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올라가면
곧 수수한 녹음으로 끈을 묶고 나뭇잎 가득
내리는 빗물을 머금은 풍경이 보인다.
차도에 바퀴들은 숨긴 물갈퀴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신호등 지나기 전 수제 샌드위치 팔던
소심한 중년 남성도 오늘은 자취를 감췄다.
물냄새 가득한 길거리는
경계가 모호해
코도 눈도 피부로 느끼는
예민함을 흐릿하게 만들고
귀에 들려오는 먼지 섞이지 않은
소리만이 이따금 찾아와
잊혀진 현실감을 메운다.
어릴 적 우산을
안 가져온 적이 있다.
그때 난 비가 반가워
옷에 스며든 축축함도
신발의 질척거림도 찰박이며
뛰다 보면 금방 까맣게 잊었다.
이마를 가볍게 두드린 빗방울은
머리카락을 순식간에 메우고
뻗은 팔과 함께 팔뚝에 쳐진
옷의 촉감은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런 비가 언제부턴가
피해야 할 존재가 되어
의미를 부여하곤
가슴 한켠 응어리지게 했다.
있는 그대로 못 보게 되는 것들이
그렇게 생겨났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이면
내가 삶을 잘 못 살았나 한다.
쥐고 있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가슴이 옹졸해서
그런 좁은 마음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말의 뜻을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때엔
멋져 보이는 말을 많이 했다.
가슴깊이 무거움이 박힐 줄 몰랐나 보다.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어른이 된다.
실망하는 게 많아서도 한몫했을 것이다.
책임지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솔직히 어릴 적 마음하나 지키지 못한
내가 누굴 지키나 싶다.
동심이란 말을 그래서 만들었나 보다.
흔적이라도 남겨 기억하고 싶어서
돌아갈 방법이라도 없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난 용기를 내지 못했다.
더 다가서면 그곳마저 사라질까 봐
이것 또한 용기 없는 자의 변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