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기획자가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었노라고
1.
최근에 회사에 들어온 신입 기획자분이 있다. 디자이너 출신이 아닌데도 디자인을 열심히 공부해서 UI를 디자인해 면접에 합격했던 분이다. 내가 이분에 대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점은 바로 '디자인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다. 대부분의 UI 디자이너들은 보통 디자인 출신인 사람들이 많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큰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떤 역할을 하게되건 간에, 시각적인 완성도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건 좋은 능력이다. 기획자의 자질로서 보았을 때는,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내가 디자이너 출신 기획자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잡다한 지식에 대한 추구'가 많지 않다는 거다. 시각적 아름움, 디자인적 완성도만 추구하는 장인출신이 많다보니. 개발이던, 서비스건 새로운 내용을 찾아보고 배우려는 욕구가 많지 않다. 오로지 그저 '시각물, 디자인'이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패션피플이라고 해야하나, 시각적인 것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절대감각이 있는 사람들. 분명 이들은 내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을 다루고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2.
기획자는 개발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사고방식 자체가 '프로세스'와 '논리적인 로직'에 더 집중되어있다. 요즘 유행하는 서비스나, 대단하다는 비즈니스가 있다면, 그것에 들어가는 기술이나, 구현방법,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반환경을 파악하는게 기획자들이다. 사용성? 분명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메인타겟은 아니다. 오히려 개발자가 없어도, '개발적인 지점까지 파악해서, 꽃길을 깔아두는게'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본다. 그래서 기획자는 아는게 많아야한다. 그리고 이런 '지식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은, 기획자로서 성장하기가 어렵다.
나는 지금까지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을 교육해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인상적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는 사람들이었다. 디자인에 집착하기보다, 실제 구현에 대해 생각했고, 동시에 '분석적인 마인드'를 갖고있는 사람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압축하는 일에 익숙했다. 아무리 복잡한 정보라하더라도, 핵심 포인트를 잡아내면, 그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지점에서 이번에 새로 들어온 기획자분은 그런 '지식욕'과 '분석적 마인드'를 갖고있는 분이었다.
3.
이분은 회사에 들어온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메인 기획자로서 화면을 설계하는 경험을 했다. 물론 내가 도움을 주긴 헀다지만, 그런 역할은 '스스로 욕심이 없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는 그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공부해왔던 것들은 수박 겉핥기에 가까웠던거 같다고. 와, 이분은 지금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있는 거구나. 어찌보면 이런 순간들이 내 열망을 더 타오르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사람에게 제대로 기획을 가르쳐보고싶다던가. 혹은 이 사람을 리더급으로 키워내보고싶다는 열망 말이다.
나는 이분에게 약 2주간, 수많은 지식들을 주입해왔다. 그만큼 습득속도가 빠르기도 했고, 잘 해나가고있었으니까. 이제는 아예 한 서비스 설계의 메인을 맡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잘 하고있고, 앞으로도 더 잘하고싶단다. 아,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잘 가르치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태어나기를' 잘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걸.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나같은 교육 덕후들은 알수없는 희열을 느끼게된다는걸 말이다. 이분이 학교를 다녔을 때, 교수님은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나는 그분의 감정을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더 가르쳐야해. 그럴 준비가 된 사람이야."
3.
전문적인 분야의 지식을 논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사람이 있다는건 그 자체로도 축복이다. 그 사람을 알려주기 위해 내가 더 노력하게되고, 그 과정에서 더 좋은 교육자료가 만들어진다. 교육이란것도 결국은 누군가가 이 내용을 기반으로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대리만족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더 새로운 내용을 익히고, 그것을 다시 전달해주는 역할을 반복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기나긴 훈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을 강화해서, 상대의 성장을 위해 쓰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는건 엄청난 일이다.
기존 몇년간 사람들을 가르치면서도. 항상 한계를 느꼈던 지점들이 있었다. 결국에는 나 혼자서 하는 혼잣말일 뿐이고. 그것이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반복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즐거우니까 반복하게되는 것이고, 더 나은 방향을 찾게되는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는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정작 아무런 즐거움이나, 새로운 변화지점을 느낄 수 없으니. 지루함이 생기고 반복에 의미를 찾게된다. 결국 내가 기존에 진행해왔던 것들은, 내게 이렇다할 흥미를 가져다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르치게되는 경험이 필요했던 거겠지. 어찌보면, 그런 지점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최근에는 일하는게 즐겁다. 내가 잘하는 것들이 생길수록, 누군가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자긍심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어떤방식으로건 간에 타인을 이롭게 만들고. 그 사람이 원하는 꿈에 다가갈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거. 그런 지점이야말로 누군가를 교육하고, 강화하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인간관계가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분의 일취월장하는 실력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게된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나중에도 이런 분들이 세상에 더 숨어있다면, 그런 분들을 만나서 꼭 가르쳐보고싶다. 지식에 대한 탐구. 그 말이 참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분야를 함께 논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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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정리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신입 기획자분에게 영감을 얻은 것들이 많다. 어떤걸 더 가르쳐줘야할까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아, 이 부분도 괜찮겠군' 하는 지점들이 계속 생겨나곤한다. 어찌보면, 내가 스스로 움직이게될 계기가 생긴게 아닌가 싶다. 내가 이토록 활발해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상태가 유지될 것 같다. 숫자상으로 존재하는 수백, 수천명보다도, 함께 일하는 한명의 동료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게되는지. 새삼스럽게 체감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