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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 푸이그의 질주가 그립다

LA 다저스 vs 시카고 컵스 (2013.08.29)

by clayton

야생마가 마음껏 뛰어다니기에 녹색 그라운드는 좁은 것일까. 2019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ree agent) 자격을 얻은 '쿠바산 야생마' 야시엘 푸이그의 새 둥지 찾기가 예상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 2013년 센세이셔널한 데뷔로 소속팀 다저스를 넘어 메이저리그를 놀라게 했던 그다. 1월 중순까지도 소속팀을 찾지 못한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직관했던 2013년 8월 29일(이하 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도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2018 WS 4차전에서 홈런을 친 후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하는 푸이그.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다저스 팬 입장에서 푸이그는 그야말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선수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3년의 임팩트는 정말 대단했다. 데뷔전부터 남달랐다. 푸이그는 2013년 6월 4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의 홈경기에 1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1회 말 첫 타석 중전안타로 본인의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손쉽게 기록하더니 6회 말에도 안타를 추가하며 멀티히트 경기를 완성했다.


백미는 9회 초 수비였다. 2:1로 한 점 앞선 9회 초 1사 1루에서 카일 블랭스의 뜬 공을 잡아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렸고, 곧바로 1루로 송구하여 미처 귀루하지 못한 주자 크리스 데놀피아까지 잡아내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다저스 팬들이 기대했던 그대로의 활약을 데뷔 경기부터 유감없이 발휘했다.


바로 다음 날 경기에서는 홈런을 두 개나 터뜨리며 다저스 팬들을 열광시켰다. 6월 한 달 동안 26경기에서 4할3푼6리의 타율 7홈런 16타점을 기록하며 데뷔하자마자 푸이그는 내셔널리그 이 달의 선수상, 이 달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야생마라는 별명답게 엄청난 에너지로 그라운드를 마음껏 누볐다.


푸이그의 엄청난 활약에 다저스의 팀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푸이그의 데뷔 경기 때만 하더라도 지구 선두에 7경기 반이 뒤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최하위였던 다저스는 푸이그의 활약을 발판 삼아 반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50경기에서 42승 8패라는 말이 안 되는 승률을 기록하며 지구 선두로 등극했고, 2013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팀이 됐다. 이후 다저스는 2019시즌까지 7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찬란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데뷔 시즌 날렵한 모습의 야시엘 푸이그. (C) clayton


그런 야시엘 푸이그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야구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된 그의 태도였다. 특히 메이저리그에 갓 데뷔한 신인 선수였기에 이런 태도 측면에서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됐다. 상습적인 지각, 무성의한 수비와 주루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모습으로 팀 케미스트리를 해친다는 꼬리표는 이후 푸이그의 선수 생활 내내 따라다녔다.


직관했던 2013년 8월 29일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경기에서 다저스는 시카고 컵스에 4:0으로 완승을 거뒀다.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로 팀을 옮긴 선발 투수 리키 놀라스코는 8이닝 무실점의 역투로 이날 승리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정작 그날 경기에서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푸이그였다.


1번 타자 우익수로 이날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한 푸이그는 5회 초 수비에서 스킵 슈마커와 교체되며 일찌감치 경기에서 빠졌다. 2:0으로 다저스가 앞서 있긴 했지만 주전 우익수를 5회에 교체한다는 건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경기 중 부상 등의 징후도 전혀 없었기에 푸이그의 교체 이유에 대해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명확한 이유는 경기 후에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4회 초 두 차례의 무성의한 산책 수비가 원인이 아니겠냐는 게 당시 중론이었다.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푸이그는 2018시즌까지 다저스에서만 여섯 시즌을 보낸 뒤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2019시즌 중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다시 트레이드되어 시즌을 마쳤다. 데뷔 시즌 보여줬던 천재성은 이제 그의 성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메이저리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야수의 성적에 가깝다. 그동안은 놀라운 성적으로 불성실함이라는 약점을 상쇄시켰지만,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약점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푸이그가 아직까지 새 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푸이그에게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다저스 팬의 한 사람으로서 푸이그가 좋은 팀을 찾아 꼭 반등하길 기원한다.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본연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팀이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곳에서 데뷔 시즌에서 보여줬던 야생마 같은 활약을 재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신인 선수가 아닌 메이저리그 7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인 만큼 야구에 대한 진지함도 함께 겸비하는 성숙한 선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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