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늘과 눈물 (2022.04.16.토)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토요일 오후 음악방송에서 진행자가 이런 멘트를 한다.
- 다음은 하이든 음악입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 좋은 사람이 바로 하이든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알려진 하이든과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 즐거울 것 같네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과 식사하는 시간이 좋기는 하겠지만, 즐거울까..??
- 하이든은 유머러스한 사람이기도 했다고 하니, 그래서 즐거울 수는 있겠지만..
‘파파 하이든’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J. F. Haydn(1732~1809, 오스트리아)은 사실, 자라온 과정이 평탄하지는 않다. 마차수리공이었던 아버지와 요리사였던 어머니를 둔 12남매 중 장남이었고 목소리가 좋아서 빈 소년합창단원으로 활동했으나 변성기가 온 17살에는 합창단을 나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방황하던 하이든의 음악성을 알아본 에스테르하지라는 후작의 집에 소속된 안정된 음악가로 평생을 살았고 가발업자의 딸과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동료 음악가들에게는 무척 다정하고 따뜻하였고 고민을 잘 들어주는 음악가였으며 특히 유머 감각이 있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의 ‘고별교향곡’은 여름 내내 후작의 집에서 연주활동을 해야 했던 동료음악가들의 고충을 담은 곡이고, ‘놀람교향곡’은 연주회에 와서 졸기만 하던 귀족들을 잠에서 깨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재치있는 곡이다.
어쨋거나 나는 단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이든과의 점심식사를 말하는 진행자의 멘트에 나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했다.
- 하이든과 식사를??? 좀 지루하지 않을까??? 모차르트라면 몰라도….
군대에 간 A 병사의 여자친구 B가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다면서 가지고 있는 자기 사진을 다 보내달라고 했단다. A는 복수(?)하기 위해서, 군대에 있는 사병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자) 사진을 달라고 했고 자기 여자친구인 B에게 여자사진 한 보따리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내 여자친구가 너무 많아서, 네가 누구인줄 모르겠어.
여기서 네 사진 찾아가..
이런 재치와 유머러스함이라니! 방송을 들으며 나는 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아이들에게 수많은 말을 하게 되는데, 그 말이 얼마나 영향력 있고 힘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으로서 ‘두려운 마음’으로 항상 내 입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하는 말에 힘을 얻게 되기도, 상처를 입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늘 하는 기도는 이것이다.
- 가르치는 은사를 주시고, 격려와 위로가 되는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토론이나 반론을 할 때는 제 의견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잘 말할 수 있도록 제 말에 힘을 주세요.
한때는 유머러스한 사람이 무척 좋았었다. 재미있고 유쾌한 말로 주변을 빵빵 웃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항상 즐거웠고, 오늘은 또 어떤 말로 우리를 웃겨줄까 기대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이 내용도 꼭 들어간다.
- 또 유머와 재치가 풍성하게 해 주셔서 주변이 빵빵 즐겁게 해 주세요.
오래전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웃음 소리가 커서 좋아요….
- 선생님 목소리가 유쾌해서 좋던데요….
- 교무실에 선생님이 있는지 없는지 다 알겠어요….
내 웃음소리가 크고 목소리가 커서 작은 교무실이 불편하기는 하다. 그런데 사실 내가 그렇게 시끄러운 사람은 아닌 것으로, 나름 조용하고 품위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러면서 이런 책이 있다고 알려준다.
-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김진경 저) 라는 책이 있어요..*^_^*..
- 아...그럼 제가 까치인가요??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했었다.
활발하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함께 하고 싶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어떤 인생의 어둠과 아픔이 있다는 것이 진리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둠과 아픔에 침잠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성숙한 삶으로 만들어 낸 누군가의 ‘용기 있는 선택과 노력’이 우리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준다는 것….
많이 알려져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저>의 시에서 언급된, ‘그늘이 없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찾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늘이 없는 햇살 같은 삶, 눈물이 없는 기쁨 넘치는 삶을 원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된 것은, 밝고 유쾌하고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에게는 순간적으로 끌리는 매력이 있지만, 사실 나의 마음과 영혼을 잡아 이끌어 오래도록 머무르고 함께 잠겨있게 하는 것은 신기하게도 다른 것들이다. 생각이 깊은, 진지한, 깊은, 낮은, 느림… 그리고 그늘, 눈물….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되는 사람이기 위해서는 그늘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기 위해서는, 눈물을 알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래서 내 눈은, 아이들을 보면서도, 사람들을 보면서도, 한때 그들이 잠겨있었던, 지금은 걷어내고 이겨낸, 그래서 지금은 말라져서 없어진 것 같은, 그들이 경험한 그늘과 눈물을 알아보아 주고 싶다. 모른 척 하기를 원하면 모른 척 해 주고, 알아보아 주기를 원하면 그 용기를 알아보아 주고, 힘들었었을 그 시간들을 인정해 주고 싶다. 등을 토닥거리면서….
햇살 가득한 봄볕 사이로 아직도 매섭게 부는 차디찬 바람을 뚫고 한잎 두잎 만개했던 벚꽃이 제 할 일을 다하고 눈처럼 흩날리는 이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봄이 봄다울 수 있었던 것은, 힘들고 길었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겨울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겨울을 잘 지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그 겨울을 통과한, 그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는 봄 같은 사람을 찾고 싶고 만나고 싶고 내 옆에 두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하나 가져보는, 봄날의 어느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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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 C가 현관 로비를 지나가면서 무엇을 하나 던져주고 간다.
- 선생님, 가지세요~
코로나 때문에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C가 내게 주고 간 꽃잎 하나..
꽃다발이 아니어서 더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