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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불꽃놀이 명당은 야구장입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vs 시애틀 매리너스 (2009.08.23)

by clayton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꼽는다면 불꽃놀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에 쌓인 근심 걱정들이 사그라드는 기분마저 든다. 모든 이벤트들이 그러하듯 같은 불꽃놀이라 하더라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보고 나서의 느낌이나 감명은 남달라 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고의 불꽃놀이 명당으로 야구장을 추천하고 싶다.


야구장에서의 불꽃놀이를 처음 경험했던 것은 2009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구장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였다. 현지시각으로 저녁 7시에 시작한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가 끝난 이후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야구장 불꽃놀이의 감흥을 배가시키는 데에는 역시 홈팀의 승리만한 게 없었다. 1회 초에만 3점을 실점하며 기선을 빼앗긴 인디언스는 3회 말과 4회 말, 7회 말에 한 점씩 따라붙으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두 팀은 연장 11회, 경기시간으로 따지면 3시간이 넘는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끝내 웃은 건 홈팀 인디언스였다. 연장 11회 말 2사 이후 터진 루이스 발부에나의 끝내기 홈런에 힘입어 인디언스는 4:3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인디언스의 홈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하기 시작했고,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불꽃놀이는 그날 경기 이후 예정되었던 'ROCK' n BLAST 09' 이벤트의 일환이었다. 퀸의 'We Wil Rock You', 비틀즈의 'Twist and Shout' 등 듣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락 장르의 음악과 함께 형형색색 화려한 불꽃이 클리블랜드의 하늘을 장식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클리블랜드에서의 불꽃놀이를 만끽했다. 끝내기 홈런으로 끝난 홈팀의 극적인 승리와 함께여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던 불꽃놀이였다.


클리블랜드보다 더욱 오랜 여운을 남겼던 불꽃놀이는 2013년 LA 다저스타디움에서의 불꽃놀이였다. 8월 31일(한국시각)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의 홈경기였고, 그날 경기 선발투수는 다름 아닌 류현진이었다. 류현진은 6.1이닝 동안 8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고,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2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등 팀 타선의 넉넉한 지원 속에 9:2, 다저스의 완승으로 마무리된 경기였다. 동시에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 13승째를 수확한 경기였다.


다저스타디움에서의 불꽃놀이가 특별했던 건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 위에서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현지 기준 금요일 경기였는데, 당시 다저스 구단은 금요일 홈경기가 끝난 이후 선수들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라운드를 팬들에게 개방했다.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관중석에 자리했던 팬들이 하나둘씩 그라운드로 모여들었고, 저마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한 최적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 자체로 이색적인 분위기였다. 선수들이 직접 뛰는 공간에서 불꽃놀이를 즐긴다는 자체가 사실 매우 낭만적인 일이었다. 불꽃놀이도 좋았지만 불꽃놀이가 끝난 이후에도 그라운드에 남아서 여운을 즐겼다. 내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된 것 마냥 베이스를 돌아보기도 하고, 그라운드에 털썩 앉아 그대로 누워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미리 준비해온 글러브와 공으로 캐치볼을 즐기기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쾌청한 날씨와 맑은 하늘까지 어우러져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예정된 행사가 모두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간 후에도 이대로 경기장을 나가고 싶지 않아 그라운드를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가서도 촬영했던 동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그날 받았던 느낌을 잊지 않으려 되새겼다. 역시 야구장은 최고의 불꽃놀이 명당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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