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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5. 2021

철학적인 음악가가 천재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

가슴을 저격하는 프라이즈너의 탐미적 영감. 키에슬로프스키 음악 패르소나


키에슬로프스키 음악 패르소나 Song For The Unification Of Europe

음악이야기를 해보자.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인간은 결코, 혼자가, 홀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류애를 전하고 있는’ 이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대해 <음악>을 탐구하는 영화라고도 언급한 바도 있던 것이다. 영화 전편을 관통하는 심연을 휘젓고 뒤엎는 듯한 성가적 장엄함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할 것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외에도 일명 ‘삼색 시리즈’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등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을 접한 분들은 색채감 풍부한 영상 위로 흘러넘치던,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기 힘든, ‘가슴을 저격하는'이라 표현할만한 장중한 멜로디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듯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으시리라. 이들 영화를 관통하며 영상에 벅찬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신비한 음악들의 작곡자는 바로 폴란드 음악가 ‘즈비그뉴 프라이즈너(Zbigniew Preisner,1950년) 다. 같은 국적의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작품을 많이 작업하며 현대의 낭만파 세미클래식 음악들을 선보여운 프라이즈너는 듣는 이의 감성을 저격하며 '음악의 종교철학적 기능'을 보여주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거대한 하나의 영혼으로 존재한다며 인류의 공존을 속삭이는 키에슬로브스키표 영상시들, 그리고 그 속을 흐르는 프라이즈너의 철학적인 음악들.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에서 깊은 울림과 떨림을 경험하는 것은 아마도, 그 안에 녹아있는 인류애가 청자들의 감성에 전해지는 때문은 아닐까.)) 

 독학으로 음악을 배운 그는 철학을 전공했던 이력 덕분인지 무의식적인 심연의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해내는데 천재적인, 차별화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프라이즈너의 음악을 듣노라면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음악의 철학적 기능을 깨닫게 된다. 도스토에스프키 적인 인간 심연에의 깊은 천착이 담여있다. 이 진지한 음악인이 마찬가지로 지극히 종교적인 거장감독 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를 만나 평생의 파트너가 되어 그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되었던 것, 철학적인 음악가가 우연과 인연의 신비와 종교성을 천착하던 천재 영화감독을 만난 것 또한 어쩌면 신비한 인연에 의한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감독 자신이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음악을 탐구하는 영화’라고 밝혔던 것처럼, 키에슬로프스키의 대부분의 음악작업을 맡았던 이 프라이즈너에 의해 그의 영화들은 일면으로는 ‘음악’을 탐구하는 영화들이 되었다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블루>의 각본을 썼던 폴란드의 여성감독 아니예츠카의 <유로파 유로파>(1990), <올리비에 올리비에>(1992), <비밀의 화원>(1993),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1992), <거미여인의 키스>로도 유명한 헥토르 바벤코 감독의 몇몇 영화에서 비장한 음율의 음악작업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음악세계를 구축했다. 심금을 울리면서도 품격있는 음악들로 <버드스트리트의 섬>(97)로 세자르 영화제 음악상 <레드>(94)-LA비평가협회 음악상, <올리비에 올리비에>,<비밀의 화원>(93),<블루>(93) 등으로 7개의 영화음악상을 수상했다. 크쥐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사망하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대규모 음악추모곡 '나의 친구를 위한 레퀴엠'이라는 음반을 발매해, 전 세계적으로 15만장이 팔려가기도 했다. ‘라크리모사 Lacrimosa’와  ‘피아노를 위한 10개의 소품’ 등 클래식 음악작업까지 영역을 넓혀가고도 있다. 

 삼색 시리즈 OST에서 가장 대표적인 곡은 단연 한 여성작곡가의 인류애적 예술혼을 그린 <블루>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주제곡인 오케스트라 성악 ‘Song For The Unification Of Europe’은 영화가 만들어진 세기말, 새 천년 유럽의 대통합을 기원하는 한 편의 '송가'로, 드라마틱한 곡 진행이 지극히 장엄하게 느껴지는 대곡이다.  

 그리고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프라이즈너는 짙은 갈색 톤의 심미적인 영상에 , 심연을 휘젓는 고색창연한 성가 풍 클래식 곡을 덧칠해 생명을 불어넣었다. 몽환적인 인형극 장면에 흐르던 'The Puppet(인형)' 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시리즈가 연상되는 명상적인 관악기 연주곡. 이 외에도, OST 수록곡 전곡이 주옥같다. 

영화 속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솔리스트인 여주인공이 절창을 뽑다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 문제의 곡은 ‘반덴부든마이어 콘체르토 E마이너’(VanDen Budenmayer concerto e minor) 

소프라노버전.. 실제로는 폴란드 여성 성악의 신성 목소리인 이 곡은 가히 아름다움의 끝자락에까지 가 닿아 보겠다는 듯한 처연한 음색을 들려준다. 탐미적인 영상에 아름다운 장면들마다 이 반덴 부든마이어 의 콘체르토의 다양한 변주가 흐른다.

이곡을 비롯한 현대의 낭만파 클래식이라 할 프라이즈너의 곡들은 <블루>,<레드> 편에서도 가상의 18세기 폴란드 작곡가 반덴부든마이어의 곡이라고 언급되며 재등장한다. 때문에 영화가 첫 개봉했던 1991년 경 당시, 국내 클래식 FM에는 이 미스테리한 작곡가를 실제 인물로 착각한 이들의 문의가 쏟아지기도 하는 등의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있었다. 

여러 종류의 악기와 성악이 혼합되어 처연한 신비성과 미묘한 그리움이 부여된 클래식컬한 관혁악 오케스트라는 정신을 홀린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주옥같은 사운드 트랙 속 심연을 휘젓는 단조음악의 성가적 장엄함은 두 명이자 한 명인 통합과 떨림의 인류애의 맥락으로 수용될 수 있다. 



자신의 말대로 ‘클래식도, 영화음악도 아닌', 영감으로 창조해낸, ’야릇하고 부드럽고 비장한 울림'을 통해 충격적인 청각 체험을 선사한다. 사색적이며 장중한 그의 선율과 함께 한다면 당신도 어쩌면 ‘영혼이 울린다’는, ‘탐미적’이라는 표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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