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명을 먹이는 사람 *

by clavecin

* 만 명을 먹이는 사람 (2026.02.07.(토)) *


- 만 명분을 혼자 먹는 사람과 만 명을 먹이는 사람


A가 한쪽 눈에 열감이 있다고 하여서 안과에 같이 갔다. 이런! 다래끼라고 한다. 재작년에도 생겼던 부분인데, 거기에 또다시 생겼다. 피곤한 건가. 내친김에 좀 더 다른 곳으로 가보면 어떨지 해서 집 주변의 병원을 검색해 보니, 얼마나 안과가 많은지! 성형외과에서 안과 쪽을 진료하는 곳들도 많았다. 2개가 있으면 그중에 1개를 고르기 쉬울 텐데, 근처에 있는 ‘유명한’ 안과병원을 50여 개도 넘게 추천받으니, 도저히 고를 수가 없었다.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저명한 B 안과에 가보기로 했다. 집에서 가기가 쉽지 않은 거리였고, 관련 과가 모두 예약되어 있어서 문의해 보았다. 한밤에 전화했는데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고 새벽 일찍 오면 예약 없이도 진료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서둘러 가 보았다.

우리가 이른 새벽에 도착했을 때 이미 와 있는 사람이 4명이나 있었다. 새벽 7시 30분에 접수 순서를 뽑고, 8시에 접수, 8시 30분에 진료를 시작했다. 역시나 유명한 곳다웠다.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B 안과가 영등포시장 사이에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주차장 안내, 로비 안내, 접수하시는 분들, 보조 간호사분들까지, 그리고 자원봉사 하던 아가씨까지, 모두 친절하고 여유가 있다.

B 병원은 1962년에 개원을 해서 올해로 64년이 되는데, 병원의 설립자는 올해로 98세가 되는 안과의사 C 원장이다. 그는 1991년에 D 대학교를 설립하기도 한다. 그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니, 종교가 불교다. 무엇보다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진료를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물론 외래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마인드가 요즘의 병원과 달랐다. 병원 로비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 병이 날짜 가려서 찾아오나?

치료가 필요한 순간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 진짜 병원이다.

눈 아픈 사람은 어느 때라도 찾아와 진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365일 24시간 B 안과는 환자를 위해 열어두어야 한다.


B 병원을 다녀온 뒤, 지인 E와 이야기했다.


- B 병원이 64년의 세월 동안 이렇게 유명하면서도 분원을 두지 않고 이곳에만 있는 것이 대단해요. 건물이 전혀 호화롭지 않았고 소박했는데, B 안과가 시장통에 있는 것이 놀라웠고 경이롭기까지 했어요. 왜 강남에 분원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 다른 병원들처럼 확장하고 강남에 열었다면 설립 이념을 지킬 수 없었을 거예요.

- 오히려 대학교를 설립했더라고요.


B 병원에 대해서, 또 그 설립자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강남에 문을 연 병원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설립 이념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신념이 한 사람, 한 조직 안에서 64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을까.

오랜만에 만난 F가 질문했다.


- 기도할 때 뭐라고 기도해?


교회에 다니지 않는 F의 질문이기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신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 나 자신을 위해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하지.

- 또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하고.

- 나라나 세계를 위해서는 아주 가끔??

- (모두) 하하하!


우리의 말을 듣는 F의 태도가 진지했다. 왜 그랬을까? 그래서 되물었다.


- 왜 기도에 관해서 물은 거야?

- 기도가 어떤 건지 궁금해서.

- 혹시 기도하고 싶게 된 거야??


모두 다 크리스천이었던 우리는 일시에 F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 이번 기회에 F가 교회에 다니면 좋겠다!

- 정말!


우리가 이렇게 외쳤던 이유는 F가 기독교적인 내용을 지닌 영화 G의 음악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야기로, 국제 지원을 받기 위해 가짜 부흥회를 하라는 당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기독교인 연기를 하고 찬양하다가 진짜로 신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 북한 장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일명 가짜 찬양이 진짜 고백이 되었던 것. 찬송가와 CCM이 많이 나오는데 이 영화음악 작곡, 편곡 및 제작자가 F인 것이다. 그런데 F는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말했다.


- 영화처럼, 영화음악 만들다가 진짜로 기독교에 관심 두게 된 거 아니야?


영화 G가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고는 있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감동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F의 음악이다. F는 그런 역량을 어디서 끌어온 거지?? 또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런 진지한 내용을 어떻게 이렇게도 재미있게 만든 거지? 놀라운 사람들이다.

고 정주영 회장은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설명했다고 한다.


- 만 명분을 혼자 먹는 사람과 만 명을 먹이는 사람


만 명분을 혼자 먹는 사람은 자기 능력이나 권력을 개인의 이익과 사치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사람을 뜻하고,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은 말 그대로 사회 전체가 함께 잘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강남의 화려한 분원 대신 영등포 시장통을 64년째 지키고 있는 B 병원. 그리고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신을 향한 가장 진실한 고백을 음악으로 빚어낸 F와 영화 G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만 명을 먹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는 유명세나 반짝임이나 높음보다, 세상이 좇는 것과는 확연하게 의미가 다른 것들을 꿈꾸고 만들어 내서 사람들을 먹이고, 살려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런 사람을 가르치고 기를 수 있겠지?


*** 영화 G의 엔딩 크레딧 중

50. 만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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