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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5. 2021

참 '힘’에 관한 성찰의 기록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론 Ⅱ.



-‘인류애적 가족주의’라는 휴머니즘 『밀리언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권투에 있어 마법이 있다면

엄청난 인내력을 가지고 시합을 치른다는 것이지


상처가 벌어지는 걸 참고 

신장이 파열돼도 참으면서



그건 누구도 아닌 

자신 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위험한 마술이란다"




-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그리고 있는 정의의 개념부터가 불확실하고 희망적인 미래를 좌절케 하는 비정한 세상. 그렇다면 앞서 밝힌 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연출작들이 한 실존의 삶에서 미완된 필생의 과제들을 마무리 지으려는 스토리텔링을 취하고 있다면 그의 영화 속에서 결국엔 이러한 과오들을 만회하고 업보에의 정화를 가능케 하는 힘의 정체란 과연 무엇이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시대 큰 어른이 되어버린 이스트우드가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인류애적 가족주의와 진정한 우애'인 것 같다. 부언하면 이스트우드식 휴머니즘의 핵심이란 이미 서두에 밝힌 바 있는 ‘가장책임주의’ (『엡솔루투 파워 (1997)>, 『미스틱 리버>, 『무법자 조시웰스(1976)>, 『더티 헤리 4(1983)>와 딸 아들을 둔 늙은 가장이 된 총잡이『용서받지 못한 자(92)>)’의 부성애가 성숙․확대된 '만인에 대한 부성회복과 가족주의'. 혹은 '인간 대 인간 간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인류애적 우정과 사랑' 그 것 말이다. 


이러한 인류애는 지금까지 나열한 이스트우디즘 요소들의 집약이자 감독의 최고역작이라 평할 수 있는 이『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 에 가장 완성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철학적 깊이는 세월에 비례해 농익어간다’는 진실 명제에 따라, 그의 필모그래피들 중 최고의 작품성과 영화철학을 보여주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사실『밀리언 달러 베이비』복싱을 소재로 한 30대 여성 복서(힐러리 스웽크)와 늙은 트레이너(클린트 이스트우드)간의 우정과 꿈과 좌절을 스포츠를 소재로 격정과 오락성, 감동이라는 스포츠물의 요소와 멜로적 요소를 결합해 극적 클리셰들을 갖춘 전형적인 미국 통속 드라마의 한 편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이 질펀히 땀내가 나는 통속멜로에서 주인공인 서른 살 복서지망생 매기는 노년의 외로운 복서 트레이너 프랭키를 만났고 서로를 암묵적인 대리가족, 혈육으로 받아들여 고독을 보듬으며 함께 성장해 꿈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하여 프랭키는 이 대리 딸 메기에게 친딸에게선 '용서받지 못했던-(Unforgiven man)' 원죄적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부여받아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된다. 이는 전작인『앱솔루트 파워』에서의 반목하는 부녀관계에서의 ’아버지'란 이름에의 자격지심을 세월이 흘러 연륜을 쌓은 뒤 승화 해결시켜 놓은 작업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어두운 과거의 탈옥수와 그에게 납치된 어린 왕따 인질 소년 간에 대리부자 되기를 그린『퍼펙트 월드』의 변주이기도 한 셈이다. 새로운 가족 맺기, 부성의 회복,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간의 따뜻한 교감이라는 기본적인 줄기는 두 영화에서 서로 복제처럼 닮아있다. 이러한 혈연을 초월한 새로운 대안가족의 형성은 가족이기주의 아닌 거창하게 말하면 전 인류애적인 우애의 필연적 가치를 더 큰 목소리로 웅변할 수 있는 설정이 된다. 감독은 이제 연쇄적인 피의 희생을 부를 수 있는 허망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권총의 응징의 정의(파시스트적 폭압의 또 다른 이름일 자기위안의 거짓정의-『미스틱 리버』)를 넘어서서 이를 초월하는 지점에서의 미국사회와 헐리웃 영화계의 최대가치가 될 가족주의와 우애를 포교하고 있었다. 


다시『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돌아와보자. 앞서 이스트우디즘의 키워드의 하나로 제시했던 '선악과 운명의 아이러니'는 이 영화에서 더욱 승화된 방식으로 증명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최악의 비참한 파국을 초래한 어찌 보면 서로를 악연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비극적인 관계라 하겠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를 ‘모쿠슈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제 인생 최고의 축복적인 존재가 되기로 한다. 『미스틱 리버』에서 죽음으로써도 용서받지 못하고 오늘의 사건에 고나한 누명까지 쓰며 과거의 실수를 단죄받아야 했던 오해의 ‘원죄’. 그처럼 한 인간의 가슴 깊이 박힌 대못, 패배한 생이 안고 있는 상처를 결국 긴 세월의 진정 어린 자기반성과 간절함, 진정한 회개와 한 인간 생을 구원하는 행위를 통해 이제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이르러 영화의 비극적 내러티브 안에서도 상처를 속죄 받을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종국엔 링 위에서 쓰러져 K.O.돼버린 매기는 링에서도 생의 무대에서도 서둘러 은퇴하게 되었지만 정정당당한 과정 중에서 꿈을 성취해 나갔다.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 진정한 가족의 존재가 부재하던 자신의 절망적인 트라우마를 진정한 모쿠슈라의 획득하게 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에 관한 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할 것이다. 이는 과거 복수와 처단의 표피적인 승패의 논리를 넘어 절망적 현실을 휴머니즘적 가치로 초극했을 때 참된 승리 즉 정화를 체험하게 되는 역설의 승화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탈옥수가 경찰의 총에 맞아 친구가 된 인질아이 앞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마감되는 짧지만 진실했던 대리부자의 인질여행을 ‘완전한 세상’이었다고 명명(<퍼펙트월드>)하며 위무하는 아이러니한 반어적 접근도 바로 이 ‘역설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이처럼 진정한 승패란 현실의 희비극과는 다른 그런 단선적 차원을 초극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선과 악, 강자와 약자 간의 힘의 균형과 아웃사이더들의 함께 살기 등 난해한 삶의 이중성을 통찰하는 영상텍스트이며, 현실에 둘러쳐진 많은 아이러니의 벽을 넘어 외롭고 소외된 영혼들이 절망적 현실 안에서도 꿈을 실현해 가는 중에 진정한 인간애를 꽃피우는 과정의 비경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란,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현답을 건네는 이 시대의 휴먼드라마다. 또 중요한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우회해온 기인 여정의 종점, 종착역에 거의 다아간 ‘참 힘에 관한 성찰의 기록’이기도 하다. 비참한 현실세계와 참혹한 운명의 잔인한 비극 속에서도 함께 할 가족, 혹은 소중한 인연 속에서 사랑을 통한 인간구원과 존엄성 회복의 가능성을 전언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값진 횡재의 영화라 하겠다. 한 감독의 최고 역작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영화세계의 총체라 해도 좋을 이『밀리언 달러 베이비』 에는 ‘이스트우드 식’의 몇 가지 키워드가 함축되어 있다. 


34년 감독인생을 통해 끊임없이 '죄와 정의'의 실체를 탐구해온 그는 이제 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예의 자신의 총잡이의 복수와 처단의 힘의 논리- '무법자의 법'을 수정해 총의 도덕이 아닌 용서와 화해,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 죄의식을 지닐 수 있는 양심으로 적자생존의 삶을 살아가는 처세 식의 ‘힘의 논리’로써가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진정한 승리 즉 ‘자기 존엄(을 달성할 수 있는), 인간 존엄과 인간애’를 포교 중에 있다. '생의 비밀에 깊이 발을 담고 인생의 지혜를 체득해가며 나이 들어가는 광대 감독', '구제'를 논하며 생을 돌아보는 주름진 무법자’ , ‘세월에 따라 숙성해 가는 한 남자의 초상’. 세월이 흘러 우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이제 허름한 체육관에서 예상치도 못했다 건진 이 값진 물건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한 방 강한 펀치로 무법 총잡이에서 작가의 칭호로 돌아온 할리우드의 진정한 승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러한 감독의 영화인생의 궤적을 뒤쫓아보노라면 감득하게 된다. 시간이란 한 인간의 '혈기와 권력’을 회수해 가는 그 만큼 그 보다는 한 급수 더 힘이 센 '휴머니즘적인 철학'과 인격적 '권위'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모양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성숙의 순리적 단계라는 것을. 



저마다 더욱 더 세련되어지기 위해 모던함이란 화두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영화계의 초상일 것이다. 이러한 작금의 격전지 같은 영화판에서 그 기류를 점점 무시하려는 듯 양지의 대척지를 지향하는 이스트우드의 촌스러운 통속 영화 한 편이 젊은 대중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열광케 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바로 이러한 기이한 호응과 예우, 즉 그가 지닌 그 만의 매력은 이스트우드를 거인의 반열에 올리는 정당한 명분이 되는 것이다. 감독 스스로의 아카데미 수상소감 멘트처럼, 무법자에서 노장 시네아티스트로 환골탈태한 이 철이 든 노 장인은 삶보단 죽음에 더 가까울 여든이 멀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 들려주어야 할 말들이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하여 '성숙의 노정'을 보여주는 이 노감독이 가능하면 조금 더 ‘나이 값’의 미덕을 발해주기를, 그리하여 더욱 강력해진 천만 불 급 감동펀치를 날릴 거물을 출산할 수 있기를 요망한다. 그의 건재와 차기 'ten million dollar baby’의 발표를 응원해본다. 




<시네티즌. 20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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