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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Oct 08. 2022

* 흐린 날씨 (2022.10.08.토) *

흐린 날씨 (2022.10.08.) *      


   언젠가 A와 대화하던 중 나온 이야기..     


 - 흐린 날씨네요..

 - 제가 좋아하는 날씨인데요..

 - 흐린 날씨를 좋아해요??

 - 네....이런 날씨를 엄청 좋아하죠..

 - 비 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흐린 날씨는...

 - 무언가 막 쏟아질 것 같은 이런 어두운 날씨.... 좋지 않아요??     


     

   누군가 나에게 어느 계절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늘상 ‘여름’이었다. 하늘거리는 예쁜 옷들도 많고 그 즈음은 살이 빠져서 조금 예뻐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밝고 화사한 그 느낌과 뜨거운 분위기가 좋다. 그래서 5월 초부터 10월 초 정도까지의 5개월은 나에게 천국과 같은 시간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말 사랑하는 계절이다.     


   그렇게 마음껏 빛나던 태양의 온기가 찬바람에 밀려 조금씩 빛을 잃기 시작하는 10월이 되면 기분이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는다. 가을이 시작되는 것..     


 - 아...가을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여름옷을 던져놓고 가을옷으로 입을 준비를 하려던 때, 곧바로 겨울로 바뀌어 버린 기억... 모두들 있을 듯 하다. 마치 겨울과 봄이 뒤섞였던 계절처럼..      


 - 아... 봄인가 봐.. 

    

   이런 느낌이 딱! 왔을 때, 10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무려 6개월여의 오랜 시간 입었던 겨울옷을 후다닥 벗어놓고 봄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할 때, 어느 순간 여름으로 바뀌어 버린 기억처럼 말이다.



   봄과 가을은 왜 이토록 짧은 걸까... 그래서 제대로 된 옷이 없다.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너무 순식간에 왔다가 휘리릭 가버려서.... 그래서 매년 봄과 가을 즈음에는 다짐한다.      


 - 내년에는 꼭! 봄과 가을을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하지만, 이 말을 상기했을 때, 그들은, 그 봄과 가을은 쩌기 저만큼 뒷모습을 보이며 순식간에 지나간 다음이었다는 것.... 매년 똑같은 후회를 한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그 짧디짧은 가을이, 이 가을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확실한 계절의 변화에, 무딘 내 감각이 살아나고 있는 걸까... 달라진 태양빛이 느껴지고, 흙냄새와 뒤섞인 바람 냄새가 맡아지며 그 쌀쌀하고 차가운 바람결에 나의 솜털이 한올 한올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왜 그렇지??     


   특히 햇빛의 뜨거움을 좋아하는 나에게 여름과는 또 다른 질감을 가진 가을의 따가운 햇빛은 새로운 발견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차 앞에 펼쳐지는 이 햇빛을 어찌해야 할까... 아까워서.... 이 아까운 따스함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며 학교까지 운전하며 온다. 이 찬란함을 어디에 모아놓아서 필요할 때마다 몰래몰래 꺼내서 보면 좋으련만... 가을 날씨가 정말정말정말정말 좋아서 미치겠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나,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나 공통점이 있다면, ‘밝고 밝은 햇빛’ ‘찬란함’ ‘눈부심’ ‘따뜻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나는 이런 게 좋다. 밝음....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런 구절을 읽었다.     


 - 자신이 좋아하는 색은 자신에게 없거나 부족한 색이다. 만약 파란색을 좋아한다면 자신에게 파란색이 없거나 모자라기 때문이다. 보라색 옷이나 꽃에 마음이 끌린다면 무의식적으로 보라색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 검은색을 좋아한다는 건 내 안에 검은색을 제외하고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밝은색이 있다는 것이니까. 사람들이 나의 검은색 옷만 보고 내면의 다채로운 색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낮보다 밤을 좋아한다면 내 안에 빛과 밝음이 넘치기 때문일 테니까. 다만 어둠이 필요해서 밤에게 이끌리는 것이다. 겨울을 편애한다는 것은 내 안에 무수한 꽃과 계절이 있으며, 단지 추위가 조금 필요할 뿐인 것이다.     


 - 또 만약 당신이 물질적인 것의 가치에 이끌린다면 내면의 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외부의 부에 이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면의 빈곤을 채워 주기를 기대하며.     


 - 행복을 좇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갈구한다는 것은 지금 내면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내면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않는 한 외부에서 얻는 행복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공허감만 더할 뿐이다.

      

 - 어떤 충동에 이끌린다면 자기 안에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갈구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그것에 사랑을 기울일 것이다. 물을 찾는다면 갈증이 있는 것이다. 마른 입술은 물이 전하는 메시지이다.   

        

   즉, 내가 밝은 계절인 여름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에게 밝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 또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것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 사람이 어두워서 검은색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에게 다채로운 색감이 있기 때문이라니.... 언뜻 듣기에는 이해가 안갈 수도 있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B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고 한다.   

  

 - 가난은 겨울옷에서 티가 나..     


   깜짝 놀랄만한 대사였다. 빈부격차를 소재로 한 수많은 소설, 드라마와 영화 등이 지금까지 늘 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들렸던 적은 없었다. 왜 저 대사가 불편했을까... 찾아 보니, 피부, 머릿결, 곧은 자세, 고급스러운 겨울 코트 등에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이런 것들에 공을 들일 수 있으니, 티가 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사실, 진짜 부자인 사람들보다, 돈은 없으면서 부자인 ‘척’ 하고 싶은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고 돈을 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로 부자인 사람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하던데....     


   내면이 빈곤하기 때문에 외부의 부를 빌어서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둔다는 말에 동감한다. 겉으로나마 무언가 채워주어야 안이 채워지는 느낌일 수 있으니.....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기 전에 일주일 넘게 흐린 날씨가 계속 되었었다. 또 이번 여름에는 꽤 오랜 시간 흐린 날씨가 있었고.. 흐린 날씨에는 기분이 우울해지고 다운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때도 음이 다운(플랫)된다. 날씨 탓이다.     


   흐린 날씨를 좋아했던 A는 내면에 밝음이 가득했기 때문에, 흐린 날씨를 좋아한다는 걸까.. 그랬던걸까...

      

   밝음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실제로 관심이 가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아이러니... 순간적으로 관심이 갈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상대는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서 생각이 깊어지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그럼 이건 뭐지??? 나에게 밝음이 있어서 그렇다는 건가??      


   우중충하고 무언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를 사랑했던 A가 내면이 차고 넘쳐서, 이제는 밝음을, 화려함도 가끔 찾기도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보는, 바람이 좀 많이 부는 토요일 오후의 단상들...     


***************


   가을이 되니 블랙이 눈에 들어온다.     


   시험 마지막 날, 일찍부터 생각해 놓았던 아무 디자인 없는 블랙의 티를 입었다. 교사 경건회가 끝나고 올라오는 길, 블랙 가디건을 입은 J 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예뻐하는, 우리 교무실의 최고 멋쟁이 J 선생님...    

 

 - 완전 멋지다~~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올라오다가 이틀 전에 깔맞춤 정장을 하고 오셨던 A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났다.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 A 선생님~ 블랙옷을 입으셨네요..??

 - 네!

 - 우리 3명이 모두 블랙인데.. 블랙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기분 안좋아요...ㅠㅠ

 - 하하하하 (모두 웃는다 *^_^*...) ..     


  그리고 들어온 교무실.. 내 건너편에 블랙 티를 입은 K선생님을 발견했다. 내가 말했다.     


 - K 선생님!

   오늘 저희 교무실에서 멋쟁이들만 블랙을 입고 왔는데.. 선생님은...????

 - (모두 웃는다 *^_^*...) 하하하하 ~~     


   4명 모두에게 잘 어울렸고 예뻤던, 우리의 블랙.....     


   그날 우리의 내면에 온갖 다채로움이 있었다는 걸까....     


* 색깔로 알아보는 정신연령 테스트 2개 ..     


 - 나는...엄청 젊게 나온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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