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因緣) (2022.02.26.토) *
오늘 수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신기하게도 A선생님과 3번이나 같이 타게 되었다. 타고 계신데 내가 타거나, 내가 있는데 타거나, 또...... 서로 신기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게 웃었는데, A선생님이 말한다.
- 어..?? 오늘 뭐지..?? 오늘 같이 놀러가야 할 것 같은데..??
2019년도에 같은 학년에서 만났던 B선생님과 작년에도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다른 곳으로 가시는 선생님을 위한 짧은 송사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당일 아침에야 생각이 나서 출근하기 전에 급하게 편지를 썼다.
- 선생님..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2019년 2월 말을 생각합니다....
신혼여행 잘 다녀왔다며 학교에 인사왔던 선생님을 보고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뭐야...연예인이 왔네...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예쁘고 고혹적인 선생님을 본 적이 없어서요..
걱정을 했죠..
애들이 몰려오겠군...
역시나..선생님..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고
무엇보다도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에게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거기에..
김우빈을 닮은 남편분이 싸주시는 온갖 과일과 간식들, 음식들..
아내의 직장에, 손수 과일을 깍아서 또 음식을 조리해서 보내주는
자상한 남편이 있다는 것에..
이런 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소박하고 털털한 성격에, 너무나도 완벽하고 창의적인 학교 행정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수업까지..
못하는 것이 없던 선생님을 2021년도에 다시 만났습니다.....
....
***땅에 바늘을 꽂고
하늘에서 작은 씨앗을 떨어뜨려
바늘에 씨앗이 꽂힐 확률..
이 계산도 안되는 확률로
너와 내가 만난 것이야..
- <번지점프를 하다> 중에서 -
영화에서 나왔다는 저 말이 만일 사실이라면, 내 바늘에 꽂히는 씨앗은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을 두루두루 사귀는 것보다 몇 명을 좀 더 깊이 사귀는 것을 선호하는 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많지도 않은 몇 명과도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지도 못한다.
깊은 관계에 들어가기까지 재고 따지는 것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 정도면 괜찮다는 판단이 들었더라도 자꾸 주춤거리는 것이 내 특징이니, 나보다도 상대방이 지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동성간의 만남도 이러한데, 이성간의 만남은 당연히 진전이 더 느리다. 외모는 보지 않지만 단 하나 보는 것이 있다면 진한 눈썹이었는데, 가족들의 눈썹이 모두 숯검댕이같이 진해서 왠지 그건 좀 지켜주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안경 쓴 사람이 좋다거나, 이과 쪽 또는 어느 특정 분야였으면 좋겠다는 등, 몇 가지의 조건들이 있었고, 그 조건이 아니면,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 한참 젊을 때의 이야기다.
이걸 아는 대학교 때 친구는 종종 이렇게 말해 주었다.
- 쩌기 건너편 써클에, 눈썹 진하고 안경 쓴 C가 있대..
네가 좋아하는 조건이야..
그럼 내가 묻는다.
- 전공이 뭔데??
나에게는 어느 학교인지보다 전공이 중요했는데, 내가 원하는 전공을 그 사람이 공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쩌면 정말 순진한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러니 ‘훅~’하고 한눈에 반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외모가 출중한 경우는 더 거리를 두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 일도 없건만, 나는 외모를 따지지 않고 다른 면을 더 중요하게 보겠다는, 나름 어떤 신조 같은 것이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만남과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기보다 미리 이리저리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아예 만남을 갖지 않거나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더라도 겉핥기식으로 형식적인 만남을 가져온 나였으니, 바늘에 꽂혔던 씨앗들일지라도 그대로 말라비틀어져서 증발해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생각해 본다.
- 그대에게 가는 먼 길 – 류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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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만약 그날 엉뚱한 콩코드 시로 가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곧 바로 월든 호수에 갔다면, 나는 그와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한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는 행운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그날 나는 먼 길을 빙 돌아서 월든 호수로 갔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그와의 만남을 향해 가는 지름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길을 돌아 기적처럼 어떤 목적지,
혹은 어떤 사람에게 도착한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
이 글에서 내 마음을 울리는 한 줄은..
- 우리는 그렇게 많은 길을 돌아 기적처럼 어떤 목적지, 혹은 어떤 사람에게 도착한다.
...기적처럼 어떤 사람에게 도착한다는 문구가 왜 내 마음을 아프게 찌르면서 깊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에게 도착해 있는 것인가.....
지금 내가 도착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 인연(因緣) : 사람들 사이에 서로 맺어지는 관계
바늘에 씨앗이 꽂히는 놀라운 일을 ‘만남’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말도 안되는 그 기적같이 놀라운 일을, 아무 생각없이 거절하고 의미없다고 해 버리고 그래서 ‘인연’을 맺지 못한, 끊어버렸던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번 주 화요일에 2021학년도 27기 학생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날 오후에 진급하는 학급을 발표하면서 2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니, 마지막 정리를 해 주어야 했다. 오늘로 학년조회종례가 마지막 이라고....
아이들은 역시나 아이들같이 사랑스러운 멘트들을 해 주었다. ‘선생님을 잊지 않겠어요!’...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이들은 또, 금방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한다는 것을...그래서 나는 쪼금, 아주 쪼금 쓸쓸해 할 것이고, 뭐 원래 삶이 그런거지....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거릴 것이라는 것을....
아쉽지만 이렇게 27기를 올려보내고, 아직 조금 떨어져서 문밖에 서 있는 28기를 위한 신입생 연수를 진행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화면을 쳐다보는 아이들, 2시간 30분동안 나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었던 아이들, 끝나고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를 큰소리로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또 한번 새로운 옷으로 마음을 단장한다.
나의 바늘에 정확하게 꽂히는 씨앗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꽂히는 모든 씨앗들과 정스럽고 의미있는 일대일 만남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세월을 돌고 돌아서 기적처럼 서로에게 도착한 어느 사람들처럼, 28기 이 녀석들과의 이야기를 고대하고 기대하며 아름다운 만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려고 한다.
재고 따지고 할 그 어떤 조건 없이 내 눈앞에 화~악 나타난 28기와 아름답고 소중하고 즐겁고 의미있는 인연을 만드는 2022학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며.....
또 우리의 마음에 남을만한 한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는 행운들을 갖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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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기를 위한 신입생 연수에서 D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
우리의 인생에는 토끼 같이 빠른 사람이 있고 거북이 같이 느린 사람이 있는데, 서로 경쟁하며 밟고 올라가는 삶이 아니라, 토끼는 거북이를 도와주고 거북이는 노력을 해야 하는, 그래서 서로 협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경쟁을 넘어서서 좋은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들과 삶을 꿈꾸고 노래하는, 귀한 배움과 놀라운 깨달음의 시간들을 가졌던 선배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세대, 28기들이 이제 곧 문을 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