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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Oct 18. 2022

* 결핍 (2022.10.15.토) *


결핍 (2022.10.15.토) *


목사님께서 호주에서 전도를 하다가 만난 할머니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한다.


- 저는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우리나라는 노후 복지 제도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 없네요..



새로운 용어를 배웠다. 아이들에게.. 일명, ‘잠수 이별’...


편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수행평가 시간에 본인이 편곡한 음악을 설명하던 A...


- 잘 사귀던 커플 중 1명이 잠수 이별을 하면서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듣고 있던 내가 질문했다.


- 잠수 이별...이 뭔가요??

- ‘우리 헤어지자’ 라고 공식적으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락을 해도 연락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게 되면, 다른 사람이 지쳐서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 아.....???


공식적으로 헤어지지 않고, 일부러 연락을 받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니.... 활발하게 표현되던 음악이 소리가 점점 끊어지면서 조용히 사라지며 끝난다.


아이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단어인 듯...


아이들은 잠수 이별을 해 봤다는 건가.. 아님.. 잠수 이별을 당해봤다는 건가...



자신에게 있는 결핍을 욕망하는 일이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즉, 사랑은 결핍, 결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 나에게는 없어서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발견했을 때 사랑이 시작되며, 원하던 것이 채워져서 더 이상 무언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랑이 깨어진다고 한다.


서로에게서 자기에게 없는 어떤 ‘빤짝거림’을 발견했던 커플이, 더 이상 그 빤짝거림에 ‘가치’를 두지 않게 되는 때, 헤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여전하게 빛나고 있을 그 빤짝거림이 거추장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고, 눈길을 끌던 그 빤짝거림이 언젠가부터 눈에 거슬릴 수도 있겠고,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고 온 삶을 가득 채웠던, 황홀하고 멋있었던 그 빛남이 어떤 흠결로 느껴지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서로에게 두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관계를 끊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것도 사랑의 깨어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의 깨어짐은 아마도, 특별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는 슬픈 과정을 천.천.히 밟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래전에 B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어떤 사람이 좋은가요..??

- 저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

- 생각은 항상 바뀌는건데요....

- 아.....그런가요..??

- 변하지 않을 것을 찾아봐요..

- 그게 무엇일까요...??

- 학력? 재산? 외모?

- 네??? (어이없어서 웃었다...)


그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B를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은 바뀌는 것이니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보라니... 세월이 지나며 그의 말이 맞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C라고 늘 생각하던 내가 지금은 D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그랬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찾았고,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오랜 시간 대화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늙어서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라는 글을 읽었다. E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오랜 시간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좋대요..

-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해요..??

- 아....뭐.. 그렇지는 않죠..

- 대화가 없어도 지낼 수 있어요...

말이란, 오해가 생길 수 있죠...


아마도 E의 말은 대화가 잘 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눈빛만으로도 사랑을 나눌 수 있지만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려면 대화를 해야 하는데, 말로 하건 글로 쓰건, 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다.


여기서 대화란, 같은 주제 또는 주제를 바꾸어 가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사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F와는 농담만, G와는 인사 정도만, H와는 목례만, I와는 쳐다도 보지 않고... 웃자고 던지는 농담도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5초 만에 말이 끊기는 사람도 있고 서로의 시선도 비껴가는 관계도 있다. 물론 아무 말 없이 눈빛만으로도 따뜻함이 오가는 J도 있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나의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K도 있다.


걱정 근심 없는 노후가 보장되어 있기에 하나님, 절대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호주의 할머니들이 과연 행복할까...


한동안 사랑했던 사이일테니 공식적으로 깨끗이 헤어지면 좋을텐데 그럴 수 없어서 누군가가 지쳐서 떨어져 나가기를 원하는 잠수이별을 선택했다면, 아직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줄이 희미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사랑이 시작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언가 계속 결핍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 아니면 결핍이 채워져도 사랑의 지속을 위해 상대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


변하지 않는 학력이나 재산이나 외모를 보라고 했던 B는 그런 사람을 찾았을까...


생각이 비슷하고 오랜 시간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길지 않은 시간이더라도 지속적인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할까...


어디에 있을까..


L이 나에게 말했다.


- 가을 타니???


************************


*** 음악수행평가로 제출한 악보 사이에 들어 있던 종이 한 장..


M 수업시간에 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N에게 이야기했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 선생님의 결혼관을 적어보지 그랬어요...


학생의 허락을 받아 올려 본다....


아직은 꿈꾸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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