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주나 타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헛된 희망을 품게 되는 게 낯설었거든요
그리고 그게 어리석다 생각했습니다.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
한길만 바라보고 달려가기 바쁜데
가능성을 바라보라니
불안을 대하는 자세라
누군가는 불안을 보고
아슬아슬한 개화를 기다리는
꽃봉오리를 떠올리겠지만
저는 출구 없는 미로 같았습니다.
학창 시절 희망을 찾아가기 위해
대학을 꿈꾸고 인내의 시간을
기다리는 친구들과 달리
이유 없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걸 느끼기 시작한때가
아무 거리낌 없이
친구들끼리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였습니다.
무언가 항상 어색했습니다.
겉도는 느낌이 가득했거든요
무리 속에 속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고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습니다.
한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사람을 보면 다양한 색깔이 느껴지는데
너를 보면 파란색이 느껴진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고
그 말이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래전 심어진 씨앗이 흙을 뚫고
싹을 틔웠을 때엔 그 밑바닥에
이곳저곳 뿌리를 뻗어
그저 순수히 싹을 뽑는 것만으론
안 된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시원에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불같은 아빠 성격에 말을 하면 어떻게 될지는
알았지만 밤거리에서 화를 못 참고 소리 지르는
아버지를 보며 나가 산다는 것에는 명백한
명목이 필요했습니다.
항상 '너만 잘하면 우리 가족은 행복해'
이 말이 여름날 장판에 말라붙은 핏자국처럼
진적진적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결국은 공무원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고시원 생활은 그렇게 즐겁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 몇몇 친구들이 놀러 왔었고 교회도 가봤고
잘 있나 찾아오는 엄마가 반가웠습니다.
고시원 생활이 막을 내렸던 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군대에서 적응하는 듯하다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환멸의 감정이
주인공 뒤로 카메라가 저를 비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뼈저린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어디가 됐건 이 추위를 감춰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본능적으로 이 추위를 앞으로의 진로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겨낸 기억으로 다듬어진 나였다면
기억을 틈틈마다 책갈피를 끼워
보고 싶을 때 넘겨 봤겠지만
그때의 과거는 비추는 조명이 어둡고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희망을 품는 말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 말 한마디가
게으른 저를 다시 한번 움직이게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것이니
지금의 '내'가 열심히 살다 보면
또 다른 지금의 '나'가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기특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저에게 제법 통했습니다.
그 생각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으니까요
얼마든지 철없다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겉모습으로 보면 헌신적인 아버지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철없는 아들이야기거든요
지나가다 저런 풀도 있구나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오늘은 이런 과거를 마주 봤구나
하는 생각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