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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놓친 그레인키의 완봉승

LA 다저스 vs 시카고 컵스 (2013.08.27)

by clayton

6:0, 여섯 점 차의 편안한 리드 상황. 잭 그레인키는 완봉승에 도전하기 위해 9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8회까지 투구 수는 102개로 적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완봉승에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투구 수였다. 시카고 컵스의 테이블 세터로 나선 스탈린 카스트로와 주니어 레이크를 가볍게 돌려세울 때만 해도 그 누구도 그레인키의 완봉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2사 이후 컵스 3번 타자 앤서니 리조가 2루타를 뺏어내며 반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섯 점 차는 뒤집기 쉬운 점수 차는 아니었지만 3연전의 첫 경기인만큼 다음 경기를 위해서라도 컵스 타자들도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4번 타자 네이트 슈어홀츠는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며 그레인키를 더욱 압박하기 시작했다.


5번 타자 브라이언 보그세빅과의 승부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완봉패를 모면하기 위한 보그세빅과 눈앞에 다가온 완봉승을 지키기 위한 그레인키의 정면승부였다. 경기장에 있는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서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승부는 쉽사리 결정 나지 않았다. 풀카운트까지 가는 7구 접전이었다.


야구는 9회부터 시작이라고 했던가. 9회 초 투아웃 2-3 풀카운트에서 보그세빅은 끝내 주자들을 모두 불러들이는 2루타를 터뜨리며 그레인키를 무너뜨렸다. 스코어는 6:2. 투구 수는 122개에 완봉승은 좌절된 상황. 그레인키가 더 이상 마운드에서 투구를 할 의미가 없어졌다. 그레인키는 완봉승을 놓친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운드를 브라이언 윌슨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윌슨이 더 이상의 반전은 허용하지 않았다.


사진 = 다저 스타디움 전경. (c) clayton


선발투수가 한 점의 실점도 없이 경기를 끝까지 책임져야만 완봉승을 거둘 수 있다. 적은 투구 수로 효율적인 피칭을 펼침과 동시에 실점 없이 경기를 운영해야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완급조절을 하며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기보다는 초반부터 전력피칭을 하며 6~7이닝을 완벽하게 막은 뒤 불펜에 경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선발 투수의 미덕이 됐다. 투수의 완봉승을 보는 것이 정말 귀한 시대가 됐다.


지금까지 여러 메이저리그 경기를 직관했지만, 아쉽게도 완봉승 경기는 경험하지 못했다.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3루수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으로 완투승에 그친 클리프 리의 경기였고, 그다음이 바로 그레인키의 8.2이닝 2실점 승리로 끝난 경기였다. 투구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그레인키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졌지만, 완봉승에 대한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데에 대한 왠지 모를 씁쓸함까지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날 경기 직관 이후 그레인키에 대한 팬심이 더욱 짙어졌다. 그레인키의 매력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데에 있다. 전성기에 비해 구속은 많이 떨어졌지만 다양한 구종으로 타자들을 상대하는 레퍼토리. 경기 외적으로는 4차원적인 성격과 언행. 몸에 맞는 볼 이후 마운드로 돌진하는 카를로스 쿠엔틴을 피하지 않는 상남자 기질까지. 평범하고 모범적인 선수들도 좋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그레인키 같은 선수들도 가끔 있어야 메이저리그가 더 다양한 팬들을 끌어모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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