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인 듯 처음 아닌 처음 같은 곳
"여의도에서 직장 생활하는 게 최고의 복지 아닌가요?"
여의도에서의 면접조차 거의 처음이었던 내게 너무나도 낯설게 들렸던 한 마디. 여의도에서만 평생 직장 생활을 했다던 팀장님은 최종 합격 후 회사의 복지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나의 질문에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답을 내어놓았다. 회사의 위치가 어떻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회사의 복지가 된단 말인가. 그만큼 내세울 만한 복지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그렇게 내 인생의 세 번째 회사 생활이 여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건설과 IT를 거쳐 또다시 생소한 분야인 금융회사에서 새롭게 도전하게 되었다. 어찌도 이리 커리어에 일관성이 없는지. 첫 번째 회사와 두 번째 회사에서 모두 이사를 경험한 탓에 지리적으로는 총 네 곳의 업무지구를 경험했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양재 시민의 숲, 강남역과 삼성역을 거쳐 여의도는 그야말로 생판 처음이다.
'여의도 직장 생활=최고의 복지'라는 말에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여의도의 묘한 매력에 빠져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여의도에서의 시간은 빠른 듯 느리게 흘러간다. 1세대 업무지구 중 하나답게 여의도의 업무빌딩, 식당 등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많다. 그럼에도 건물의 오랜 역사와 대비되는 에너지와 활기가 있다. 퇴근 후 사람들이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첫 회사가 있었던 신사동 가로수길은 특유의 멋스러움과 트렌디함이 매력이었지만 너무 변화의 속도가 빨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식당과 매장이 뚝딱 만들어졌다가 금세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새롭게 단장하여 또 다른 손님들을 맞이한다. 사옥 이전으로 가게 된 양재 시민의 숲은 그에 비해 너무 조용하고 적막했다. 예스러우면서도 심심하거나 적막하지 않은 곳. 그게 바로 여의도의 첫 번째 매력이다.
여의도에서는 특유의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진다.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회사들이 모여 업무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탓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돈들이 오고 가는 총성 없는 전쟁터 같은 곳이 여의도다. 수없이 오고 가는 돈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다. 그래서인지 여의도를 지나다니는 직장인들에게는 프로 의식을 넘어 전쟁터에 나선 장수처럼 비장함마저 사뭇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은 학교가 아닐뿐더러 놀이터도 아니다.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얻는 곳이 직장이다. 'Fun 경영', '워라밸',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표방하는 회사들이 유행처럼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뭔가 본질을 잃은 느낌이다. 물론 모든 회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본질은 회사는 일한 만큼 돈을 받아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약간은 꼰대스럽기도 하지만 책임감과 프로 의식이 물씬 느껴지는 여의도가 나에게는 딱이다.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 때 여의도 직장인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상암 DMC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는 나 같은 '방송 덕후'들에게 꿈같은 공간이었다. 여의도를 동경한 덕에 '신문방송학도'라는 꿈은 이뤘지만, 방송국 직원이 되겠다는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여의도는 한 때 동경했던 곳이자 나에게는 닿을 듯 닿지 못 한 미지의 세계와도 같다. 그곳에서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문득 처음 여의도에 발을 디뎠던 그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때였는데, 첫 서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도 바로 여의도였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기 위해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여의도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물고기 모양의 조각 작품 앞에서 한껏 폼을 잡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여의도에서 사진을 찍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20여 년이 흐른 후에 같은 공간에서 그때를 추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기왕 여의도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거 앞으로 오랫동안 여의도에서 머물면서 여태 경험하지 못한 여의도의 또 다른 진가를 발견해보고 싶다. 돌고 돌아 결국 여의도. 오늘도 사람들로 가득 찬 9호선 급행열차에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