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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루머신' 추신수의 빛났던 5월

LA 에인절스 vs 텍사스 레인저스 (2014.05.05)

by clayton

메이저리그의 한 시즌은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이다. 긴 시즌을 치르기 위해서 완급조절은 필수다. 특히나 매일 경기에 나서야 하는 타자의 경우 페이스 조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추신수는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페이스를 점점 끌어올려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시즌 후반에 빛을 발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통산 성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추신수의 통산 월별 성적을 보면 9월과 10월의 OPS(출루율+장타율)가 .891로 다른 달에 비해 거의 1할가량이 높다. 아메리칸리그 이 달의 선수상도 2008년과 2015년, 두 번 수상했는데 모두 9월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지쳐있는 시즌 후반에 힘을 내는 선수는 팀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9월은 보통 시즌 마지막 달이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냐 마냐의 기로에 서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추신수도 시즌 초반에 엄청난 활약으로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바로 FA 7년 계약이라는 대박을 터뜨리며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첫 해인 2014년이었다. 아무래도 계약 첫 해인 만큼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했고, 그 의지가 시즌 초반 호성적으로 이어졌다.


LA 에인절스의 홈구장 에인절 스타디움. (c) clayton


당시 추신수의 활약을 LA 에인절스의 홈인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LA 에인절스와 원정 3연전을 치르고 있었고, 원정 3연전의 마지막 두 경기를 직관할 수 있었다. 에인절 스타디움은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 이은 2014년 미국 서부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였다. 샌디에이고에서 에인절 스타디움이 있는 애너하임까지는 암트랙을 타고 두 시간 정도 거리로 꽤 가까운 편이다.


LA 에인절스와의 원정 3연전에서 추신수는 잔뜩 물오른 타격감을 과시했다. 3연전 첫 경기에서는 솔로홈런 포함 안타 3개를 몰아치며 바로 전 경기 무안타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에서는 안타 2개, 볼넷 2개로 네 차례나 출루하며 '출루머신'으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2014년 5월 5일(한국시간) 텍사스 레인저스의 라인업 카드. 사진 = 텍사스 레인저스 공식 SNS


직관했던 3차전이 백미였다.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추신수는 지금은 고인이 된 에인절스 선발 투수 타일러 스켁스를 상대했다. 추신수는 1회 초 첫 타석과 2회 초 두 번째 타석에서 연이어 안타를 기록하며 가볍게 멀티히트 경기를 만들어냈다. 추신수와의 상대에서 버거움을 느낀 에인절스는 세 번째 타석부터는 승부를 피하기 시작했다.


3회 초 고의사구로 출루한 데 이어, 5회 초 네 번째 타석에서는 몸에 맞는 볼로 1루로 향했다. 9회 초 마지막 타석에서도 볼넷을 하나 추가하며 5출루 경기를 기어코 완성했다. 리드오프 타자가 다섯 차례나 출루한 경기에서 팀이 패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추신수의 활약을 발판 삼아 14:3의 대승을 거뒀다.


그날 경기 중 잠깐 한눈을 팔거나 먹을거리를 사러 자리를 잠시 떴다가 다시 경기장을 보면 그때마다 추신수는 루상에 출루해있었다. 추신수는 그날 경기로 타율을 .349로 끌어올리며 아메리칸리그 타율 선두로 등극했다. 출루율은 .482로 독보적인 1위를 유지했다. 경기 중계진도 추신수가 출루할 때마다 아메리칸리그 타격 리더보드를 중계화면에 올리며 한껏 추신수를 띄웠다.


다음 시리즈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에서 펼쳐졌는데, 3연전 중 첫 두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타율을 .370까지 끌어올렸다. 출루율은 무려 5할이었다. 두 번 타석에 들어서면 한 번은 출루한다는 이야기다. 전미의 주목을 받았던 추신수의 성적은 5할 출루율을 정점으로 조금씩 하향하기 시작했다. 부상까지 겹쳐지며 시즌 초의 성적표를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왜 텍사스가 고액을 들여 추신수를 영입했는지 그 이유를 증명하는 한 달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추신수는 텍사스와의 7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맞이했다. 선수로서도 현역 커리어가 얼마 남지 않은 황혼에 들어섰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연기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행한 기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팀의 베테랑 선수로서의 책임감까지 보여주고 있는 추신수의 현역 선수생활 말미를 끝까지 응원하고 싶다. 누가 뭐라 해도 추신수는 MLB에서 한국인 타자로서는 전에 없던 독보적인 선수다. 늘 시즌 후반부에 맹활약을 펼쳤던 것처럼 선수생활 말미에서도 '불꽃'같은 활약을 펼치길 기대해본다.


LA 에인절스와의 경기 중 추신수. (c) clay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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