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의 이유 (2022.01.29.토) *
요즘의 MZ(1980년대 초 ~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 세대가 쓴다는 용어들..
- 어쩔티비 : 어쩌라고, 가서 티비나 봐
- 저쩔티비 : 어쩔티비에 맞받아서 쓰는 말
- 서동요기법 : 소원하는 일을 이미 벌어진 듯 꾸며 말하는 기법
- 갓생 : '갓’(God·신)과 ‘인생’을 합친 단어,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삶
일단은 단어를 생략해서 쓰고 즉각적인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다. 진지함이 빠져있는 느낌이지만 그 안에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함축적으로 잘 담아낸, 재치 있는 신조어들인데, 이런 용어를 알아야 젊은이에 들어간다고 한다. 계속 만들어질 신조어 몇 개 알아놓는다고 젊어지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몇 개 스킵...
꽤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만들어 보급하는 ‘나의하루’라는 플래너가 있다. 신입생들에게는 일괄적으로 배부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희망자들만 구매하고 있다. 당시 학교에서 의욕적으로 진행하던 ‘명사초청특강’과 다양한 강의내용을 적는 지면들과 더불어, 매일의 학습플래너를 작성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매년 디자인과 구성이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목적은, ‘계획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예전 조금 젊었던 담임시절에는, 무슨 치기였는지, 매일 오전에 우리반 학생들의 나의하루를 걷어서, 아이들이 작성한 것을 확인하고 도장을 찍어서 다시 나누어 주었었다. 새 학년이 되어서 내가 하는 일 중에 하나는, 나의하루를 걷기 위해 마련해 놓았던 우유 상자에서 전년도 학반을 떼어내고 새로운 학반을 깨끗하게 붙이면서 마음을 다잡는 일이었다.
- 올해도 부지런히 걷어봐야지...
교무실에 나처럼 나의하루를 매일 걷는 B선생님이 계셨는데, 우리는 ‘나의하루 소년소녀’로 불렸었다. 무슨 열심이었을까 싶은, 정말 지금은 도저히 할 엄두가 나지 않는, 놀라운 열정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해냈었다. 그것도 몇 년 동안이나 쭈욱.....
그 시절, 아이들이 나의하루를 성실하게 작성하게끔 하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 유명한 사람들은, 메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
- 계획한 대로 생활할 수는 없지만,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어.
- 작은 필기도구와 나의하루를 가지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아..
- 나의하루가 좀 커서 부담된다면, 자켓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수첩과 필기도구를 넣어서 다니면 좋지 않을까..
- 순간순간 떠오르는 내용을 수첩에 적어 봐....
나의하루가 만들어진 이유는, 학습 계획이었지만, 나는 아이들이 작성하는 다른 내용들을 더 주의깊게 보았었다. 모퉁이에 낙서하는 것들, 강의를 들으면서 정리한 것들, 주된 문장 사이사이에 적힌 것들, 중간중간 섞인 그림들...
오히려 그걸 통해서, 의외로 그림과 만화에 재능이 있는 녀석, 가족문제나 이성문제로 고민하는 녀석들, 너무나도 빈틈없는 녀석들 등 다양한 것들이 읽혀졌었다. 무슨무슨 공부를 했다고 까맣게 적어놓고 동그라미를 치고 형광펜을 칠해 놓은 것도 물론 대단하게 보았지만, 오히려 구석에 있는 것들을 통해서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좋았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몇 가지는, 아무리 정리와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정리와 메모가 전혀전혀 되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과, 정리와 메모를 잘 한다고 꼭 우수한 인재인 것은 아니라는 것과, 반대로 정리와 메모를 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듣고 보는 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조차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과, 특히 자기의 생각을 글로, 특히 장문의 글로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나의하루 검사를 멈추었고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쓰는 글을 볼 기회가 있으면 유심히 잘 살펴본다. 내가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자주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 여러분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여러분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과생이건 이과생이건 말이죠.. 여러분을 직접 만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의 글로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게 될테니까요....
글을 잘 쓴다고 괜찮은 사람인 것도, 글을 못쓴다고 엉망인 사람인 것도 아니지만,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의 생각을 알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순간적으로 발설되는, 그래서 좀더 실수가 많은 말보다도, 글은 좀 더 시간을 들여서 몇 번이라도 수정과 보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실제의 그 사람보다 좀더 나은, 괜찮고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우리의 생각과 어떠함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의 어떠함을 글로 나타내어 선보이고, 다른 사람의 성품과 생각을 글로 만나게 되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좀 포장되고 과장되게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그 글 안에서는 그 사람의 어떠함이 숨김없이 나타나게 되니까... 그리고 글을 읽다보면, 그것이 확실하게 보여지고 읽혀진다는 것도...
단어 선택, 감정 표현, 띄어쓰기, 줄임표, 마침표와 느낌표와 물결 모양까지... 모두다 나를, 그를 나타내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아마도 처음에는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혼자만의 글이었을 것이고, 자기의 그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면서 다른 이에게 자기의 글을 보이게도 되었을 듯...
마치 혼자만의 끼니 해결을 위해서 별 준비 없이 작은 식사 준비, 요리를 하던 사람이, (보잘것 없을 수도 있는 부끄러운) 그 요리를 누군가와 함께 먹고 싶은 어느 순간...이 생기는 것처럼.....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말이다.,,,
괜찮은 글을 읽었을 때,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나 혼자만의 감정으로 남겨놓아도 되지만, 왠지 그 경험을 함께 하고픈 그 순간들....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당신은 어떤지..??...에까지 이르면 좋겠지만, 행여 알지 못하더라도, 같은 것을 읽고 듣고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들이 있다.
패스트푸드와 배달음식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반찬이 없더라도 집밥과 오랜 시간이 들어가는 한식을 찾게 되고 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짧은 단어와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에 충실한 시대에 살면서, 길고 지루하고 심각한 강의나 글은 선택받기 어려워진 지금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좀더 느리고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것을 찾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쉽게 보내게 되는 카O메시지나 문자나 이메일보다, 긴 편지를 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오늘도 ‘갓생 -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삶’을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글 하나는 남기고 생각을 공유해 보며 1월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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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한 달 동안, (2022 - 선배이야기)를 학교 홈페이지에 탑재했다.
작성한 아이들의 글을 마지막으로 탑재하면서, 짧은 단상을 올렸다.
중요한 내용을 엑기스로 담은 한 장의 페이퍼부터 50여페이지의 논문과 같은 글을 작성한 아이들까지, 정성스런 아이들의 글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쓰기의 실력이 달라지는 것도 보이고, 자기의 비밀을 공유하는 마음도 예쁘다.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글을 쓴 걸까......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고 가는 아이들.....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