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서비스와 사용자 타입이 숨겨져있다
1.
내가 사용자 타입에 대한 고민을 하게된건, 최근 후배에게 과제를 내주면서 부터 시작됐다. 서비스에 대해 정리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서비스를 알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건 '어떤 정보를 다루는가'라는 부분이지만. 초보 입장에서 서비스에서 다루는 정보 - 라는건 어렵게 느껴질게 뻔했다. 그래서 그보다 단순한 단계로 - 여러 서비스들에서 '어떤 타입의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사용하는가에 대해 알아오라는 과제를 내줬다. 그리고 1주일 뒤에 그 아이가 내게 가져온 내용은... 특정 서비스들에 대한 '고객성향 조사'였다.
어찌보면 그 후배에게 '사용자'라는건 상품 구매자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게 본인에게 가장 익숙했을 것이고, 말의 의미를 본인이 아는 수준에서 해석했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사용자타입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내용들이었다. 여러가지 서비스라 함은 비즈니스 타입이 완전히 다른 서비스들이라는 것이고. 사용자 타입이 다양하다는 것은, 각각의 비즈니스마다 구성원들이 해야하는 일이나,역할이 다르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를 유지하고있는 주체나, 방법이 달라지니 그들이 다뤄야할 정보 또한 다른 형태일 터였다.
왜 사용자 = 고객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을까?
2.
일반적으로 생각했을때,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는 B2C 형태의 서비스가 많다. 일반적인 기업이 - 일반 구매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디자이너, 기획자들도 사용자라는 지점을 깊게 고민하지않는다. 사용자는 곧 고객이다. 구매자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수많은 서비스이나, 매체들은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단순한 형태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 구매자라는 수식은 너무나도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번 이야기는 이런 '고정관념'에 가깝게 굳어져버린, 사용자 타입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패션쇼가 열린다고 생각해보자. 그 패션쇼를 이루는 각각의 전문가들과 그 역할들은 어떤것들이 있을까?일단 패션쇼를 주최하기위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공간을 자체적으로 구매하고있는 것이 아닌 이상, 건물을 소유한 소유주가 있을 것이고. 패션쇼를 열기위한 주체인 디자이너나, 그 사람이 속한 브랜드나 회사가 있을 것이다. 패션쇼에 들어가는 옷을 만드는 업체들도 있을 것이고, 옷을 배송하기위한 배송전문업자도 있을 것이다. 모델들도 뺴놓을 수 없고, 모델들이 속한 매니저와, 에이전시도 존재할 것이다. 심지어 모델들의 화장을 처리해주는 화장 전문가들과, 헤어 아티스트들도 있어야한다.
신발이나 악세서리를 다루는 업체나, 그 제작자들도 있을 것이고, 공간에 설치된 조명들과, 촬영기사, 음향전문가들도 있겠지. 심지어 내부인원들을 관리감독하는 총괄 프로듀서도 있을 것이고, 패션쇼 진행을 위한 스태프들, 보안요원들, 주요 VIP를 안내하는 수행요원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 고객들 중에는 의류업체도 있을 것이고, 연예인들이나, 디자이너의 가족이나 친구들도 오게될 거다. 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거나, 일정을 준비하는 중간인원들도 있어야겠지. 이런식으로 생각을 해보면, 무언가 하나의 '이벤트나 서비스'가 존재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타입의 사람들이 필요한지를 알게된다.
마찬가지로 IT 서비스에서도 다양한 타입의 사용자들이 존재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하나의 사용자가 여러가지의 '상태값'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쿠팡과 같은 커머스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반적인 구매자들이 보는 화면들만을 커머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커머스는 상품 제조사와 도매업자, 직매입(사입) 소매업자와 위탁판매 소매업자, 지역별 배송업체와 입고처리 관리자, 회사소속 배송작업자와 개인배송업자, 상품등록 관리자와 상품 MD, 구매데이터 분석가나 금융전문가 등 여러가지 역할이 필요하다. 구매를 하는 사람조차 일반구매자와 법인구매자로 나눌 수 있고, 때로는 정부단체나 공공기관이 구매자가 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거나, 경험하지 않았을 뿐인' 지점들이 많이 숨겨져있다는 것이다.
3.
커머스 서비스만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난 상품화면 이전에, 수많은 실제 상품들을 '어떻게 상품 타입을 구분하고, 카테고리를 나누어 관리할 것인가'를 다루는 상품등록 관리자가 따로 존재한다. 그들이 하는 역할은 - 여러 판매자가 각각의 상품을 등록할 때, 실제로는 동일한 상품일 수 있는 제품들을 구분하고,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커머스에서는 판매자마다 특정 제품을 가져와서, 자기맘대로 이름을 붙이는 형태로 제품을 판매해왔다. 그래서 실제로 구매해보면 동일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전혀 다른 제품명과, 옵션명을 갖게됐다. (실제 11번가나 지마켓과 같은 과거 유행했던 커머스 서비스의 일부 상품등록 구조가 이런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새로 만들어진 쿠팡과 같은 서비스은 이런 지점을 처음부터 방지하기위해 모든 상품을 '미리 등록된 DB에서 끌어와서 해당 상품의 정보를 연결'해준다. 반대로 말하면새로 등록되는 상품이 기존에 등록되었던 수백만건의 상품들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조사'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이런 형태는 판매하는 제품의 종류나, 세세한 옵션이 다양할수록 검증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특정 판매 사이트에서 '짝퉁'논란이 일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품 등록을 관리하는 상품등록 관리자가 모든 상품을 체크해서 등록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여러 서비스들에는 '숨어있는 사용자 타입'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심지어 그중에는 상태값에 따라 그들의 행동범위를 미리 파악해놔야하는 케이스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회원가입을 하지않은 게스트 (Guest) t사례다.
4.
회원가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지점까지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회원가입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워낙 많은 서비스들이 만들어지고있다보니, 키워드 검색에서 1~2초 안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보여주지않으면, 다른것을 찾아 떠나는 시대다. 웹페이지는 물론이고 앱서비스도 마찬가지로, 회원가입에 대한 제약이 굉장히 불친절하고, 게으른 설계가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서비스들이 회원가입 없이도 서비스를 일부 체험하거나, 단계별로 회원가입을 유도하는 방식의 설계가 늘어나고있다.
만약 게스트에게 다양한 자유를 주게된다면 어떻게될까? 어떤 시점에서인가 필요한 정보를 입력시켜야하는데. 그 지점이 바로 단계별 회원가입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개발자가 처리해야하는 '예외처리 케이스'도 함께 늘어나게된다. 수많은 페이지 들에서 항상 '로그인 여부'를 체크해야하고, 단계별로 이 사람이 '회원가입을 하지 않은 게스트'일 가능성을 체크해줘야한다는 거다. 그렇게되면 각각의 UI에서 보여주는 정보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똑같은 화면을 기준으로도 적어도 게스트와, 회원가입된 사람의 화면을 따로따로 보여줘야하니,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복잡한 FLOW에 디스크립션을 추가해줘야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단계별 회원가입이 있다면 '특정 정보를 입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UI 표기가 달라지거나. 추가정보 입력을 위해 그들의 '상태값'을 확인해야할 필요가 생긴다. 예를 들어 이런식이다.
- 게스트 : 특정 페이지에 진입불가 / 회원가입 유도 팝업 등장
- 1차 가입회원 : 대부분의 페이지에 진입가능 / 서비스 이용을 위해 추가정보 입력 필요
- 2차 가입회원 : 대부분의 페이지에 진입가능 / 서비스 이용가능 / VIP 기능 사용불가 / 이용횟수 10회 미만
- 우수회원 : 모든 페이지에 진입가능 / 서비스 이용가능 / VIP 기능 사용가능 / 이용횟수 10회 이상
이런식으로 회원의 타입이나, 그들의 회원상태에 '추가적인 상태값' 을 부여해야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동일한 서비스 화면이라도 매번 이 사람이 '어떤 상태값'인지를 확인해야하고, 그 상태값에 따라 어떤 화면을 보여줘야하는지를 정리해줘야한다. 그래서 이런 유저타입이 다양한데, 같은 화면을 기준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게된다면, 서비스 개발 이후나, 기능 추가 이후에 체크해야하는 페이지의 수가 몇 배씩 증가하게된다. QA (품질검사) 기준으로는 주요 OS별 스마트폰을 2~3대 이상 확인해야하니, 기능 하나마다 또다시 5번 이상을 체크해야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5.
서비스 관리자의 경우도 생각보다 가짓수가 많다. 예를 들어 O2O 서비스에는 운영관리를 위한 별도 관제요원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현장에서 나가서 뛰는 현장인원들을 관리하는 현장 관리자나, 그들을 다시 묶어 여러 지역에서 한번에 관리하는 현장소장같은 개념이 있는 경우도 있다. 개별 스팟이나 지역을 관리하는 경우 더욱더 지역과 담당자의 구분이 중요해지고, 그들을 대신할 대체인력이나, 비상연락망 등 그룹을 연결하는 역할이 여럿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이 갖고있거나, 소모성으로 사용하는 재료나 자재, 유류품 등을 관리하는 총무 역할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고객센터 인원도 마찬가지로, 1차 단순 민원을 상대하는 일반 상담원과, 문제해결이 어려운 경우 2차, 3차 상담인원이 존재하거나, 실제 엔지니어 등에게 연결해 문제해결을 처리하기도한다. 단순히 고객 입장에서야 이런 구조를 알 필요가 없겠지만, 기획자나 개발자의 관점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업무가 실제로 진행되기위한 환경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설계자나 개발자가 이런 사용자타입들의 분류를 세세하게 알지 못하면, 그들이 실제로 필요로하는 기능이나, 입력정보들을 누락시키게되고, '현장이나 운영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 수많은 업체들이 - 자사의 시스템과 실제 업무환경이 일치하지않아, 업무에 차질이 생기곤한다. 그래서 여러번 수정을 통해 외부 ERP(업무관리 시스템)을 커스터마이징하거나, 실제 운영상황에 맞는 자체 ERP를 제작하기도한다. 결국 우리가 잘 알지 못할 뿐, 수많은 업체들이 각자 고유한 작업공정이나, 다른 정보를 다루고있다. 사용자 타입을 넘어서서 그들이 '다뤄야하는 정보와, 연관된 정보들'까지 정리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정보들이 나올 수 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제품구입과 배송 수납, 인원이동과 그룹관리, 개별 기안과 구매요청서, 휴가신청과 신규인원 채용까지. 수많은 정보들에 각각의 '유저타입과 추가적인 상태값'을 더하면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6.
결국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저 = 구매자,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경험하고 체험해본 것들이 적기 때문이다. 일반기업과 법인회사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업종과 카테고리 구분에 따른 수많은 업체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각자 하는 역할이 다르고, 그들이 알아야하는 정보도 다르다. 그렇기에 기획자들은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의 상황과 업종에 따른 특수성을 파악하고, 그들이 만들어둔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을 시스템화하고, 문서화해서 UI 단위를 통해 설계가 가능해진다.
회사홈페이지나, 커머스 상세페이지 수준의 작업물을 넘어서서. 수많은 업체들이 사용중인 ERP 소프트웨어나, 업무처리 프로세스, 다양한 상품과 아이템들을 체험해보아야 설계의 영역도 넓어질 수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형태의 정보와 내용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힘겨운 시대다.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회사 단위로서도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그들에 맞는 서비스를 기획, 설계할 수 있다면 - 업무의 범위도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 기획자가 되고싶다면 더욱더 숨어있는, 다양한 서비스들과, 비즈니스들에 대해 파악해야한다.
-
어찌보면 평소에 얼마나 경제의 흐름과,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을 알고있느냐가 중요한 지점이 되는것 같기도 하다. 본인이 경험해본 영역이 좁을수록, 다양한 설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다양한 도전을 하지 않으니 비슷한 구조,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쓰게되고, 그 과정에서 흥미를 잃거나, 기계적인 반복을 하게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런 '지루한 반복'을 단지 먹고살기 위해 반복한다는 것 자체가, IT 생태계에서 퇴보하고있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