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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찾습니다

by 도치의우당탕

습관처럼 하던 말이 있다.

'전,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재밌다는 것에 꽂힌 나는

재미있는 사람들의 말주변을 동경했다.

재밌다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파헤쳐야 할까?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맛보는 마음의 상태라니

나는 이 즐거움을 맛보는 마음의 상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즐거움을 맛본다는 게 책일 수도 있고

여행을 즐기는 게 즐거움을 맛보다일 수도 있으니까

정말 미각을 통해 식도락의

즐거움을 느끼는 게 될 수 있지도 않을까


무언가에 집중하던 때가 떠올랐다.

복싱시합을 뛰기 전에 긴장감

사람들이 링을 다 쳐다보고 관장님과 시합에서 전략을

다 짜놓고도 긴장돼서 링 위에서 서기 전

귀에서 울리던 삐--소리


링 위에서 섰을 때의

복싱화 밑으로 느껴지는 바닥질감

심판의 중재로 상대와 마주하고 멀어지는 모습

그리고 발을 떼고

기억나는 건

링 밖에서 쳐다보고 있는 관장님의 외침과

쉴 새 없이 주먹을 내고 있는 내 모습

헤드기어 위로 가끔 전해지는 작고 큰 충격


뒤로 밀리다가 밀리지 않으려 발을 땅에 딛고

상대를 밀며 하나라도 더 주먹을 내는 나

상대의 거친 숨소리가 피부로 느껴지고

이걸 알아챈 나는 오른손을 뻗는다.

느껴지는 상대의 움찔거림

그리고 1라운드가 끝났다.

이제 더 못 움직이겠는데 다리가 후덜 거리고

관장님이 입에 넣어주는 물 한 모금


그리고 다음 전략을 숨 고르며 듣고 있는 내 모습

숨을 쉬는데 목에서 쇠맛이 느껴지고

울리는 2라운드 소리

다시 상대와 나만 남았을 때

그래 모든 걸 쏟아붓자 후회 없게라는 각오로

거친 호흡을 붙잡고 하얘지는 머릿속

하나만 더 그래 하나만 더

상대방의 주먹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느낌이 온다 놓치면 안 된다고

그때부터 뭘 생각하고 뭘 노린 건지도 모른다.

하나라도 더 쌓기 위한 몸부림이다.

팔의 감각이 사라지고


마지막 30초

상대가 뒤를 보인다.

난 매섭게 쫓아가야 한다.

지금 아니면 후회한다.

라운드 벨이 울려

경기가 끝났다.


이긴 건지 진지도 모르겠고

온몸이 쥐어짜듯

땀이 흘러내리고

멈추지 않는 호흡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어

마주 보고 계신 관장님이

헤드기어를 벗겨주시고

땀기를 머금어 농구공처럼 무겁던

글러브를 벗어 내린다.


알 수 없는 떨림 웅성거림이

심장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

심판이 상대와 나의 손을 한쪽식 붙들고

장내가 잘 안 들려서 난 눈을 감는다.

매겨진 점수가 들려오고

계속 흐르는 땀이 서늘해진 순간

들린 내손

이겼다! 드디어 이겼다!


감각이 현실로 돌아 가장 먼저 느껴진 뭉친 듯 부어

내 어깨가 아닌 낯선 느낌

힘이 풀린 다리 모든 게 느껴진다.

그래 모든 게 끝났구나 그동안 시합을 위해

뛰었던 운동시간들도, 배고픔에 밤잠 설칠 때도

스파링 할 때마다 잘 안 풀려

창피하게 눈물흘리던 때도

나에게 재미는 복싱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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