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힘들었지 (2025.12.13.(토)) *
- 많이 힘들었지….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울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쉽지 않다. 머리가 따라주지 않고 아이들도 매일매일 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 명렬을 보고 이름을 외우는 것은 근래 아예 시도하지 않는다. 사진과 실물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독 눈에 띄게 행동하는 아이가 아니면 얼굴만 익혀 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내 앞에 뛰어와서 이렇게 질문하는 녀석들이 있다.
-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
처음에는 ‘무슨 이런 녀석이 있나!’라고 생각하며 생각나는 이름을 말하곤 했다.
- 음…. A??
- 아니에요!!!
- 아?? 그럼, B??
- 쳇! C예요!!!
- 아?
이렇게 말하고는 토라져서 휙 가버리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귀엽게 바라본다. 자기 이름을 알아맞혀 보라는 그 ‘용기’가 부럽다. 그러고는 며칠 뒤 산책길에 만나서는 또 물어본다.
- 선생님! 제 이름은요??
- 아…. (C던가, D던가 고민하다가) D??
- 쳇!!!
아이들의 이름을 익히는 것은 쉽지 않다.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하하.
우리 학급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께서는 아마도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학기 초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익히는 것이 힘들 수 있어서 교실 앞에 있는 교탁에 자리표를 붙여 놓았다. 교탁 위치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자리표에 있는 이름을 부르면 훨씬 더 쉬우니까.
학급마다 자리 배치 기준이 있을 텐데, 어떤 학급은 오는 대로 자유롭게 앉기도 하고 어떤 학급은 선생님이 지정해 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우리 반은 매달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한다. 먼저 자리표에 무작위로 번호를 적어 두면, 아이들은 제비 뽑은 종이에 적힌 번호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는다. 해당하는 자리에 자기 번호와 이름을 쓰면서 매월 정해지는 ‘주제’ 문구도 써야 한다. 번호와 이름만 쓰는 것보다 아이와 관계된 특징까지 적으면 더 빨리 친숙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났던 3월에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쓰는 것이었고, 3월 말에는 본인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쓰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작성한다.
- 곱창을 좋아하는 (32) OOO
- 친절한 (33) △△△
4월에는 닮은 사람, 5월에는 닮은 동물, 6월에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이름, 7월에는 좋아하는 꽃, 8월에는 하고 싶은 일, 9월에는 가고 싶은 나라, 10월에는 좋아하는 영화, 11월에는 좋아하는 과자를 주제로 했다. 매달 주제가 바뀌니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께서도 교탁 위에 붙은 자리표를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이 말했다.
- 오, 이번 달에는 E 아이스크림이던데요?
- 아이들이 F 영화를 알더라고요??
- 매달 주제가 바뀌니까 재미있네요!
학급 인성예절부에서 학급 아이들과 의논해서 매월의 주제를 정하는데,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는 어떤 주제로 정했는지 물어보니, 이렇게 말한다.
- 1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칭찬 한마디로 정했어요!
이 말을 듣고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어쩜 아이들은 이렇게 적절한 주제를 찾았을까!
- 자기를 칭찬하는 한마디라니!
-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아….
아이들이 작성한 문구를 보고는 또 울컥했다. 대부분 ‘수고했어.’ ‘열심히 했어.’ ‘고생했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눈으로 똑똑히 보아온 나로서는 자기 자신을 격려하는 아이들의 말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2025년도의 3월에 시작한 31기와의 생활이 12월 12일에 일단락되었다. 주말까지 4일밖에 되지 않았던 여름방학을 보내고 7월 말부터 곧바로 시작했던 2학기를 끝맺음하며 겨울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G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80일의 겨울방학입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영화 아세요? 세계여행을 할 수도 있는 아주 긴 시간입니다!
놀라서 세보니, 정말 80일이었다! 오! 생각도 못 했던 (긴) 시간이다. 물론 아이들은 2월에 하루를 나와야 하고, 교사들은 며칠 더 나와야 하며, 나는 12월, 1월, 2월에 며칠씩 나가야 한다. 그래도 80일이라니!
오랜만에 하는 담임이어서 정말 정신없이 바빴지만, 작년까지의 학년 부장과 다른 점이라면, 무언가 뿌듯함이 남아있다는 것! 내 눈에 무언가 보이거나 완성되거나 손에 잡히는 것은 없지만, 무언가 채워져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또 얼마나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2025년 생활이었는지…. 말로도, 글로도 풀어낼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내 안에 쌓인 시간이었다. 질끈 두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던, 순식간에 휘리릭 지나가기를 그토록 바랐던 2025년도…. 빨리 겨울방학이 와서 학교에 가는 것을 한동안 멈추고 싶었던 2025년도였다. 내가 얼마나 얼마나 간절하게 12월 12일을 기다렸는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2025년은, 겨울방학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었고 ‘괴로움의 시간’이었고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차마 실제로 하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2학기부터의 달력에 매일매일 X자를 그리면서 아침을 맞았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 아, 또 하루가 지워졌어! 이제 며칠 남은 거지?
그토록 오래 아프도록 간절히 기다렸기에 피곤함이 몰려와서인지, 아니면 석면 공사를 위한 음악실 정리 때문에 어제는 밤 11시가 다 되어 학교에서 나와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올해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토요 새벽기도회를 오늘 빠지고 말았다. 아마도 이해해 주실 것이고 용서해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 1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칭찬 한마디!
나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냥 지금 떠오르는 말은 이것이다.
- 잘 참았어….
- 잘 버텼어….
- 애썼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아마도 이것일까….
- 많이 힘들었지….
80여 일의 방학 동안 무얼 해야 할까. 이것도 저것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토록 회자하고 있는 ‘H 부장’에 대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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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칭찬 한마디!)를 적어 놓은 우리 반 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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