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

by clavecin

*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2025.09.20.(토)) *


-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요즘 보고 있는 책들이나 드라마에서 내 눈에 띄는 부분들이 있는데, 죽고 못 사는 연인이나 부부, 또는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들이 끝까지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며 이별하는 모습들이 바로 그것이다.


- A와 B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이나 드라마라면 ‘참’ 좋을 텐데, 어디서나 이렇게 끝나는 내용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구성할 때, 클라이맥스의 부분을 2/3 지점에 있게 해서 행복감에 빠져있게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오해와 갈등으로 혼란스러워지게 되는데, 그 갈등을 풀어가면서 행복하게 끝나기도 하고, 아니면 그 갈등으로 인해 전혀 다른 끝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슬픔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세팅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마음 한편으로는 이 행복함이 영원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불안함이 느껴지던 경험을 모두 해 보았을 듯하다.

누구나 사귀다가 또는 함께 살다가 어떤 이유로 헤어지는 때가 있을 텐데, 과연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좋을까. 좋아했다가 헤어지는 것이니, 분명 안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 이유를 요목조목 말하고 헤어지는 것이 맞을까. 아님,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헤어지는 것이 맞을까.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헤어지게 되면 헤어지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어떤 희망(?)을 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희망을 품게 한 채 헤어지는 것이 맞을까.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차라리 명확하게 이유를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그도 이해하지 않을까. 그럼, 그 이유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있는 대로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걸까. 아님, 에둘러서 말해 주어야 하는 걸까. 아니, 왜 끝내야 하는지 명쾌하게 이유를 알려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서로의 앞길을 축복해 주면, 안되는 걸까.

내가 접했던 장르들은 모두 안타깝게 끝맺음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사랑했던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서로를 굉장히 아프게 하면서 헤어진다. 그 시간이 마치 가식의 시간이었던 것처럼 서로의 마음에 깊숙이 숨기고 쌓아놓았던 감정들을 다 쏟아내 버린다. 왜 그렇게 헤어지는 걸까….

오랜 시간 친구였던 C와 D가 E라는 남자를 서로 다른 시점에 좋아하게 된다. 결국 C와 D는 절교하게 되는데, C가 D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 E?? 너나 E 가져. 나는 E 따위는 필요 없으니깐.


그 말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C와 D의 친구 관계도 끝났고, E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안타까운 것은, C와 D가 숱한 고비를 함께 넘기며 애써 지켜온 우정이, 그동안 건드리지 않으려 애써왔던 서로의 상처를 서로에게 비수 같은 말을 던지면서 결국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 네가 나를 도와줄 때, 내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알아?


늘 성심껏 자기를 도와주었던 D에게 C가 던지는 말을 들으며, 사람의 마음이 다 같지 않음을 확인한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

F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그동안 어느 정도의 예의를 지키며 직장 동료로서 잘 지내온 G와 마지막 자리를 하게 되는데, 거기서 술에 취한 G가 이렇게 말한다.


- F! 네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다 알고 있어! 너도 똑같은 인간이야!


F는 술에 취해서 마음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G를 보며 이렇게 슬퍼한다.


-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침 라디오 방송에 누군가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 평범했던 27년, 전쟁 같았던 3년, 오늘로써 결혼생활 30년을 끝냅니다. 마음이 후련하네요.


그 전쟁 같았던 3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27년을 살면서 ‘전쟁’ 같았던 3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그 누군가의 30년의 끝이 안타깝거나 속상하지 않고 후련하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또 새로운 만남이 주어지는 우리의 삶. 의도하여서, 또는 의도치 않게 맞이하게 되는 우리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누군가와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 그동안 고마웠고 잘 지내기를 바라.


행여 전쟁 같았던, 지옥 같았던 시간이 있었을지라도, 이렇게 마지막을 마무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은 헤어지더라도, 함께 했었던 그 시간은 의미가 있었을 테니까. 그게 맞지 않을까.


- A와 B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되는 때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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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헤어지는 날에 아름답게 기억될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2025.09.19.(금)) 2학기 1차 지필고사를 끝내고, 우리 반 아이들과 롤러스케이트장을 다녀왔다. 올해처럼, 볼링장을 갔던 경우도 처음이었지만, 롤러 스케이트장을 갔던 것도 처음이었다. 나와 임원들이 결정한 것인데, 얼마나 멋진 선택이었던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주셨을까! 기억으로는 초등학생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보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사실, 롤러 스케이트장이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상. 상. 하지도 못했다. 아이들이 질문했다.


- 바지 입어도 되나요??


놀라서 그곳에 질문했다.


- 치마 입고 탈 수도 있나요?

- 네! 됩니다!


물론, 아이들은 바지를 가지고 와서 입었고, (별 바지가 없는) 나는 편한 플레어 청치마를 입고 갔다. 아이들과 롤러 스케이트장을 간다고 하니, H 여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시고!


I 선생님도 이렇게 말했다.


- 설마, 넘어지지는 않겠죠??


아, 생각으로는 스케이트장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처럼 발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니, 발을 땅에서 아예 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날개를 단 요정들처럼 스케이트장을 그야말로 날아다녔는데 말이다!

나처럼 초보인 아이들은 보행기(?)를 잡고서 돌아다녔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롤러스케이트장에 오기 전에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나의 그림은, 두 손을 뒤로 하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발을 밀면서 춤추듯이 천천히 스케이트를 타는, ‘예쁜 그림’이었다! 보행기라니!!!

하지만, 머릿속의 그림과 전혀 달리 엉거주춤 기어가고 있는 나를 보던 아이들은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이끌어주었고, 무게 중심을 앞으로 잡으라고 알려주었으며, 왼쪽 발에 힘을 주고 오른쪽 발을 사선으로 밀면서 나가라고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다. 심지어 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보행기를 잡고 돌던 J와 K는 결국에는 보행기를 밀쳐내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부러웠던지! 나도 조금씩 조금씩 발을 떼고 나가다가 아뿔싸 그만 뒤로 넘어지면서 훌러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L과 M이 외쳤다.


- 사고야, 사고! 얘들아, 비상!!!


지금에서야 엉덩방아를 찧었던 오른쪽 엉덩이뼈가 아프고, 넘어지면서 짚었던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리지만, 큰 사고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1시간 30분 동안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각각 특성을 알 수 있었다. 거의 프로 선수같이 스케이트장을 활보하던 N, 타는 모습이 너무 예뻤던 O, 무릎 보호대와 손목 보호대와 헬멧까지 쓰고 보행기를 잡고 기어가던 P와 Q…. 특히 처음 타는 것 같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손잡고 이끌어주던 R과 S와 T가 인상적이었다.

이제 헤어짐을 향해서 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서로에게 보이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학급 활동을 마치고 보낸 메시지에 V 선생님이 이렇게 답장해 주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매번 즐거운 추억 만드시는군요.


맞다. 매번 즐거운 추억 하나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즐거운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 모두 괜찮은지?

- 선생님은, 엉덩이뼈랑 손목이랑 종아리도 아파.

-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예쁜, 즐거운 추억 하나, 기록해 놓습니다.


* 서로의 손을 잡고 롤러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있는 아이들.

설마 이렇게 손을 잡아주고서 슬프게 헤어지지는 않겠지??

이렇게 예쁜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

30. 오래오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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