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타디움 투어(2009.08.13)
새로운 구장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팬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모든 팀이 우승을 꿈꾼다. 우승만큼 새로운 구장으로 팬들을 끌어 모을 확실한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MLB팀들이 새로운 구장을 개장하는 시기에 맞추어 팀의 리빌딩 작업을 마치고 엄청난 투자로 즉시전력감을 끌어모아 개장 첫 해 우승이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2009년 양키스 역시 그랬다. 뉴 양키스타디움 개장과 함께 2009시즌을 맞이한 양키스는 오프시즌 내내 큰 손 다운 행보를 보였다. CC 사바시아, AJ 버넷과 계약하며 선발진을 두텁게 했고, 1루수 마크 테셰이라까지 영입하며 타선의 무게감을 더했다. 세 선수를 영입하는 데에만 4억 달러, 한화로 5,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대가를 지불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90년대 말 양키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팀이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제패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런 양키스가 조금씩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역대 월드시리즈에서도 명승부로 꼽히는 2001년 월드시리즈다. 상대팀이 'Born to K' 김병현의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였기에 국내 팬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월드시리즈이기도 하다. 그해 최종전인 7차전까지 가는 피 말리는 승부 끝에 우승한 팀은 양키스가 아닌 애리조나였다. 그것도 양키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에게 뺏어낸 9회 말 끝내기 승리였다.
2003년의 패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애런 분의 ALCS 7차전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숙적 보스턴을 무너뜨린 양키스는 2003 월드시리즈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를 만났다. 양키스를 가로막은 것은 '신성' 조시 베켓이었다. 베켓은 우승을 확정 지은 6차전 완봉승을 포함, 월드시리즈 2경기에서 16이닝 1실점으로 양키스 타선을 꽁꽁 묶었다.
보스턴과의 리매치가 성사된 다음 해 ALCS에서 양키스는 7전 4선승제 시리즈에서 역대 처음으로 3연승 후 4연패의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도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구 양키스타디움을 사용한 마지막 해였던 2008년까지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팀인 양키스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이었다. 새 구장 개장을 앞두고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한 갈망은 절정에 달했다.
2009년,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전년도 우승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무너뜨리고 9년 만의 정상 탈환에 성공에 성공했다.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마쓰이는 월드시리즈 6경기에서 13타수 8안타(타율 .615)의 미친 타격감을 선보이며 필라델피아 투수진을 초토화했다. 월드시리즈 MVP도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양키스의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양키스는 2009년 우승 이후 10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여전히 2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기록은 역대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2위 기록(11번)과 두배 이상 차이나는 넉넉한 격차다. 월드시리즈 우승 기록에서 보듯 양키스는 자타공인 MLB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MLB는 몰라도 양키스는 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더 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 없을 듯싶다.
뉴 양키스타디움 곳곳에서 오랜 역사, 찬란한 우승 기록, 베이브 루스를 비롯한 MLB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선수의 존재 등에 대한 양키스만의 프라이드를 가득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양키스는 새 구장 개장 첫 해 우승까지 차지하며 또 다른 자랑거리를 하나 만들어냈다. 양키스의 역사는 오늘도 새로 쓰이고 있다. 물론 2020시즌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 순간에도 양키스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