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먼 여행 (2022.02.19.토) *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생신을 놓쳐서, 뒤늦게 선생님들의 선물을 챙기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누구나 잘하는, 넘치는 분야가 있고 무언가 좀 부족하고 아쉬운 분야들이 있을텐데, 나의 경우 잘하는 분야도 많지 않은데다 부족한 부분은 차고 넘친다. 특히 내가 가장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은 사람을 챙기는 일이다. 일단! 부지런해야 할텐데 그렇지를 못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하지 못하다. 머리로는 사람을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가슴과 손까지 가는데도 한참 걸리고, 발까지 가는데는 평생이다. 물론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그러니 매번 마냥 후회 투성이다.
숫자에 대한 기억력은 또 있어서 머릿속에서 무언가 해 주어야 할텐데...라는 생각으로 하루가 다 가거나, 그러다가 때를 놓치거나, 잊어버리거나 한다. 그리고는 아예 생각이 안나면 좋을텐데 잊어버린 것은 또 생각이 나서, 가끔씩 ‘아차!’ 하면서 후회를 한다.....즉각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다.
일단 ‘즉각’ 움직이게 되려면 즉,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 전에 그냥, 가슴이 아닌 머릿속에, 무언가 내장되어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일명 ‘사랑?’ ‘따뜻함?’ ‘관심?’ 등... 나는 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 가장 먼 여행 – 신영복 -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과 마음 좋은 사람의 차이,
머리 아픈 사람과 마음 아픈 사람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3월 입학하기 전 신입생 교과서 배부가 2월 중에 있다. 3개 학년의 교과서를 배부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일정 조절이 필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작년 2월에는 27기가 직접 와서 자기 교과서를 한권 씩 담아서 갔었는데, 올해는 좀 다른 구상을 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은, 선배가 짝후배의 것을 하나씩만 만들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의미도 있고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작년에도 진행하려고 했던 일이었는데 갑자기 전교생 원격수업으로 바뀌면서 아쉽게도 하지 못했던 프로젝트...
올해 2월도 여전히 빠듯한 상황이어서 학생들이 직접 와서 담아가게끔 하려고 했으나 일정이 조절되면서 몇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에서 만든 에코백에 미리 담아놓기로 했다. 사실 교사 몇 명이 교과서 14권을 300명이 넘는 학생수 만큼 담으려고 계획했던 일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 또 그 중에 한분이 코로나 관련으로 올 수 없게 되었던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27기 2학기 임원들이 생각이 났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연락방에 공지를 올려 보았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부터 28기 후배들을 위해서 교과서를 미리 담아놓으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잠깐 와서, 한 학급 정도의 분량만 담아놓고 갈 수 있을지 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올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공지를 한 것이었는데, 내가 올리고 난 뒤 10여 분 뒤부터 아이들이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을 주었고, 그 다음날에는 총 11명이 올 수 있다고 연락을 주었다.
방학 중에 생긴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월요일 아침에 와야 하는 일이었으며, 생기부 기록을 해주겠다는 등의 어떤 달콤한 말도 없었다. 요즘의 추세에 맞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황당할 수도 있는 나의 부탁에 단지 ‘대답’을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감동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위한 간식비를 알아보았고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그 전날 일요일 일기예보에서 다음 날 월요일 아침부터 눈이나 비가 올 것이라고 하는 멘트에 나는 마음을 확 내려 놓았다. 눈이나 비가 오는 월요일 아침부터 아이들이 올까...하는 생각이었던 것...그런데 내가 학교에 도착하기 10분 전, 8시50분 경에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 선생님, 저희 3명 도착했는데 어디로 갈까요..???
도서관에 가서 보니 이미 8명이 와 있었고, 아이들은 오전 내내 몸을 던져 일하더니 200여명의 교과서분을 해결했다. 그 와중에 나는 계속 회의가 있었고.... 점심을 2시30분에 먹고 다시 가보니, 오후에 온 4명의 아이들이 일찌감치 나머지 교과서를 다 담아놓았고 모든 일을 정리해 놓았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담은 에코백을 쌓아놓은 곳으로 나를 이끌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감.동.을 하고 할말을 잃어서 그 자리에 정지해 버렸다. 마치 칼국수를 하기 위해서 면다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엄청난 분량의 책을 그렇게 가지런히 정리해 놓기까지 한 아이들의 손길, 정성, 마음, 시간, 발걸음, 고민 등이 느껴졌다.
내가 이 아이들이었다면 아마도, 답변도 하지 않았거나, 온다고 했더라도 오지 않았거나, 아예 올 생각이나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얼마나 놀랍고도 고마운 아이들인지.....
한 사람이 총 10개를 만들 수 있는 오픈채팅방 개수 때문에, 28기를 위한 학급 연락방 12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년조회종례를 하고 있는 27기 학급방을 없애야 했기에 아이들에게 공지를 했다.
- 10개까지만 만들 수 있어서 다음 주에 이 방을 폭파해야 해...
아이들은 무지 아쉬워하며 답글을 달았는데, 어떤 남학생 학급에서 이렇게 답변을 한다.
- 이 방을 일반 채팅방으로 만들면 되죠...
그러면서, 자기들이 만든 방으로 나를 초대했다. 불과 5분만에 말이다.....내가 놀라고 있는데, 어떤 여학생이 연락을 한다.
- 선생님... 이 방을 폭파시키는 건 말이 안되요..
방장을 바꾸면 되어요...
순식간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내가 놀라서 같이 있는 선생님들에게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 요즘 아이들은 우리와 발상자체가 달라요..
다음 주 월요일에는 임시로 2학년 교실을 사용하게 되어서 책걸상 개수를 미리 맞추어 놓아야 했지만,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길래, 몇 반에서 몇 개를 가져와야 하는지 표를 만들어서 임원들에게 공지를 했다.
- 다음 주 월요일에 책걸상 개수가 안맞으면 이 표대로 해야 해..
이 표가 이해가 될까요...???
C가 즉각 대답을 한다.
- 각 학급마다 필요한 책상 수와 부족할 시 가져와야하는 학급까지 이해됐습니다!
학교가 공사 중이고, 27기 관련 업무와 28기 관련 업무로, 또 온갖 일들로 거의 아무 것도 진행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나에게, 이번 주에 있었던 아이들과의 이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내가 1년 동안 키운, 내가 아는 아이들이라고 내세울만한, 예쁘고 귀한 아이들과의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또 발까지의 그 먼 여행을, 이 아이들은 단 몇 초만에 해버린다.
누가 누구를 가르쳤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귀한 것을 배우며, 다시 생각에 잠기고 다시 열정을 회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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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담아 놓은 에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