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한 음악은 언제 가르쳐? (2025.11.29.(토)) *
- 순수한 음악은 언제 가르쳐?
추석쯤에 라디오에서 이런 광고가 나왔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 요즘 나오는 차에는 자율 주행 기능이 있어서 많이 사용하실 텐데요, 장거리 운전이 피곤하다고 자율 주행 기능을 너무 의지하시면 생각지도 않게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적절하게 사용하셔야 안전한 연휴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몇 달 전 새로 차를 구매한 A가 나에게 질문했다.
- 선생님~, 자율 주행 기능 사용해 보셨어요?
- 아뇨!
- 저는 가끔 사용하는데, 아주 편하던데요.
- 저는 불안해서 아직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 선생님은 거리가 머니까 사용해 보세요. 아주 편해요.
A보다 몇 달 먼저 차를 구매한 내 차량에도 자율 주행 기능이 있지만, 6개월 동안 사용 방법을 몰라서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에 가끔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핸들을 놓아도 차선을 지키면서 주행한다는데 갑자기 다른 차량을 받으면 어쩔 것인가. 하지만 조만간 운전자가 없이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되는 완벽한 안전 시스템 차량을 마음 푹 놓고 운전하게 되겠지.
선생님들과 요즘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 예전 같으면 한 학기에 10개를 가르쳤을 텐데, 지금은 1년에 5개도 못 가르치는 것 같아요.
- 내용은 더 쉬워진 것 같은데, 아이들이 따라가지를 못하네요.
- 교과 수준을 더 낮춰서 가르쳐야 하나 봐요.
- 저는 10개 중 3개만 가르치기로 했어요. 그것도 힘들어해요.
- 아, 옛날에는 어떻게 가르친 걸까요??
코로나 이후로 부쩍 바뀐 학교 시스템이 근래 들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휘몰아치며 바뀌고 있다. 약 4년 동안 약간 ‘위쪽’에서 학년 ‘업무’에 집중하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보니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게 된다. 지난주 토요일, 온라인 연수가 대세인 요즘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아주 오랜만에 오프라인 연수, 즉 대면 연수에 참석하게 되었다. 주제는 ‘평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연수 이전에 각자 자기 학교에서 하는 수행평가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 차례가 왔을 때 우리 학교 이야기를 조금 하게 되었다.
- 매우 부끄럽지만 소개해 볼게요. <할렐루야>로 가창 시험을 보고, 논술형은 이렇게 하며, 음악분석은 이렇게 하고 어쩌고저쩌고~
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반응했다.
- <할렐루야>를 부른다고요??
- 아이들이 악보를 볼 줄 아나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오히려 놀란 내가 재빨리 대답했다.
- 생각보다 <할렐루야>가 쉬워요!
- 모두 악보를 볼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척하는 것 같아요.
특히 기악 창작과 음악분석에 대해서는 이렇게들 말해서 나를 더 부끄럽게 했다.
- 이런 것을 작성한다고요? B 고등학교(우리 학교)이기에 가능한 수행평가네요.
다른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에는 주로 이런 내용이 많았다.
- 아이들이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아요.
- 저 혼자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 아이들이 힘들어해요.
학교에 나오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얼굴이 뜨뜻해지고 어디에 숨고만 싶었다. 고(高)경력 선생님도 있었지만, 주로 새내기 교사가 많았는데 수업에 대한 열정과 고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딱 보아도 학교에서 힘이 넘치는 교사일 것 같은 선생님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 모습이었는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진행되었던 연수의 결론은, 곧 학교의 모든 시스템에 AI가 적용될 터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학생과 교사 모두 AI를 두루 사용하고 있지만, 전면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수업과 과제와 평가에 AI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앱과 프로그램 중 특히 AI로 논술형 평가 채점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평가 연수를 하던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 AI를 사용해서 채점하더라도 선생님이 채점 기준을 세세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채점 기준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차라리 직접 채점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 AI는 교육의 보조 기능입니다. 교육의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가끔은 핸들에서 두 손을 떼어놓고 자율 주행 기능을 사용하더라도 그보다는 좀 더 자주 직접 핸들을 잡고 운전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부문에서 AI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더라도 AI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말이겠다.
AI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Early Bird(얼리 버드)’처럼 이것저것을 재빨리 사용하고 응용했지만, AI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으니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초현대식 도시에서 복고풍 건물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나 보고서 제출에 AI를 아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수업이나 평가에서도 AI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말에 어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 그럼, 순수한 음악은 언제 가르쳐?
정말, ‘순수한 음악’은 언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거지??
***********************
***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주일날 성가대 합창곡 피아노 반주 연습을 한다. 늦은 시간까지 피아노를 치는 것은 폐가 되기 때문에 보통 오후 6시 이전에 마친다. AI 단어로 가득하였던 평가 연수가 끝난 시각이 오후 5시 30분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 30분이 넘는 늦은 시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연수가 끝나고 학교로 차를 돌려서 음악실에서 연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주일날 성가곡이 어려운 곡이어서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하기도 했지만, 사실, AI 단어의 차가움이 다소 불편했기에 피아노를 치면서 무언가 해소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었다.
토요일 저녁 6시에 학교에 도착한 (서울에 사는) 나를 본 일직 담당자분이 무척 놀라셨다.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 음악실에서 저녁 7시 30분까지 피아노를 좀 칠게요. 제가 연습을 해야 해서요.
음악실의 그랜드 피아노에서 토요일 저녁 7시 30분까지 피아노를 치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평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던 C가 말했다.
- 앞으로 몇 년 사이에 학교의 많은 것이 놀라울 정도로 바뀔 겁니다.
당연히 AI가 사람을 대신하고 학교 현장도 바뀌겠지만, 피아노 치는 사람은 필요할 것이고, AI가 쏙 빠진 순수한 음악만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강렬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토요일에 내가 치던 성가곡 피아노 악보 중 일부
#AI #교육 #평가 #고등학교 #음악 #피아노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