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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5. 2021

욕망과 직감의 만화경-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세계Ⅰ

-욕망에 들이댄 직감의 만화경 , 컬트지존. 데이비드 린치




돌아온 컬트지존.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Ⅰ. 

“영화가 현실이며 간통이 하나의 관습이다. 

그 나라에선 내 몸이 외부와 섞여 한없이 넓어진다. 

꿈이 내부와 외부의 모든 거울을 깨준다. 꿈조차 사라지고 한편의 시가 완성되었다.”

-『당신의 꿈속은 내 밤 속의 낮』, 김혜순 자서

-초감각 사이키 스릴러『인 랜드 엠파이어(In Land Empire)』 

데이비드 린치 감독 그가 돌아왔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개막작 자격을 시작으로 지난여름 넥스트 플러스 여름영화 축제 참여 작으로 『인 랜드 엠파이어(In Land Empire)』가 드디어 국내 소개된 것이다. 현재는 거장 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개봉이라는 명분과는 그닥 격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명보 극장 단관개봉에도 그의 매니아들들의 지지로 간판을 내리지 않고 롱런으로 상영 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속된 말로 맛이 간 듯 하다 할 만치 몽롱한 취기는 감독의 노쇠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대로다. 때마침 영화계의 동류 이단아 ‘데이비드’ 들도 함께 귀환해주셨다. 내달 15일 개봉하는 데이비드 핀처 미국 최악의 연쇄살인범을 그린 미스터리 <조디악>과 , <폭력의 역사>로 토론토 국젱여화제서 극찬을 받은 데이비드 핀처가 그들이다.

영화는 ‘꿈’이다. 피사의 대상을 일절 그대로 복사해놓은 녹화물이 아닌, 렌즈라는 환영으로 다소간 굴절된 반사광에 현실을 투사해낸, 영상예술이 영화의 본질적 해제라는 말이다. 꿈. 그 중에서도 무의식적 꿈이라는 영화의 주요한 특성을 제시하는 데엔 그 어떤 감독군의 영화보다 데이비드 린치 표(DavidLynch) 영화가 최적으로 적확하다 할 만하다. 지난 해 2006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여하여 감독의 첫 디지털 영화로 세상에 처음 개봉하며 그의 건재와 더욱 공고해진 실험성을 증명한『인 랜드 엠파이어』는 이를 증명해준다. 앞서의 ‘꿈’이라는 단어를 소망이나 바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한 다면 되려 차명적인 오류가 성립돼버리는 ‘악몽으로서의 꿈’을 말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1964~, 미국).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좌절된 욕망과 상처를 보듬을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도피자들이다. 그들은 또 비밀한 퇴폐집단의 악을 추적하거나 시험 당하고 미궁의 미스터리에 걸려들어 이곳이 현실인지, 나는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혼미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린치의 필모그래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호러 물을 감상한 것처럼 두려웠으며 반면 바로 그 불쾌한 이물감이 현기증 나는 흥분과 중독의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음을 고백하곤 했다. 

이처럼 ‘컬트의 대명사’로 통해오던 그가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제기했다. 2006 가을 베니스 영화제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던 자리에 오랜 휴식을 깨고 신작을 발표한 것이다. 포스트모던 영화의 최전방에서 전위적 최면성을 실험하며 영화 팬들에 컬트영화의 미학을 전도해온 감독은 자신의 영화세계의 희소가치와 예술성, 연륜을 공인받기에 이르렀다. 

왕년의 페르소나 로라 던과 위태로운 선병질의 중년 제레미 아이언스가 할리우드의 어두운 속성을 그려낸 근작 『인 랜드 엠파이어』(In Land Empire)(2006) 또한, 인간 심연에의 어두운 본성과 실존의 부조리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추잡한 실상, 욕정, 살인, 추적, 원점회귀 따위의 모양새들이 영화사의 이단아, 악몽의 주술사 따위 악명 높은 꼬리표 붙어 다니던 작가의 필모그래피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여전히 취기가 서려있는 환각적인 미스터리 물이다. 

최근에는 ‘컬트의 어머니’라는 별칭으로 린치와는 쌍생아인 듯 빈번히 비교되곤 하지만 린치보다는 일층 마니아 틱한 아웃사이더 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헤비급 사이키델릭함으로 회자되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감독의 『엘 포토』와 『홀리 마운틴』의 올 봄 무삭제 개봉과 감독의 내한으로 마니아들의 올해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때, 상대적으로 이제 데이비드 린치라는 이름자는 컬트교 교리차원의 아이콘이 아닌, 미국식 작가주의의 거장으로 상식적인 교양명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악몽의 연금술사

-‘데이빗 린치’S 랜드. 광기의 제국을 돌아다보다 

흔히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은 ‘시간의 흐름과 플롯 간에 논리적 개연성이 무시되어 있으며, 기발한 상상력은 현실이 외면하는 원초적 욕망과 죄의식이 빚어낸 그로테스크한 악몽의 스케치를 그린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 그의 영화들은 또 감상자들에게 최면제가 주입된 혼미함과 컬러로 꾼 꿈같은 야릇한 잔영을 남긴다. 기실 영화는 다채로운 욕망과 분열된 꿈속의 자아, 다층의 심리를 기괴하고 스릴러적인 상황 안에서 풀어내는 텍스트들이다. 작품 필모그래피를 일별해보자. 

추상적인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작업은 화가를 꿈꿨던 린치가 미술학습의 일환으로 『여섯 개의 형상들』,『알파벳』, 『할머니』등의 초기 단편 물을 제작하는 데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7여 년의 노력 끝에 드디어 발표된 벌레형상을 한 갓난아기의 칭얼거림, 촌충 비슷한 생명체를 뽑아내는, 신으로 표상되는 우울한 표정을 한 화상 입은 남자, 살아있는 시체인 듯 마비된 노파 등의 기괴한 환영들로 채워진 흥행과 비평 양측 모두에서 참패한 『이레이저 헤드』를 발표한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른 후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호응이 일어 12년 간 장기 심야상영 되며 전설적인 미드나잇 컬트의 고전으로 기록되는 반전을 이루었다. 『이레이저 헤드』는 시인 블레이크가 저주한 산업도시의 부패한 뒷골목이 연상되는 회색빛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기형아로 내려온 신의 어린 양과 기형아를 키우는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싶다는 살해충동과 죄의식으로 분열상태에 빠져 결국에는 본인의 머리가 지우개로 변해버린 기형아의 아버지인 인쇄공의 이야기다. 영화는 이 같은 황당한 희비극 또는 엽기적인 스릴러를 통해 산업사회 인간소외에의 허무를 적시한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공포영화 『샤이닝』 제작 당시에 그가 원하는 분위기의 표본으로 이 작품을 틀어놓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세기 영국의 실존인물 존 메릭의 삶을 재연했던 흑백영화는『엘리펀트 맨』이었다. 할리우드와의 합작으로 광기는 절제된 반면, 어떤 사람보다도 지순한 마음을 지녔지만 코끼리를 닮은 끔찍한 외모로 숨어살아야 하는 은둔자 엘리펀트 맨. 기형의 몸 때문에 괴물취급 받던 그와 유일하게 그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의사와 귀부인의 사랑과 생의 센티멘탈리티를 뭉클하게 풀어냈다. 

이어 프랑크 허버트의 대하 SF소설을 영화화한 감각적인 꿈의 비주얼로, 일부에선 린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3시간에 달하는 70m대작 SF 『사구』가 발표되었다. 이 영화에는 『성스러운 피』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10년 간 오손웰즈와 자신의 아들을 출연시킨 16시간 분량의 대작제작을 준비해왔지만 결국에는 린치의 연출로 낙점되어 후에 ‘질투 때문에 일 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순수와 지성미의 양가적 매력을 뿜어내던 청년 시절 카일 맥라클란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이 작품은 우주시대 별들의 전쟁을 배경으로 중세 고딕 풍의 신비한 분위기, 예언과 전설, 전사의 통과의례와 같은 다분히 만화적이고 낭만적인 소재들로 충격을 선사한다. ‘Epic’스러운 스케일 면에서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외계인들의 기상천외한 형상이나 모래언덕을 만들어내는 모래벌레 씬 따위의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만화작가 이정애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감각적인 SF물이 연상되는 공상과학과 결합된 컬트영화의 교과서다. 

1980년대 컬트영화의 신전에 등재됐던 화제작은 『블루벨벳』이다. 영화는 시골 마을 숲 속에 잘려진 한 쪽 귀가 발견되는 사건을 시작으로 납치된 남편과 아이를 볼모로 아내인 여가수를 협박해 가학적 성행위를 일삼는 마약중독자인 암흑가 두목의 광란의 행각을 그리고 있다. 호흡기를 뒤집어쓰고 성폭행을 일삼는 이 사이코 악당은 여장을 하고 립싱크 무대 쇼를 벌이기도 하며 한 가족의 운명을 손에 쥐고 비틀린 욕망을 추구하는 마조히즘의 파멸성과 극한의 허무, 피폐된 인간성을 보여준 바 있다. 

1990년 발표된 『광란의 사랑』 또한 사랑에 전부를 건 연인-뱀가죽재킷과 진한 패티큐어 차림새로 로큰롤을 즐기며 반항아 기질을 발산하는 룰라와 세일러의 이야기를 라이터와 성냥불의 이미지를 활용한 성적욕망과 광기의 테마로 풀어내어 퇴폐와 격정의 어조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다. 이처럼 린치의 영화들에서 ‘불’이라는 테마는 광기를 환기시키는 주된 시상으로 반복되고 있는 아이템이다.

공포영화와 경찰 시리즈, 공상과학류 장르 모두가 혼합. 믹스되어 있는 『트윈픽스 TV 시리즈』가 시청률문제로 퇴진한 이 후에 감독은 92년 드라마의 시작에서 일 년 전으로 돌아간 극장판 『트윈픽스:Fire Walk with Me)』를 발표한다. 작은 마을에 젊은 여인의 사체가 발견되는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가 딸의 육체를 탐하는 한 가정 내 근친상간의 비극을 파헤친다는 내러티브로 전국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었다. 약간의 시차 뒤에 등장한 『X-File TV 시리즈』는 수사관 데일 호퍼 역의 카일 맥라클란의 신비주의적인 수사관 캐릭터를 모델로 멀더요원을 창조해내는 등 린치의 『트원픽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미스터리 시리즈라는 사실은 영화계 정설로 퍼진 루머다. 

이어『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린치 영화미학의 결정체로 평가되는 수작으로 그 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최근에 새로 펼쳐 내보인 지독한 악몽 한 편인『인 랜드 엠파이어』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지만 음모가 흐르는 불길한 작은 소읍 ‘린치타운’에서 영화제작을 소재로 벌어지는 소름 끼치는 초현실 상황들이라는 점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많은 접점을 지닌 작품이라 하겠다.

               <월간 라운드>  2004.  3월 호. 감독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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