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짠하다는 의미 (2021.12.18.토) *

by clavecin

* 짠하다는 의미 (2021.12.18.토) *


올해 10월 초 경에 이번 27기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에 대한 다양한 내용으로 설문조사를 했었다. 학교 선택, 공부, 학교생활과 신앙생활 등등 아이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진행한 설문이었다. 그중에 이런 질문들을 넣었었다.


- 1년 동안 전학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61.2%의 학생들이 전학을 생각해 보았다고 응답을 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지 않았다.


또 이런 질문도 해 보았다.


- 우리 학교 졸업생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75.6%의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힘들고 지칠 수 있겠지만 고3까지 다니면서 결국 졸업까지 하겠다고 응답을 했고, 전학을 고민 중이라는 아이들은 9%,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5.4% 였다.


학교와 프로그램은 마음에 들고 즐겁고 재미있지만, 성적과 등수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너무너무 엄청나기에, 학교를 끝까지 다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본인이 그 스트레스를 잘 견딜 수 있을지,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을 다시 세울 수 있을지, 그래서 전학을 갈까 말까 수도 없이 고민하면서 결국 고3까지 다녀서, 졸업까지 할 수 있을지.... 아이들의 그 고민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 응답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론은, 힘들고 지쳐서 전학에 대한 고민을 매일 하고는 있지만, 잘 견뎌서 졸업까지 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고나 할까...



얼마 전 아침에 듣는 프로그램에서 어느 분이 보내온 사연이다.


- 올해 직장을 3번 옮겼습니다. 오늘 4번째 직장에 가는 첫째 날입니다.


메시지를 읽은 진행자도 깜짝 놀라며 축하의 말을 해 주었다.


- 아...3번이나 옮기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이번에 옮기시는 곳에서는 오래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가실 곳이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개교 10주년이 되었을 때 학교 어느 모임에서 이런 논의를 했었다.


- 10년을 한 직장에 다녔는데 무언가 기념품을 만들어서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 (여기저기서) 그래요...

- 그렇게 해야죠...


그런데 어느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 고작 10년인데 무슨 기념품을 만들어요....

그냥 그 돈을 모아 놓는 것이 어떤가요...


그 말에 ‘크게’ 당황한 내가 아마도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 선생님...한 직장에 10년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이런 저런 논의 끝에 결국... 그 모임에서 10주년 기념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 ‘고작 10년’이라는 단어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 말을 누가 했는지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나는..이런 것이....쓸데없는 것이....그냥 각인된다....) 그리고 그 모임도, 10년을 ‘고작’이라고 생각하던 그 모임도, (당연하게) 없어졌다.......



고등학교 3년을 다니는 것도, 계속 다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매일 고민을 하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 것처럼 직장생활하는 사람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켓 안쪽 호주머니에 ‘사직서’를 넣어놓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직장생활 초반에 나에게 A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들이 기억이 난다.


- 도대체 B(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같이 교과서 작업을 하던 C선생님은, 학교에서의 여러가지 일들로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던 나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남의 돈을 내 호주머니에 넣는 일, 쉽지 않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지금은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지만, ‘고작 10년’이라는 단어에 내가 불끈했던 것도, 직장을 3번이나 옮기신 분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던 것도, 내가 초반에 정말 많은 고민들을 했었기 때문이다.


D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선생님들을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뭐 좀...안쓰러울 수도 있겠지만, 뭐가 짠하다는 건가.....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어제 어떤 일로 몇 분의 선생님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물이 나서 혼났다. 나에게 왜 우냐고들 하시는데...뭐랄까.. 흘러간 세월....젊음.....안쓰러움.....속상함...안타까움...지침...늙음.....짠함......


퇴근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건 다음 또 한참을 울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서 나도 놀랐다. 왜 그랬지...



한 직장에서 거의 30년의 세월을 보냈으면 서로가 더 가족같이 애틋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겪고 있다. 우리가 집에서 가족들과 이런저런 일들로 티격태격하는 것과 똑같다. 어쩌면 ‘잘 모르는 남’이기에 더 많은 오해와 갈등이 쌓여져 있고, ‘잘 모르는 남’이기에 억지로 그 오해와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다 보니 어찌할 수 없을 지경까지 서로가 멀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굳이 풀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어떤 관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같은 뜻을 품고 한 곳에 모였고, 광야같은 황무지를 함께 개척하며 그 추웠던 시절을 함께 겪어왔고, 창창하고 아름답던 젊은 날을 지나 주름살과 흰머리가 그득해진 지금의 시간까지 어느 한 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두어 보려 한다.


살아온 서로의 인생 이야기도 잘 모르고, 지금 얼마나 힘든지, 또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전혀 모르지만, 또 방법과 목표와 생각은 모두 다르더라도, 일단은 지금 이곳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학교를 다시 바라보고 선생님들을 생각해 본다.


그 이유와 의미가 무엇이든지 같은 직장에서 27년을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고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짠한 마음으로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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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바라본 학교의 모습..



아이들이 찍어서 보내 준 사진 중 일부...


학교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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