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 인디언스 vs 시애틀 매리너스 (2009.08.24)
클리블랜드는 내 첫 미국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다.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거쳐 클리블랜드에서 마무리 짓는 2주간의 여정이었는데, 마지막 도시를 클리블랜드로 정한 건 오로지 추신수를 보기 위함이었다. 클리블랜드는 뉴욕,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도 아니었고 유명한 볼거리가 있는 도시도 아니었다. 아마도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생애 첫 미국 여행의 행선지를 클리블랜드로 정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미국 동부의 필라델피아에서 중부의 클리블랜드로는 버스로 이동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저녁에 출발해 밤을 꼬박 새워 아침에 클리블랜드에 떨어지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중반의 체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정 같기도 하다. 물론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달리는 버스 안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홈구장 PNC 파크를 우연히 구경하는 호사도 누렸다.
오로지 야구 관람이 클리블랜드 여행의 목적이었기에 숙소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 필드 근처로 정했다. 기왕 클리블랜드까지 먼 걸음을 했는데 두 가지의 목표는 꼭 달성하고 싶었다. 첫 번째는 직관하기로 예정된 두 경기에서 추신수의 시원한 홈런을 구경하는 것, 두 번째는 필라델피아에서 박찬호 사인볼을 얻은 기세를 이어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의 사인볼을 얻는 것이었다.
추신수의 사인을 받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추신수의 사진과 프로필이 프린트된 공까지 미리 준비했다. 구장 곳곳에서 유니폼, 티셔츠, 야구공 등 추신수와 관련된 물품을 판매하고 있었기에 이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박찬호 유니폼을 그렇게 사고 싶었는데 매장 어느 곳에서도 팔지 않아 결국 사지 못했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추신수는 그래디 사이즈모어, 트래비스 해프너와 함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타선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2008년 후반기 활약을 발판 삼아 2009시즌부터 주전으로 발돋움했고, 공-수-주를 두루 갖춘 five-tool player로 홈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홈 3연전 중 마지막 두 경기를 직관했는데, 추신수는 그 첫 번째 경기 첫 타석에서 안타를 선물했다. 비록 기대했던 홈런포는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충분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연장 11회 말에 터진 루이스 발부에나의 끝내기 홈런으로 홈팬들에게 귀중한 승리를 선물했다.
낮경기로 펼쳐진 3연전 중 마지막 경기가 가장 관심을 끄는 매치였다. 바로 시애틀의 에이스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등판하는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킹'펠릭스는 추신수와도 인연이 있는 선수였다. 2006시즌 중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된 추신수는 트레이드 이후 첫 경기를 친정팀인 시애틀 매리너스와 치렀다. 그 경기의 선발투수가 바로 '킹'펠릭스였다.
그 경기에서 추신수는 6회 말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결승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본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친정팀을 상대로 통쾌한 복수극에 성공했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을 재현해주길 기대했지만, 직관했던 경기에서는 삼진 2개 포함 4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경기를 마감했다.
이제 남은 것은 미리 준비한 공에 추신수의 사인을 받는 것뿐이었다. 경기가 끝난 이후 선수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 근처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추신수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여러 현지 팬들도 추신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클리블랜드 내에서 추신수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저마다 주차장 펜스 사이로 손을 뻗어 공을 추신수에게 내밀기 시작했다. 나도 물론 그 행렬에 동참했다. 추신수도 팬들의 성원에 화답하듯 한 명씩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 내심 불안하기도 했지만 차례를 기다렸다.
10분가량 흘렀을까. 사인을 받은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며 공을 쭉 뻗은 순간!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아쉽게도 그 순간 추신수도 사정이 있는 듯 나를 포함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자리를 떠났다. 눈앞까지 다가왔던 추신수 사인볼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기다리고 있는 모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줘야 하는 의무는 없다. 아마도 모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기 위해서는 밤을 새워해도 모자랄지도 모른다. 운동선수에게 경기 후 휴식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다만 아쉽게 사인을 받지 못한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되다 보니 당시에는 꽤나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뒤 나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그때 추신수의 심경이 이해가 됐다. 그때 당시 추신수의 둘째 아들인 건우군이 엄마 뱃속에 있던 시기로 짐작이 되는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기에는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개인적으로 인연을 믿는 편인데, 정말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저 공에 추신수의 사인을 받을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