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플러스 Sep 19. 2017

챕터 1. 감정과 심리상태의 연결관계 - 3편

03. 자신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시작점에 서다.





우리들의 내면은 불완전하고 연약하기 그지없지만
나약하기 때문에, 비로소 노력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길 어려워했던 A님과, 내가 맨 처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그녀가 올린 온라인상의 일기를 보고 내가 말을 걸었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중에는 실제로 만나 얼굴을 보며 상담을 진행하게되었다. 긴 대화 끝에 만나게 된 첫 자리에서, 나는 "당신의 감정은 모두 옳다"며 이야기의 운을 띄웠다. 그리고 상대의 감정적인 벽을 조금씩 열어내 보면서, A님 본인이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또 어떠한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A님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정작 그녀 스스로가 그 가능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변화에 대해 마음을 여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 약 반년 정도의 간헐적 대화만으로 굉장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물론, A님 본연의 성격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위해서는 망설이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이기도 했다. 그녀 스스로 원하는 것들에 대해 자기주도적으로 정리하고, 나를 일종의 말하는 일기장처럼, 도우미의 역할로 적극적으로 사용한 게 꽤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A님은 오히려 상담의 과정에서, 이 이야기가 끝나게 되면,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린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A님 본인에게는 추구하고 싶은 본인만의 이상이 있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도, 굉장히 특이한 경험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먼저 듣고 싶어 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내면에 담긴 이야기를. 정리해서,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이 굉장히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일기를 쓰고, 그걸 비춰보는 거울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자신이 추구하려 했던 것들이, 다른 누군가로부터의 인정이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어나가면서부터 많은 게 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전 원래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어요."
"네, 충분히 그런 타입으로 보여요. A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걸, 꼭 해내고야 마는 분이죠."
"하지만,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게 있어요.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했을 때, 일로서 받는 인정과. 개인으로서의 교감은 서로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A님은 자신의 불안함과 우울감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이러한 바람은 그녀의 핵심적인 갈망은 아니었다. 그저, 표면에 드러난 일시적인 상태에 가까웠다. 그녀는 애초에 홀로서기에 대해서 별로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인간대 인간의 대화에 있어서도 스스럼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평판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던 것뿐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지 않은 사람으로 볼까 봐. 패배자나, 감정적인 호소를 원하는 어린아이처럼 볼까 봐. 그런 이미지가 자신에게 부여되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완벽주의적인 특성이, A님 스스로 침묵을 지키고,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능력 있고 활달한 사람으로서의 이미지였다. 다른 누구에게도 자신이 지쳐있거나, 단정하지 못한 상태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런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에. 상담역인 나에게도 자신의 단점이나, 부정적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했던 방식은. 그녀가 가진 감정들이, 본인의 사회적 능력이나, 완벽한 모습과는 별개로. 고유한 인간적인 가치이며, 모든 인간이 그런 특성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펼쳤다. 예를 들어 무대가 있고, 그곳에 오르는 배우나 스타가 있다고 한다면. 모든 이들이 무대 위에서는 완벽해야만 하지만. 무대를 내려온 뒤에는 그저 한 명의 개인일 뿐이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A님의 입장에서는 그건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다만, 그런 그녀도 스스로 자신이 무너져 내리고, 망가져버렸다고 생각하게 되는 시간들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한 직후에 자신이 스스로의 논리에서 무너졌다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기 힘들어했기 때문에. 나는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냈던 사업가들이나, 커리어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위인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다는 걸. 하나하나의 예로 들어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A님은 자신보다 대단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설마 그랬을라고'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본인만의 무대에 올랐을 때, 완벽하기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완벽한 인간일 수는 없다. 그저 찰나의 순간. 완벽의 가면을 쓸 따름이다.




마침내 마지막 날이 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이번 대화가 서로에게 있어 마지막 이야기가 될거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묵묵히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A님이 말을 꺼냈다.



"전 재혁 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제가 그렇게 무력하지도 않았고. 나약하다고 느낄 필요도 없었다는 걸 알았어요."
"네, A님은 원래 굉장히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이에요."
"알고 있어요 ㅎㅎ 단지 제 어두운 생각들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을 뿐이죠."



A님은 나와의 이야기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짧고 간결한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했어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인사를 건네며 우리는 헤어졌다. 왠지 모르게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앞섰지만. A님은 본인이 스스로 추구하는 것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깨달았고, 더 이상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A님의 변화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스스로 갖고 있는 자기주도적 적극성과, 빠른 이해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가, 타인에게 인정받은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자신의 힘겨웠던 감정이.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빠르게 캐치해냈다. 그리고 자신의 부정적 감정에 대한 토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방식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도. 확신했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 더 이상 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훌륭한 케이스였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연락을 해본 적이 없다. 그녀 스스로 추구한 길이었고. 나 스스로도 A님에게 연락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A님을 통해서 내가 알고 싶었던. 당당함과 자신감의 기반을 이해하게 되었고. A님 또한 나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정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서로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제대로 서로에게 몰입함으로써, 각자가 원하는 바람을 잘 충족시켰다. 어쩌면 이런 '쿨한' 관계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많이 필요한 관계 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각자가 필요한 것을 추구하고. 필요에 의해 협동하지만, 서로에게 강제로 관계의 지속을 강요하지는 않는 그런 삶 말이다. 물론 그런 관계의 연결과 깨어짐을 반복해서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마음과, 심적 여유가 많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에, A님과의 상담에서 느꼈던 것처럼 - 통쾌한 성공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훌륭한 경험이었다.







개인의 우울이, 단지 듣기 힘든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개선할 통찰로 연결될 수 있다면 어떨까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A님이 마지막으로 건넸던 '고맙다'는 말을 잊지 못한다. 그토록 훌륭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홀로서기를 위해 빠르게 변화했던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를 위해 둥지를 떠나는 독수리의 모습처럼. 그 뒷모습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어쩌면 나는 그런 A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런 사람처럼 당당하게.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파악하며, 도움이 되는 사람의 형태로 남기를 자처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A님처럼 단기간 내에,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심적인 홀로서기를 추구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쓰는 지금도. 필자가 추구하는 것은, 다른 이들 또한 A 님과 같이, 자신의 삶에 있어 당당하고. 자신의 매력과 단점을 혼합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연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A님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스스로 해낸 일들과, 제대로 필요로 해지는 깊이 있는 관계에서 삶의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나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수동적일 수 있는 특성을 갖고. 그런 특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 스스로 주도적이지 못한 그런 자신의 한계와, 타인의 방식에 대해 맞추는 방법. 누군가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방법.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는 방법을 고민해왔고, 또 현재에도 그런 고민을 반복해나가고 있다. 필자의 글은 결국 이러한 인간적인 한계를 끌어안고,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이고. 그런 필자가 들여다보고, 반복해서 분석해왔던 수백 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의 총집합이다. 언젠가 이 책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내가 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나 행복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글은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해.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며 시작한 심리분석 이야기이다. 나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인간이었기에.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걸 배우고, 실험하고, 정리해야 했던 심리분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가 앞으로 시작하려 하는 이야기는 -  '많은 지식을 아는 대단한 사람'으로서의 역할보다. 다양한 사람을 겪어보고, 고생해본 사람으로서의 경험담이자, 오랜 시간을 스스로 우울증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그것을 극복해온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해왔는지. 어떤 분석을 통해,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이어져왔는지. 그 생각의 흐름이나, 실제적인 방법이나, 사례들을 포함하여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개인의 고통이, 그저 우울한 타인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개선하기를 반복해낸 결과, 다른 누구에겐 가는 또 다른 시선이자. 새로운 통찰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




생활 속 심리분석
챕터 1. 감정과 심리상태의 연결관계 - 3편, 자신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시작점에 서다. (완)
챕터 2. 나로부터 시작하는 심리분석 - 에서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챕터 1. 감정과 심리상태의 연결관계 -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