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인생 이야기 (2022.02.12.토) *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시집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
학교에서 1년에 2번 정도 발간하는 교지에 개교 이래로 내 이야기를 꽤 많이 올렸었다. 학교에 혼자 있는 음악선생님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눈에는 이래저래 뭔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 같이 궁금한 모습이었던지 ‘My Life’를 많이도 썼는데 그 자료들이 남아 있다. 매해 바뀌는 아이들은 한 번씩 읽고 마는 것이지만 쓰는 나로서는 같은 이야기를 쓰더라도 조금씩 방향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맨 첫해에 교지에 실린 내용은 어떻게 우리 학교에 오게 되었는지, 신앙은 어떠했는지 등의 이야기였다면, 지금은 점점 음악교육과 교사라는 것에 방향이 맞춰진다. 특히 요즘에는 진로시간을 위해서 음악교사나 교직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하러 오거나 이메일을 보내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되었고 음악선생님은 어떻게 되는지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예전에는 음악 전공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면 지금은 음악교사에 대한 질문이 월등하게 많다는 것이다. 아니, (순수) 음악 전공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 약간은 슬픈 음악계의 현실이라는 것을 점점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사실 내가 교지나 인터뷰에 실었던 이야기들은 딱 글로 적을 수 있는 깊이의 이야기들이다. 겉으로 나타난 표면적인 것들, 예를 들어 그만둘 뻔했던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많은 선생님들과의 만남, 그래서 어떻게 S대에 갈 수 있었으며 교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와 같은 것들이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들은 공적인 곳에 올릴 필요가 없는, 진지한, 지극히 사적인 내용들이다. 모두 다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나의 ‘진짜 인생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순간이 있거나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오랜 시간 알아왔지만 처음 듣는 그분의 인생 이야기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았다.
- 그때 거기에 살았어요?? 나도 거기에 살았는데..
- 아니, 그런 일을 했었어요??
뭐,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나의 경우 아쉽게도, 전혀 생각지도 않게 말문이 열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무언가 나의 진짜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의도하고,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정확한 판단이 들었을 때 하게 되는 경우일 것이다. 이런 건 또 머리가 감정을 제어하니까....물론, 뭐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다...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는 것...
요즘 자주 언급되는 MZ세대에게는 개인적인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가족관계, 가정사, 사적인 질문은 당연히 금물이며, 먼저 요구하지도 않는데 나름 생각해 준답시고 하는 충고나 조언은 더 금물이다. 이번 주말에 뭐 할 예정인지, 퇴근해서는 뭐 하는지 이런 질문조차 해서는 안된다고들 하니, 모두 다 자기만의 영역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분 짓고 인정해 주고 관심 갖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 너의 이야기, 하나도 궁금하지 않으니, 나에 대한 관심도 일절 갖지 말기를...
사실, 아주 깔.끔.한 말이다.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모습...
- 너는 너, 나는 나..
- 안주고 안받기...
약간 그런 느낌이다. 특히 코로나 시기인 요즘에는 더더욱...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원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데 본인과 관계된 온갖 것들을 찍어서 올리고 사방에 알리고 있다.........무언가 이상하고 불안한 시대이며 세대이기는 하다.
- 사실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
다른 사람에게 내 진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누군가의 이런 이야기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는 없다. 특히 알고 싶은 것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람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을텐데, 현재는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고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과거는,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사실, 나의 과거를 풀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어떤 이야기이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듣는 사람을 떨리게 하는 일이며, 특히 듣는 사람 자체에 어떤 의미를 두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말하지 않으면 몰랐을 일을 고이 풀어서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몸 둘바를 모를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왜냐하면, 듣는 사람에게 방점이 가 있는거니까...
- (나를 믿고) 본인의 걸어온 인생을 이야기해 주다니...
지금의 반짝거리는 모습이 과거로부터의 연계성이 있는 것인지, 아님, 그 과거를 끊어내고 무언가 애써서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과거로부터 연결된 어떤 승리보다, 힘든 과거를 이겨내고 이루어 낸 승리가 더 감동적이고 확 다가오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야기를 주의깊게 읽게 되고 듣고 싶어지면서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 열심히 공부했더니, 1등급이 나왔어요...
- 해도 해도 안되는 공부였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니, 4등급이 3등급으로 조금씩 올라가던데요...
아이들이 감동하고 귀를 귀울이게 되는 포인트는 뒤에 있었다. 어려운 상태를 극복해 낸 그 어떤 모습과 아픔을 듣고 싶어 한다...이 세상에는 우리의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치료가 된다는 놀라운 법칙이 존재한다...
나의 진짜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지고 읽혀져서 감동까지 줄 수 있으려면,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졌던 우리들의 과거를 담담히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 그 과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현재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온전히 쏟아부어야겠다는 생각, 미래는, 지금부터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어렵지만. 어떤 미래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누군가가 나에게 자기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준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 왜냐하면... 아무렇게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인생이야기는 한 개도 없으니까...
- 정도와 깊이를 떠나서, 단지 이야기 해 준 것에 고마워 하기..
- 그 시절, 그 시간이 어떠했을까 공감해 보기..
- 더 많은 것을 듣고 싶어도 꾹 참아보기..
- 나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을 내가 고르고 고르는 것처럼,
그도 그럴 수 있으니...애써 참아보기...
차마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많은 비밀과 슬픔과 때로는 그 사이사이에 숨겨놓은 작은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이 그걸 넘어선 후에는, 우리도 모르는새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그 어떤 희망, 초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을 내 보는 저녁이다.
내 진짜 인생 이야기를 해 줄만한 사람을 찾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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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이름이란 뭐지?
우리가 장미를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향기로운 것은 마찬가지일텐데...
- 윌리엄 셰익스피어 - <로미오와 줄리엣> 중.. -
*나의 가치, 너의 가치는,
너와 나의 가치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주변이 어떠하든지,
누가 뭐라고 하든지....
너와 나는 향기로울테니...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