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길만 걸으시라고 (2025.09.06.(토)) *
(오늘 글은, 읽기에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 꽃길만 걸으시라고….
교사에게 1년 중 가장 민망한 날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스승의 날>과 <생일>일 것이다. 주인공이 되는 날이기는 한데, 눈을 감았다가 뜨면 모든 것이 끝나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침부터 하루 내내 하게 되는 날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힘든 날이다. 축하를 해 주어도 부끄럽고, 축하를 해 주지 않아도 부끄럽고 민망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날이다.
<스승의 날>은 1학기에 있어서 더 어색하다. 서로에 대해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사랑을 노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빨리빨리 흘러갔으면 하는 날이다. 반면 나의 <생일>은 2학기 중에 있어서 <스승의 날>보다는 조금 낫다. 서로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
올해 생일이 채플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화들짝 놀라서 몇 가지 버전을 생각했다. 예배 마지막에 생일 축하를 시작할 즈음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것, 아니면 화장실로 가는 것, 아예 예배를 가지 않는 것 등등. 일단 채플에 가지 않았던 날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것은 패스했고, 밖으로 나가자는 생각으로 채플에 참석했다. 엄청 많은 PPT를 준비한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넋 놓고 앉아 있다 보니, 중간에 일어나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거짓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리숙함 때문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화면을 보고서야 우리 반 아이들이 무언가를 펼쳐 든 것을 알았고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싶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 이게 뭐람!
생일 축하하는 카메라가 도는데 우리 반이 맨 처음 화면으로 나왔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끝난 다음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 (1-3) 카메라 비췄나요??
속으로 또 생각했다.
- 이게 뭐람!
담임을 계속할 때는, 아이들을 통해서 언제가 생일인지 전해지겠지만, 학년 부장을 4년 하면서 생일은 잊혔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학년 부장으로 만났었던 2, 3학년 아이들까지 이번에 내 생일을 알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또 속으로 생각했다.
- 이게 뭐람!
복도를 오가면서 아이들이 인사를 해 주어서 정말 민망했다. 물론,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계단을 지나가다가 만난 30기 A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 선생님! 생신이세요???
- 네!
- 축하드려요!
- 고맙습니다~~
매점 안에 있다가 매점 앞 복도를 지나가는 나를 발견한 B와 그의 친구들이 매점에서 뛰어나오길래 그 옆 교실로 후다닥 도망갔다. 그런데 B와 C와 D가 따라와서 외친다.
-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 앗!
- 축하드려요!
- 고맙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이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 선생님!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 응??
- 저희 보고 싶으셨죠??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 아!
얼마나 눈물 나는 말이었던지! 매일매일 보던 아이들을 이제는 간간이 보고 있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기쁘던지! 늘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알고 있고!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29기 E가 찾아왔다. 시험문제 출제 기간이라 교무실에 들어올 수가 없기에 쑥스러워하며 나를 부른다. 놀라서 나갔더니 비*500을 내민다. 등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
- 뭐야!
-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 어이구! 고마워!
종례하기 위해 우리 반 회장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굉장히 늦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 흠,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나 보네….
F 선생님이 말한다.
- 애들 오면 담임 선생님 퇴근했다고 말할 테니, 퇴근해요.
- (모두) 하하하!
방금 종례를 끝내고 우리 반을 지나쳐 오신 G 선생님이 말한다.
- 애들이 치우는 데 오래 걸릴 텐데!!
- (모두) 하하하!
내가 말했다.
- 노래 못하기만 해 봐라.
- (모두) 하하하!
- 가사도 못 외울 텐데….
- (모두) 하하하!
드디어 아이들이 불러서 교실로 가는데, 반짝이는 줄 커튼을 문에 드리워놓아서 깜짝 놀랐다. 잠깐 멈칫했다가 교실에 들어섰더니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준다. 칠판에 풍선이며 온갖 장식을 해 놓았고, 교탁에는 내가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말 딱! 나와 잘 어울리는 케이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꽃! 예쁜 종이꽃을 한가득, 그야말로 한 바구니 만들어 놓았다. 깜짝 놀라서 질문했다.
- 내 나이만큼 꽃송이를 만든 건가요??
- 아니에요!
- 오! 이렇게 멋진 꽃다발이라니!
- (모두) 하하하!
2학기 초에 세 분의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한 분의 선생님을 맞이하느라 총 4번의 꽃다발을 종이로 직접 만든 아이들이, 최종적으로 나를 위한 꽃다발을 만든 것이었다. 사실 그래서 생각했었다.
- 애들이 내 꽃다발 만들면서 진이 다 빠지겠네….
아이들이 써준 롤링 페이퍼와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고 교무실에 오니 포장지에 싸인 무언가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 누가?
같은 교무실을 쓸 때 내 생일 때마다 ‘내 친구 모모’ ‘반 고흐’ 등의 책 선물을 해 주었던 H의 책 선물이었다. 제목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내게 무해한 사람>
담임 선생님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누린 날이었다. 민망하지만, 가능하면 담담하게 보내려 했던 하루를 돌아보면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해 본다.
- 오랜만에 담임을 하면서 미숙했던 거, 알고 있죠?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무얼 가르치겠어요. 여러분을 통해서 선생님이 배우는 거죠. 얼마 남지 않은 2학기, 여러분을 통해서 제가 더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랄게요.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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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을 마치고 왔더니 책상 위에 보라색 포장지로 싸인 조그만 상자가 있다.
- 음??
선물을 받았을 때 선물을 쌓던 선물 포장지도 찬찬히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뜯어서 보관하는 나이기에, 학교에서 확 뜯어보지 않고 집에 가지고 가서 조심스럽게 뜯어 보았다. 포장지를 벗겨보니, 상자가 마스킹 테이프로 테이핑 되어 있었고, 더 놀라운 것은, 선물을 넣은 상자 안쪽 바닥에 꽃잎 스티커를 가득 붙여놓았다는 점이었다. 깜짝 놀라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 직접 꽃잎을 붙인 건가요??
아이들이 대답했다.
- 선생님, 꽃길만 걸으시라고 저희가 꽃잎 스티커를 붙였어요.
상자 안쪽에 붙여진 꽃잎 스티커에 감동해서, 그것만 한참 들여다보느라, 꺼냈던 선물은 무엇인지 한참 뒤에 보게 되었다. 장미 꽃잎이 찰랑거리는, 동그란 6개의 홈이 있는 립스틱 함이었다. 그걸 보고 한참 웃었다. 내가 가진 틴트들은 모두 사각형이었기 때문이다. 하하. 다행히 립스틱이 아닌, 마스카라와 다른 화장품을 꽂기에 적당했다. 그리고 더 귀여웠던 것은, ‘러브 볼펜’이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다니! 하하.
- 보기만 해도 예뻐!
***아이들이 장식해 놓은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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