과의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말하는 ‘꿈과 희망’은, 삶이 더 이상 희망차고 푸르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버리고 절실하게 경험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늘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아이들이 필요하다는 것. 이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능하면 사실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직은 가지고 있고 싶어서, 나에게는 아직 순진한 17살의 아이들과의 삶이 필요하다.
꽂히는 일이 수도 없이 있고, 어떤 일이든 억지로 하지 않고 즐겁게 하면서 지내는 나에게도 2024년도는 무척 힘들었는데,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 올해의 마지막 토요일 오전에 일하러 오셨던 기사님은 즐겁게 하셨던 것일까, 마지못해 억지로 하셨던 것일까. 왠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같이 문서 작성을 하던 A나 J는 이제 문서 작성을 즐기고 있을까. 나 또한 억지로 하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잘 맞아서 즐기면서 하던 문서 작성을, 2024년에는 조금 덜 하게 될까.
2025년은 어떤 일에 꽂히게 될까. 그 일 때문에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2025년에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꽂히게 될까. 아이들도 나에게 꽂히게 될까. 그랬으면. 행여 억지로 하게 되는 일도 꽂혔던 일처럼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던 일보다 씁쓸한 일이 바로 어제까지도 있었던 2024년,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로 가득 찼던 2024년,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2024년, 그래서 어떤 기대 없이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시작하게 되던 2024년,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짚어보게 되었던 그래서, 내 인생에서 뚜렷하게 기억될 올해. 그런 와중에도 어제 진행한 멘토링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전쟁 같았고, 냉혹했던 2024년의 마지막 주말, 방학까지 10여 일이나 남아 있는 이번 주말, 2024년도의 마지막 글을 쓰면서 내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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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학년도) 전교생 할렐루야 합창.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기대하게 되는 일 중 하나.
내가 꽂혔던 일이고, 즐겁게 했었던, 즐겁게 하고 있는 일 중 하나.
2025년에는 더 멋진 연주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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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xn_lFnDuI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