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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Oct 01. 2022

* 토요일 외출 (2022.10.01.토) *

토요일 외출 (2022.10.01.) *     

 

   100세에 피아노를 치시는 A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피아노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신사참배를 반대한 S여학교가 자진 폐교를 하면서 그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결혼, 43세에 혼자가 되셔서 7남매를 키웠으며 70대가 되어서야 피아노를 독학했다고 한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매일의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서 예쁘게 화장을 하고 식용유와 물을 섞어서 마시고 걸어서 장을 보러 가고 화장품 가게에 가서 사고 싶은 거 사는 것.. PD가 물었단다.     


 - 보는 사람도 없는데 화장을 왜 하세요??

 - 하지 않으면 더 늙어 보여서요..     


   100세임에도 70세로 보이는 A할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전자피아노를 치는 것... 피아노를 독학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100세임에도 매일 피아노를 치고 계시다는 사실 자체가 존경스럽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함께 산책을 하던 B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 선생님.. 혹시, 10년 후, 20년 후 계획을 세우셨어요??

 - 네???? 10년 후 계획이요??? 글쎄요...

   선생님은요...

 - 아...저도....   



   생각지도 못한 질문으로 인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요... 일단 저는, 책 읽고 글을 쭉 쓰고 싶어요...... 강의도 듣고 싶고.....          



   아이들에게 늘 말하는 것 중 하나는 이것이다.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해요...     


   사실 말은 쉽지만 이 말처럼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당연히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걸 꾸욱 참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그래도 나보다는 좀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지금 해 놓아야,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하면서 살 수 있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짜로...아마도...그렇겠지..??? 그래야 하는데.....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근래에 나도 몰랐던 나의 어떤 면들을 깨닫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는, 책 - 심각하지 않은, 가벼운 책 - 을 읽고 그 책을 누군가와 같이 읽고,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내 글에 대해서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고, 같은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고, 관심 있는 분야의 강의를 듣고 그 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정말 이랬으면 좋겠는데, 과연 이런 삶이 가능할까........  


        

   주 5일을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들처럼 토요일을 기다린다. 그래서 5일은 초집중해서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은 글쓰는 것 말고는 가능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단은, 늦게 일어나는 것부터 가능한 날이기에 가장 기다리는 날..     


   그래서 그렇게 기다리던 토요일에 어떤 일정을 넣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예술의전당에서 강의를 들었다. 2시간 동안 듣는 강의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간이기에 빠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강의 듣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강의하는 사람의 등장부터 말하는 스타일, 사용하는 PPT의 구성과 디자인, 색감, 글씨체, 가끔 던지는 농담들, 강의를 통한 그의 열정 등 요약하자면, 다른 사람의 강의를 통해서 온갖 것을 감지하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가장 좋은 것은, 어떤 내용의 강의든 ‘들으면서 딴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랬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강사의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서 진행해야 하는 어떤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든지, 그때 그 순간에 내가 했어야 했던 행동들을 돌아본다든지, 아니면 누군가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든지...강의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미안했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딴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 생각이 계속 났다.     


 - 아....아이들도 나처럼, 잘 듣고 있는 척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온갖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겠구나....   

  

   학교에서, 집에서,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건만,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들으면서 더 깊고 넓게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는 것이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원래 어디서든지 앞자리에 먼저 앉는 것이 나의 습관이었는데, 예술의전당 강의를 듣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는 항상 맨 뒤에 앉는다. 중간에 앉아서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멀찍이서 넓게 앉아서 강의 화면을 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그동안 왜 맨 앞자리에만 앉았었지????     


   올해 1학기에 아쉽게 놓쳤던 토요 강좌를 이번 2학기에는 신청했다. 게으름 피우던 토요일 아침이 조금 바빠졌고 오후 시간까지 사용하게 되어서 조금 분주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번 주부터 시작된 강의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데, 강의 시간 앞뒤로 2가지의 작은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예술의전당까지의 길은 당연히 운전해서 가는 것이었는데, 작년 2학기부터는 걸어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래서 차로 이동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선물 받은 커피쿠폰을 사용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C커피점에 들러서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가지고 간다. 얼마 전부터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었고 실내에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집에서 커피를 내려서 가던 작년과는 다른 행동..     


   두 번째는 오는 길에 지난 6월에 가보고 발을 끊었던 D상점에 들러서 사고 싶은 것을 사기로 한 것. 일단 어디에 들어가면 이것저것 들었다 놓았다 고민하고 주저하면서 느리게 쇼핑하는 것이 나의 특징인데, 이번에도 시간 제약없이 천천히 둘러보았다.     


   커피점에서는 그동안 내가 먹어보지 않았던 커피를 골랐고, 강의를 듣는 내내 커피를 마시며 그림을 그리면서 딴생각을 했고, D상점에서는 모든 물품 중에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그릇코너에서 1시간 넘게 머물렀다. 그리고 예쁜 것들을 골라왔다.      


   강의는....강의는, 뒤러, 알프레히트 뒤러(1471~1528, 독일, 판화가,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 내가 듣는 강의는 서양미술사 강의다. 자주 들었던 뒤러가 매일 일기를 썼다는 것에는 깜짝 놀랐다.      


   이번 강의에서 달라진 내 모습이 또하나 있다면, 필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작년까지는 받은 책자에 새까맣게 필기를 했었는데, 이번부터는 필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듣기만 하기로 한 것.......... 마음에 담아두기로 했다.          


   오랜만에 듣게 되는 강의였는데 그것 때문에 앞뒤로 작은 변화들을 주었더니 생각지 못한 기운이 솟는다. 행여 강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더라도 오가는 길에 내가 하는 행동들, 강의를 들으며 하는 딴생각들, 아이쇼핑하는 것들... 그 모두가 피곤했던 나의 삶에 작은 활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이들이 내 수업을 들을 때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딴생각을 하더라도 용서하고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주 강의 가기 전에는 모카 라떼를 마셨는데, 다음 주에는 어떤 커피를 고를까...     


   이번 주 강의를 들으면서는 내년에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생각했었는데, 다음 주에는 또 어떤 딴생각을 해 볼까...     


   이번 주 강의 끝나고는 천 원짜리 꽃무늬 그릇 4개랑 꽃무늬 쟁반을 샀는데, 다음 주에는 무엇을 골라볼까나...      


   11월 말까지 진행되는 (오랜만의) 토요일 외출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그동안의 내 삶이 어느 곳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10년 후, 20년 후에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직접 실행해 보기로 한다.     


   분명한 것은, 10년, 20년, 30년이 지나있어도 아마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을 것이라는 것, 예쁘게 화장하고 여전히 단장을 했을 것이라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책을 읽고 있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것....     


   오늘 내가 하는 일들이 소리 없이 쌓여서, 차곡차곡 쌓여서, 인생의 끝까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기를 소망해 보며...    

 

   *******************************     


*** 아침에 TV를 켰다가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머리가 하얀 남자분 6명이 화면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

     

 - 이건....뭐...지..????     


   이름하여 ‘백발소년단’!       


   다양한 분들로 구성된 시니어 가수그룹이었다. 그분들이 멤버를 모집하면서 내걸었던 조건은 2가지라고 한다.     


 - 백발일 것!

 - 키 180cm가 넘을 것!     


   평균 나이 63세, 평균 신장 183cm... 일단 머리가 모두 백색이어서 놀랐고, 키가 훌쩍 컸다는 것이 시각적으로 볼 만 했다.      


   어린 시절에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하지 못했는데 오랜 시간 회사원 생활을 마친 뒤 이제야 연예인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장발인 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사업가, 영화감독, 교수 등의 삶을 살아온 그분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이것이었다.     


 - 지금,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삶이 정체되거나 무료할 수도 있을 나이에,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들, 그것도 오랜 시간 마음속에 담아왔던 끼를 발산하는 일을 용기있게 시도하는 사람들, 그래서 지금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그분들의 말이 눈물나도록 부럽다.



***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에 나온 이 시를 읽다가 오랜 시간 먹먹했는데, 이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가 있었다.    

 

-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     


https://han.gl/eedb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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