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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yton May 04. 2020

왜 아직도 차를 안 사?

사회초년생들이 직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 위시리스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동차다. 브랜드와 차종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나 차량 역시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대는 아니다. 오히려 큰 맘먹고 구매해야 하는 품목에 가깝다. 다만 수도권에 있는 역세권 신축 아파트 같이 다가가기 조차 어려운 목표는 아니기도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차를 구매한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만났던 입사동기 형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를 구매했다. 다만 이유가 조금 슬펐다. 차를 사야만 회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았다나. 매달 할부금을 갚기 위해서는 쉽사리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리라는 계산 하에 이루어진 소비였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남아있는 할부금의 무게보다 회사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무거웠는지 결국은 퇴사라는 선택을 하게 됐다.


올해로 직장생활 년 13년차를 맞고 있는 나는 아직 차가 없다. 결혼한지는 올해로 11년째, 아이도 둘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차가 없다는 얘기를 하면 백이면 백,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때부터 질문세례가 쏟아진다. 아래는 '아직까지 차도 안 사고 뭐 했어?'라는 질문에 대한 눈물겨운 철벽방어기.


Q. 차가 없는데 애들은 어떻게 키워?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불편하지 않아?

A. 차가 있다가 없었으면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없이 지내다 보니 사실 불편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애들 데리고 이동은 어떻게 하냐고요? 가까운 거리는 유모차 태워서 걸어가면 되고요, 동네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죠. 특히나 서울 안에서는 대중교통이 워낙 잘되어있어 대중교통으로 못 가는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아! 다만 가끔씩 당황할 때가 있긴 해요. 유모차 태워서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요. 그럴 때 빼고는 크게 불편한 점은 잘 모르겠네요.


Q. 와이프랑 애들이랑 여행도 좀 다니고 해야지. 여행은 어떻게 다녀?

A. 음... 남들만큼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끔 가족들이랑 여행 다녀요.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요. 너네 집 애들이 순해서 가능한 거라고요? 그건 저도 정말 아이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근데 1년에 여행을 몇 번이나 다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주말이 대부분일 테고 보통 주중에는 차량 사용할 일이 잘 없지 않나요? 주말에 잠깐 사용하기 위해 1주일의 대부분을 주차공간만 차지하는 차를 꼭 사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차가 없으면 차량 유지나 주차에 대한 스트레스는 안 받아도 되는데, 그게 더 좋지 않나요?


Q. 살다 살다 진짜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인생 좀 즐기면서 살아야지 아껴서 나중에 뭐 하게?

A. 아, 이건 저를 좀 오해하신 거 같아요. 저는 소유욕이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지 않은 사람이에요. 정말 사고 싶은 건 꼭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는 아직까지 잘 아끼지 못해요. 그중 하나가 전자기기인데, 가지고 싶은 기기가 생기면 정말 눈이 돌아갑니다. 차를 사야만 꼭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차를 안 사는 대신에 그 돈으로 다른 좋아하는 걸 하는 거죠. 오히려 인생을 즐기면서 살기 위해 차를 안 샀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거 같아요. 저는 메이저리그 야구 보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요, 차를 안 산 덕에 미국으로 직관도 여러 차례 다녔어요. 물론 여행도 마음껏 다니면서 차도 사고 유지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춘 분들은 정말 부럽습니다...


근데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흔들릴 때가 있긴 해요. 저라고 차가 사고 싶지 않겠어요? 차가 있으면 편한 것도 알겠고요. 언젠가는 저도 제 인생 첫 차를 사지 않겠어요? 그러니 저한테 차 언제 살 거냐고 이제 그만 좀 물어봐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진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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