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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전부를! *

by clavecin

* 우리의 전부를! (2025.12.06.(토)) *


- 전부를 건 너희에게, 우리의 전부를!


2학기 2차 지필고사까지 끝내고 방학을 몇 주 앞둔 요즘, 7교시까지의 시간 중 거의 6시간을 자습하는 학급도 있다고 한다. 물론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때문에 발표하는 과목도 많지만, 수업 시간이 좀 여유로운 시기이다. A와 B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C 학급(우리 반) 시간에 영화 D를 보여줄까 봐.

- 영화 D, 내가 1학기 때 보여줬는데?

- 뭐? E 과목과 관련도 없잖아?


나는 우리 반 이름이 자꾸 들려서 무슨 말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A가 말한다.


- B가 C 학급(우리 반) 시간에 영화 D를 보여줬다네요.


나는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 네??? 영화를 왜 보여주셨어요!


나는 우리 반에 영화 보여주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아이들이 다 보지 못한 영화를 찾아서 보고서는 다른 드라마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방학 내내 말이다.


- 그러니깐요. E 과목과 영화 D가 무슨 상관이야?

- 아이들 엄청나게 좋아하던데?

- 유명해지기 전에 보여줬다네요.

- 메롱!


내가 말했다.


- 보여주려면 E 과목과 관계된 것을 보여주셔야죠!

- 애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텐데?

- (모두) 하하하!


반면에 F는 이렇게 말했다.


- 내가 C 학급(우리 반)에 영화 G를 보여줬더니 아이들이 제대로 보지 않던데?

- 그래요?

- 안 보고 각자 다른 일만 하길래 끄고 진도 나갔는데?

- (모두) 하하하!

- 집중해서 보지 않았다는 말씀이죠?

- 아이들이 잘 보지 않더라고.

- 감상 포인트가 다른가 봐요.


무언가 여유로워진 때이기에 아이들의 얼굴도 조금 풀어져 있다. 그래서 반마다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 저라면 우리 학교에 오기 전에 심사숙고했을 거예요. 1년 동안 아주 힘들었을 텐데, 지금까지 잘 참고 지내온 여러분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있는 친구를 보고 말해 주세요. ‘정말 대단해! 애썼어!’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바라본다. 아이들은 이 힘든 과정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온 걸까. 지금 얼굴이, 몸이 풀어져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퇴근하던 어느 날 저녁, 내 차 옆에 바로 붙어서 운행하는 버스를 무심코 보다가 눈길이 멈추었다. 차 옆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 전부를 건 너희에게, 우리의 전부를!


아! 얼마나 감동이던지! 전부를 건 너희에게, 우리의 전부를 주겠다니! 사진을 찍어서 몇몇 선생님들에게 보냈더니 이런 말씀들을 하신다.


- 돈을 엄청 많이 냈으니 그만큼 가르치겠다는 거지!

- 순진하게 광고 문구 보고 감동하면 어떻게 해!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 말에 웃었지만, 어느 업체에서 내걸었다는 이 몇 마디는 나의 교육관을 돌아보게 하는데 충분했다. 나는 과연, 나의 전부를 아이들에게 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젊은 날, 그 옛날,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이런 마음이었는데….

며칠 전 H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일을 하는 게 힘들었어요.

- 설득하라고들 하죠.

- 아, 저는, 설득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 설득이 힘들죠.

- 같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힘든 일이에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 작년에는 ‘일’을 바라보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네요. 아, 아니다. 작년까지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일을 한 것이기는 했었지만, 왠지 일만 했던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 그런데 작년과 달리 올해 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게 돼요. 하고 싶은 게 막 생기고요.


어떤 것에 꽂히면 절제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막 쏟아내는 나이기에 오랜만에 담임을 맡은 우리 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엄청 많은 꿈을 꾼 것 같다. 학년 부장을 맡았을 때도 학년 아이들을 보면서 꿈을 꾸었던 것은 맞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힘들었다. 그런데 담임을 하면서는 그 꿈을 실현하는 것이 좀 더 수월했다. 아직도 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학년이 끝나가고 있어서 무척 아쉽다. 이제 그 활동들을 정리해서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내용이 많아서 집중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위해서 진행했던 프로그램들인데 아이들이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학기 말에 잠깐 보여주는 영화에 흠뻑 빠져서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쳐 버리는 아이들이 있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쉬라는 의미로 보여주는 영화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다시 책으로 눈이 돌아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조금 속상하고 서글프다.

어떻게 해야 노는 것인지, 또 제대로 노는 것은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는 나이기에, 아이들은 나와 달리, 좀 제대로 놀 줄도 알고 쉴 줄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늘 있다. 이런 것을 가르치려면 내가 좀 제대로 놀 줄 알아야 하는데 뭘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 가르치는 것도 어설픈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전부를 건 너희에게, 우리의 전부를!


누가 했던 말이건, 멋진 문구다. 아이들에게 말해본다.


- 전부를 걸어볼래? 무엇에 전부를 걸어야 할까? 무엇에 전부를 걸어볼 만할까? 가치가 있는 것에 전부를 걸어야겠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이, 전부를 걸어볼 만큼 가치가 있는 것들일까? 가치가 있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전부를 걸만한 것인지 다시 한번 짚어보자. 너희가 어떤 것에 전부를 걸든, 너희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를 걸어볼게. 아니, 그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과거의 나를 다시 한번 기억해 볼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우리의 모든 것을 걸어보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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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까지는 내가 맡았던 아이들과 1학기와 2학기에 한 번씩 학교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었다. 보통 1차 지필고사와 2차 지필고사 사이에 했었기에, 자연과 함께하기 좋은 5월과 10월경에 ‘야외’에서 했었다. 몇 개의 조로 나누고 각각 자유롭게 메뉴를 정하는데, 떡볶이, 비빔밥 등의 음식도 있지만, 대부분 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를 굽는 것이 가장 ‘간단한’ 요리니까.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으면서 ‘무엇인가를 함께 했다’라는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었다. 당연히 아이들도 좋아했고, 학년이 올라가거나 졸업해서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우리들만의 이야기였다.

학사 일정이 예년과 달랐던 올해, 1학기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2학기 2차 지필고사 시간표가 발표되기 며칠 전, 갑자기 번뜩 드는 생각에 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 학교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성을 지른다.


- 와!!! 네!!! 정말 좋아요!!!


아이들과 이것저것을 하고 싶어 하는 나의 ‘열심’ 때문에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을지 내심 걱정하면서 질문했던 것인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에게는 일절 말하지 못하게 했고, 2학기가 다 끝나가는 이번 주에 시간을 잡아서 학급 시간을 가졌다. 야외에서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아주 어렵게 어렵게 실내 장소를 빌려서 진행했는데, 여기에 글로 쓸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교에서 조리 기구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주 엄격해졌기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주아주 어렵게 겨우 허락받았는데 문제는 ‘냄새’였다. 아이들이 준비한 메뉴는 라면, 떡볶이, 비빔밥, 부대찌개 등 가벼운 것들이었는데 몇 개의 조가 고기를 구웠고 그 냄새가 학교 전체에 가득 찼던 것.

아이들이 꼼꼼하게 챙겨서 준비해 온 것을 보고서 놀랐고 요리하는 것을 보면서는 더 놀랐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 중학교 때도 이런 것들 많이 해 보았죠?

- 아뇨! 처음이에요!

-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어요!

- 진짜??


오랜만에 하다 보니, 음식을 만들고 선생님께 먼저 드려야 한다든지, 선생님들 드릴 것을 조금씩 담아놓는다든지 하는 것들도 가르치지 못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라든지 기타 챙겨야 할 것들도 다 놓치고 말이다. 그런데도 학교에서건 심지어 집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과 고기 굽는 냄새로 온 학교를 절여지게 하고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날을 즐겁게 기록해 본다.


- 얘들아, 나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2/3는 걸었던 것 같아. 행복했던 순간이 많으면 힘든 일을 거뜬히 이길 수 있대. 오늘을 기억하면서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볼까?


* 아이들이 만들었던 요리들

41. 우리의 전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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