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복을 생각하며 (2022.02.05.토) *

by clavecin

* 신영복을 생각하며 (2022.02.05.토) *


누구나 그렇겠지만, 계획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대부분 크나큰 포부로 인생을 계획하고 시작하게 되는데, 그 인생 시간표대로 계획한 바를 의도했던 시간에 정확하게 ‘이루어 내며’ 쭉쭉 뻗어나가는 인생도 많이 보아 왔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또 어떤 사람은 계획했던 그 시간이 훨씬 더 단축되는 천재형도 많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단조로웠던 계획표보다 훨씬 더 멋지고 대단하게 일명 ‘성공 스토리’를 쓰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젊은 날 많이 바라던 인생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은 처음의 계획보다는 좀더 돌고 돌아서 늘어지는 경우도 많고, 또 어떤 이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어서 더 잘 펼쳐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느 인생 하나도 허투루 쉽게 읽을 수 없고 감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성공인 듯 보이지만 실제는 성공이 아닌 경우도 많고, 겉으로는 실패한 불쌍한 인생으로 보이지만 길게 보면 실패가 아닌, 성공하는 인생의 중요한 초석으로 쓰여지는 경우도 아주 많다. 이제는 더 이상 젊지 않은, 좀 더 나이든 우리들이 간절히 바라는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제발 이렇게만 펼쳐져라..라는 듯이...


A가 존경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신영복’이라는 분의 책을 찾던 중 <처음처럼>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분량이 적은 글과 넘치는 그림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 처음에는 짧은 글들을 한번 쉭 가볍게 읽게 되고 두 번째로는 천천히 다시 읽어보게 되고, 세 번째로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한 단어씩 짚어보며 다시 읽어보게 되는, ‘긴 호흡과 긴 시간’이 필요한 책이었다. 다 읽고 난 뒤에도 계속 생각이 나고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다시 들추어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27살에 들어간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보낸 후 가석방 된 나이가 47살, 75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28년을 사회에서 활동했다. 전공은 경제학과이지만 그의 주된 전공은 인문학자, 작가로 보여진다. 47살부터 본격적인 대학교 강의를 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감옥에서 썼던 편지의 출간으로부터 그의 생각이 대중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그의 글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들은, ‘더불어, 숲, 함께, 여럿이, 나눔, 동행, 만남, 관계, 삶’ 등의 단어다. 이런 단어가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혼자만의 고독과 외로움이 얼마나 힘들었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얼마나 간절히 원해왔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이분의 사상과 글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에 나의 이 짧은 소견으로 그분의 글에서 무엇이 좋고 그래서 내 생각은 어떻고 하며, 함께 엮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사실 그 분의 사상과 생각에 대해서보다, 나는 이 분의 삶 전체를 쭈욱 펼쳐놓아 보고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상고를 나와서 서울대학교를 들어갔고, 27살에 사형 언도를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으며, 29살에는 무기징역을 선도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평생동안 있어야 했던 그 감옥에서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이, 나를 감동시켰다. 삶에 대한 어떠한 꿈을 꿀 수 없었을 그 축축한 장소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시기에, 그는 무엇인가를 꿈꾸었고, 무엇인가를 배웠으며, 무엇인가를 시도했다는 것......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캄캄하고 어두었던 그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도 조용히 흐트러짐 없이 무언가를 했던 것일까....아마도 나중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서 책을 내거나 서화전을 하거나, 결과론적으로는 유명인이 되어버린 그의 중년기 이후의 삶은 당연히 아예 생각지도 못했을텐데 말이다....... 죽어서야 감옥을 나가게 되는 인생이었을텐데 말이다...


젊은 날에 유명했다가 감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젊은 날에 갑자기 끌려들어간 20년의 동굴생활이 있었기에 그의 인생후반이 지금처럼 빛났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인생의 어두운 시간을 만났을 때, 당신은, 그 무언가를 할 수는 있을까....


전에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 유명한 사람들, 특히 창작하는 사람들은, 빛나고 행복했던 시절보다, 어둡고 절망하던 그 시절에, 일생일대의 창작물이 나오게 돼.

- 유명한 음악가, 화가, 작가들의 역작들은, 그들의 어두운 시절에 만들어졌어..

- 어둡고 힘든 시기에는 생각이 깊어지고 전혀 다른 에너지가 나오거든..

- 그 시절을 제발 그냥 버리지 마....

- 성적표를 받아든 날, 내가 밥을 먹어도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

(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사실...*^_^*..)

- 너희의 어둡고 힘든 시기에, 무언가를 시도해 봐..

- 낙서를 해도 되고, 그림을 그려도 되고...

-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글쓰기야... 글을 써 봐...


그랬다. 나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권했었고, 그러면서 그 어두운 터널을 잘 견뎌보라고, 애써보라고, (쉽게 또 멋있는 척) 이야기했었는데...


정작 내가 그 어두운 터널을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 나는 정확하게 3년 동안 글쓰기를 멈췄었다. 절필을 했었다. 도저히 되지 않았고 할 엄두조차,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1년 동안은, 일절 쇼핑도 하지 않았고 드라마 등 모든 미디어도 끊었었다...직장도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아이들에게 권했던 말이 단지, 이론임을 깨달았다. 유명한 사람들은, 그 이론을 실천했기에, 유명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라는 걸, 난, 그때서야, 내가 경험을 하고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게 될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힘든 시절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 시기를 견뎌보라고, 이겨보라고, 할 수 있다고...쉽게 말하면 안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는, 그 어둠을 뚫고 무언가를 시도해 보려 했다는 것이, 놀랍다. 아마도 어쩌면 신영복은 꿈꾸었다기보다, 그냥 무엇인가를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니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묵묵히, 덤덤한 마음으로 다만 움직였던 것이 아니었을까....아니 아무것도 꿈꿀 수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신앙이라도 있었지만, 이 사람은 신앙도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을까...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일깨우는 멋드러진 말과 문장과 글보다도, 누군가가 살아온 여정 그 자체가 다른 이에게 큰 감동이 된다는 걸,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사실, 신영복의 사상과 글씨체와 투박한 그림들보다도, 그가 견뎌온, 이겨온, 통과해 온, 살아온 그의 고통스러운 삶 자체가 더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죽지 말고....


지금 걸어가는 길이 아직도 어둡고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어쩌면 어떤 이는 지금 어둠의 시작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모두들 그 어둠을 통과해서 끝까지 살아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무언가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그 시기를 묵묵히 통과해 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도 또한...그 터널을 통과했을 때, 우리 뒤에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후광이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모두들 살아내기를...잘...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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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기 아이들이 졸업을 했다.


당연히, 당연히 그 날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 학교 공사와 코로나와 여러 이유로 꼭 필요한 사람만 학교에 오는 것으로 되었다.


함께 모여서 졸업식을 해야 하건만, 몇 명만 비전홀에 있고 거의 모든 학생은 교실에서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었다.


1학년 때 담임했던 녀석들이 단체로 모여서 찍은 사진을 나에게 보내 주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사진도 올릴 수 없는 시대가 되어서 나 혼자 간직한다. 아쉽게도..


적어도 이번 아이들은 코로나 이전의 학교 활동을 마음껏 했던 아이들이어서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1학년 때 수련회의 사진 영상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런 수련회를 언제 또 할 수 있을까.....


졸업을 하면서 부푼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아이들도 있겠고, 졸업을 하면서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 가는 아이들도 있겠으며, 졸업과 함께 갈 곳을 잃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묘미는 이것이다.


지금의 성공이 진짜 성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과,

지금의 실패가, 진짜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이것을 깨닫는데에, 우리의 온 인생이 들어간다는 것......

빨리 깨달을수록, 좀더 빨리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결과가 어떠하든지 일단 졸업까지 살아낸 자기 자신을 충분히 넘치도록 격려하기를..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일단 오늘을 잘 살아내기를..

그리고, 무엇을 할지 모르는 내일은, 내일에 맡기기를....


일단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곧, 조만간, 어떤 모습으로든지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지금의 모습으로 인생을 쉽게 예단하지 말기를....


모두의 건투를 빌며...


-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길 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 책의 서문 중에서 -


-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처음처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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