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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Jan 24. 2019

아름다운 구속, 아니 구독

1인 미디어의 시대, 크리에이터로 살아보기

아름다운 구속아니 구독

-1인 미디어의 시대에 크리에이터로 살아보기     


모처럼 일찍 퇴근한 김 과장.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겠다며 빠른 발걸음으로 서둘러 집에 들어갔더니 어린 두 딸들은 일찍 집에 온 아빠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대폰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뭔가를 열심히 찍고 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김 과장이 딸들의 무관심에 화를 낼 법도 한데 왠지 까치발을 하고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간다. 

 8살 꼬마가 주물럭거리는 액괴(액체 괴물의 줄임말) 영상을 전 세계 수 억 명이 시청을 하고 그 영상에 달라붙는 광고수익이 최고에 다다를 땐 한 달에 2-3억 이상 발생하기도 한다. 

때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한 달 평균 3천만 원 이상은 꾸준히 찍고 있으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통장잔고와 이런 믿기지 않는 현실에 김 과장은 덜컥 겁도 나고 어린 자식을 앞세워 이래도 되나 싶다. 

엄밀히 말하면 앞세운 게 아니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찍어 올린 콘텐츠가 1년 사이 이렇게 대박을 터뜨릴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물며 부부는 매일 밤마다 “몸에도 해로운 저 끈적이는 장난감들을 내일은 반드시 몰래 갖다 버리자.” 며 다짐하곤 했었다.

 아빠가 일 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한 달 만에 버는 미취학 아동들, 그 덕에 아내는 떠밀리듯 강남역에 슬라임 카페를 차려 오프라인에서도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고 이처럼 낯선 경제 구조의 패러다임을 처음 경험하고 있는 김 과장에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지금의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이다. 

그러나 쉽게 관둘 수도 없는 것이 학교를 다녀야 하고 사춘기가 찾아오는 등 다가올 변수가 더 많은 딸들의 콘텐츠에 안정성과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김 과장은 요즘 평소에 없던 두통까지 생겼다.

 종이 신문이나 잡지에 쓰던 구독이란 단어가 영상 콘텐츠를 즐겨찾기 한다는 의미로 대체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컹거리는 장난감을 주무르는 콘텐츠로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버는 게 정말 가능한지 의심이 들겠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단순한 아이들의 손장난 콘텐츠는 말(언어)이 필요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전 세계의 어린 구독자들을 유입시킬 수 있어 성인 콘텐츠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뷰(view)와 광고를 통한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부모가 논을 팔고 소를 팔아 자식들 장사 밑천을 마련하던 과거를 경험했고 요리를 배워 식당을 차리거나 기계를 사들여 공장을 하던 근대적인 상식의 관점에서 아무리 눈을 씻고 들여다본다고 한들 그 어떤 말로 현재의 상황들이 설명되고 이해가 되겠는가?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크리에이터가 되기는 어렵다. 모니터를 통해 보면 콘텐츠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로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상위에 랭크되어있는 인기 유튜버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많다. 

처음엔 재미 삼아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매체의 특성상 하루만 쉬어도 자연스레 등 돌리는 대중들 탓에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어 올려야 하고 매번 다른 아이템을 보여줘야 하는 그때부터가 진짜와 가짜가 나뉘는 진정한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인데 그 어려운 걸 잘 해냈다고 치자. 그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본인도 예상 못한 큰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기획사가 달라붙고 그렇게 규모가 커지면서 골치 아픈 일이 늘어나니 이 힘든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사는 모습이 예전에 박차고 나온 직장생활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무심코 사용한 배경음악과 글자 폰트에 임자가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유명하지 않았을 때는 뭘 갖다 써도 상관이 없었는데 조금이라도 알려지게 되면 발가벗겨진 것 마냥 내 모든 것들이 대중의 심판을 받게 되고 뭔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콘텐츠의 참맛을 엄한 곳에서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8년 간 구독자가 22명인 내  유튜브 채널


 현시점에서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1인 방송 진출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시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인데 그것은 현실 세계의 소통과 온라인 세상의 소통을 동일시할 때 생기는 오해여서 어느 정도 미디어를 이해하는 적응기간을 거치고 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 연유로 초창기에는 대단한 콘텐츠 없이도 남에게 자신을 보이기 좋아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세상과 소통하는 걸 오히려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1인 미디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조만간 수준 높고 의미 있는 전문적인 콘텐츠와 소소하더라도 진정성이 있는 다양한 개인의 콘텐츠를 내세운 사람들이 1인 미디어 방송에 뛰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방송을 장악하고 있던 기존의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들은 경쟁력에서 밀려 결국 그 빛을 잃고 자연스럽게 어둠 속 마이너 그룹을 형성할 것이다. 

 1인 미디어의 복잡하고 미묘한 수익구조를 공부하거나 마이크와 카메라를 구입하기 전에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꾸준히 쌓아 올리고 발전시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연관을 지어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평소 좋아하던 것을 파고들어 같은 관심을 가진 대중들과 함께 공유해보면 어떨까? 

그것마저 부담된다면 일기 형식의 브이로그(VLOG=비디오(vedio)+블로그(blog))를 만들어보면서 적응기간을 가져도 좋겠다. 

세상은 느린 나를 제치고 저만큼이나 멀리 가 있는데 세상을 바꿀만한 획기적인 것이 아니라고,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람들 앞에 내 개인의 얕은 지식과 일천한 경험을 내놓는다는 것이 민망하다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세상을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자. 

한 대의 전화기를 온 가족이 사용해야 하던 시대에는 ‘통화는 간단히’가 미덕이었겠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지금은 유물이 된 표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어떤 삶이 맞고 틀리는지 따지는 것은 -일정 시간을 두고 복잡하고 섬세한 기준에 근거해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삶의 깊이보다 내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삶의 넓이를 찾아 모험을 떠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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