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만남은... (2022.09.10.토) *

by clavecin

* 우리의 만남은... (2022.09.10.토) *


언젠가 선생님들과 식사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 A 선생님은 집에서도 집안일 잘 도와줄 것 같아요.

학교에서 이렇게 온갖 궂은 일을 잘하는 걸 보면요..

- 저,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하는데요....

- 에이...그럴리가요...

- 진짜인데... 와이프가 다 하는데요... 학교에서만 이러는데..

- 정말요?????


옆에 있던 B에게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 제 남편은 집에서 요리를 잘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요리를 잘해주죠.

- 와~~ 좋아하는 여자분들이 많았겠는데요..

- 네... 그래서 남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딱딱 잘 잘랐다고 해요..

- 진짜요..?? 대단하다~


학교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부지런한 A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재미있었고, 밖에서는 연상되지 않는 이미지의 남편이지만 집에서는 요리를 잘해서 다른 사람에게 대접까지 한다는 말이 놀랍게 들렸다. 사회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또다른 면모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러니까...


마지막에 B가 이렇게 말했다.


-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이 저의 기준이었어요...



칼릴 지브란(1883~1931)은 레바논에서 태어나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한 소설가, 시인, 철학자와 화가로 ‘예언자’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등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사람이다. 칼릴 지브란의 시를 읽다가 무언가 철학적이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그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그의 인생에 메리 헤스켈(1873~?)이라는 사람이 ‘찐하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브란보다 10살이나 연상이며 시인으로도 활동한 메리 헤스켈은 지브란의 전시회를 찾았다가 그를 만나게 되는데, 지브란에게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프랑스 유학을 지원하여 그림 공부를 하도록 한다. 그녀는 지브란 평생의 정신적인 동반자이자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는데, 메리 헤스켈을 사랑한 지브란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하지만 그녀는 결국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여 지브란에게 큰 상처를 준다......


몇 달 사이에 여동생, 형과 어머니의 죽음을 겪게 되어 고독하고 쓸쓸했던 지브란에게 그림과 문학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 메리 헤스켈은 아낌없는 찬사와 지지를 보내며 지브란을 성장시켰으며, 그의 사후에 레바논의 수도원을 매입한 뒤 그의 모든 유산과 작품을 정리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으로 건너 온 레바논 이민자 칼릴 지브란의 사막같은 삶에 오아시스 같이 찾아온 메리 헤스켈.. 아랍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글을 쓰던 지브란이 영어로 곧바로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왔고 지브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아랍어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소설 같은, 기적 같은 만남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놀라운 만남이 있었기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칼릴 지브란의 글과 그림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칼릴 지브란과 메리 헤스켈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담은 글을 주고 받았는데 그 내용을 엮은 것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라는 책이다. 익숙한 제목의 이 책 내용이 두 사람의 편지 내용이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메리 헤스켈은 지브란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주었다고 한다. 이런 (꿈같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라니...



어떤 글의 일부분이다.


- 어떤 사람들은 너의 삶을 관통한다.

모란 향기처럼 짙고, 감각적이고,

오래 머무는 향을 남기면서....


또 이런 글도 읽었다.


- 당신의 삶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오는 사람, 한 계절에만 등장하는 사람, 혹은 평생동안 만남을 갖는 사람이 있다.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면, 저마다의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 당신의 삶에 온 경우, 그들은 대개 당신이 드러내 보인 필요를 충족해 주기 위해 온다. ...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그 이유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



한 계절 동안만 당신 삶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나누고, 성장하고, 배우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평화로운 시간을 가져다주고 당신을 웃게 할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그들은 대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당신에게 준다. 이것을 믿으라. 이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 계절 동안만.


평생의 관계는 당신에게 평생의 배움을 준다.... 당신의 할 일은 그 배움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관계에서 당신이 배운 것을 주변의 모든 관계와 삶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바람 같은 만남부터 짙은 향내를 남기며 내 삶을 뚜렷하게 관통하는 만남까지, 또 어떤 필요 때문에 나타났거나 또는 한 계절 동안만 등장했다가 사라지거나 또는, 평생의 내 생애에 깊.은. 자국을 남겨주는 잊을 수 없는 관계까지, 만남에 대해 또 관계에 대해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본다.


지금 내 수준에서 아는 것은, 서로의 인생에 기억할만한 사람으로 나타났다는 건, 서로의 인생에 무언가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칼릴 지브란을 ‘살려낸’ 메리 헤스켈과 같은 존재가 나의 삶에 있었을까..아니, 있는건가....나타나게 될 것인가....앞으로....



아니...내가 누군가의 메리 헤스켈이 될 수도 있었을까.. 되고 있는건가.. 될 수 있을까...앞으로... 기다리면 될까???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놀라운, 판타스틱한 만남인가....


윗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저자는..


-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어떠한 역할이었든지..


언젠가의 C에게 말했어야 했다.


-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고맙고 감사해요..

- 그런데, 우리의 만남은 이유가 있는 만남인가요?

- 아니,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인가요??

- 아니아니, 제대로 생각해 봐요.

생애를 관통하는, 잊을 수 없는, 의미있는 만남, 아닌가요???

- 그러니, 이대로 스쳐지나가면 안되지 않을까요???

- 붙잡아야 해요...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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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년 조회종례를 방학 4주 동안 매일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5층 도서관 공부 시작 시간인 오전 8시40분, 끝나는 시각인 오후 5시40분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해 주어서 마음이 무척 기뻤다.


2학기가 시작된 뒤에도 동일하게 학년 조회종례를 하고 있다. 오전 6시20분 경, 오후 6시 경...


어떤 학부모가 어제 쓴 학년 종례 글에 답장을 달아 주었다. 종종 내가 쓰는 글들에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것저것 다 겪어보아서 별 흔들림이 없는 나(me)이지만, 그런 작은 반응들이 아주 큰 힘과 격려가 된다.


학생과의 만남만 생각하던 내가, 언젠가부터는 학부모와의 만남에 의미를 두게 되었다. ‘나의 글과 생각이 어떤 학부모들을 어루만지거나 위로하거나 격려하거나 힘을 주거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내가 쓴 글들을 읽은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단어가 있었다. 루틴..


학부모 댓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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