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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진지해?

by 도치의우당탕

살면서 진지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난 이걸 칭찬으로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의미로 피곤하다는 뜻이

포함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나는 이 물음에 인간관계의 폭을 떠올리게 되었다.


복싱코치를 하기 전

나는 프로그래머를 준비하는 취준생이었다.

아카데미 학원을 다니면서 가방을 메고 들어와

수업을 듣고 끝날 때가 되면 한마디 말없이 주섬주섬

가방을 메고 나가는 그런 사람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커리큘럼이 끝나면

다시 안 볼 사이라는 생각이 박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러한 태도가 '자기중심적 사고'로

머무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계를 맺거나 유지함에 있어서도 미숙함이 있다.

그런 미숙함은 곧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으로 학교에 숙제를 안 해간 날이 있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게 되지만 그때의 심정은

도살장 끌려가듯 불안함이 가득했다.


말을 받아들이는 경험 또한 그러하다.

그냥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의중과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많이 못 겪어본 사람은 그 결과를

자기 식대로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사고가 갇힌다.

새장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예측할 수 있는 안전함만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쁜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처음엔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모든 일이

끝나고 보면 그 속이 계산되고 정교한 움직이었다고

생각 들게 한 사람도 있었으니깐

그러나 이 생각 또한 내 기준으로

정한 틀에서 정해버린 사고다.


그런 내가 희망을 품은 것은

그 사고를 경험을 통해

깰 수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이다.


그럼 어떻게 사고를 깨야할까?

방법은 많이 당해봐야 한다.

당하는 게 싫어서 새장 속의 문을 닫았는데

많이 당하라니 이런 책임감 없는 말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나 또한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 있고

상처를 준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생각은 '그럴 수 있지'로 머물게 한다.

그 예민함이 덤덤해지는 것이다.


덤덤해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상처를 짊어지고도 그 상처를 마주 봐야 하니깐

살면서 많이 도망쳤다.

이 글의 문맥상 '난 극복했으니 멋지게 해냈다!'라고

마무리지으면 좋겠지만

난 아직도 자주 도망친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램을 적어본다면

이 글을 쓴 내가

나중에 다시 이 글을 보면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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