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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2. 2023

여인의 얼굴처럼 부드러운

이는 여인의 얼굴같이 부드러운 저녁...

박명 위에 떠 있는 황혼의 그윽함은

상처 입은 마음 위에 가는 실 되어 내린다.     

정신적인 초록빛.... 핏기 잃은 장미화....

푸른기 도는 서방에 내리는 밤은

아픈 신경에 더없이 부드러운 안식을 뿌려준다.     

검은 바람과 납빛 안개의 달에

마지막 꽃잎들은 떨어지고

반음계의 아름다운 하늘 빛깔은 숨이 넘어간다.     

옛 향기 감도는 고관 옆을 쫓아

나는 내 손가락에서 매혹적인 꽃 냄새를 들이마신다......  

             

오늘은 시로 문을 열었습니다. 프랑스 시인 알베르 사랭의 <저녁>이라는 시 중의 부분이었구요. 

시인은 황혼을 이렇게 표현해요. 

'상처 입은 마음에 가는 실로 스치는 여인의 얼굴처럼' 부드러운 저녁이라...     

정말이지 오늘의 이 6시는 얼마 남지 않은 봄이 떠나기 전에 한껏 예의를 차려서 

인사라도 건네듯 그렇게 섬세하고 우아한 봄날의 저녁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여유로운 맘으로 저녁 시간만의 위안과 부드러움을 한껏 만끽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상처 위 가는 실처럼 내린 황혼' 뒤에 

곧 밀물인 듯 어두움이 밀려들겠죠.      

그렇게 '푸른기 도는 밤이 내리면'

그 '아프던 신경에 더없이 부드러운 안식을 뿌려줄 것'입니다.     

어둠의 모포가 우리들 흉터를 따뜻하게 덮고

부드럽게 핥아 줄 겁니다.......... 


비 갠 오늘 한참동안 고갤 들고 창 밖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그러려니까 한 가지 예쁜 상상, 떠올랐어요.     

어쩌면 하늘은 공중에 펼쳐진 파란색 도화지나 캔버스. 아니면 푸른 스크린 같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 같기도 하다는 생각 말이죠. 그렇다면 밤이 되면 하늘은 바닷 속 저 깊은 심해가 되겠죠. 또 직사각형 창에 담긴 하늘은 세상에서 제일 큰 수족관이 되구, 그럼 구름은 어느덧 살랑 살랑 헤엄치는 흰 물고기 떼가 돼있겠죠. 때론 바람이 쓰다듬어서 열정이 붙기도 하고 수줍어진 햇님이 얼굴 볼을 빨갛게 붉힐때가 황혼무력 붉은 물이 드는 게 아닐까.     

이제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끝 곡이 흐를 즈음이면 어느새 하늘엔 저녁놀은 썰물로 쓸려가고 신기하게도 온통 흑빛 물감 덧칠되어 있을텐데요. 왜 그거 있잖아요. 학창시절 서예시간에 정갈하게 갈은 먹이 한지에 스며들 듯이요. 그렇게 어둠 녹아드는 저녁 하늘.      

이렇게 가만히 하늘을 보려니까 자연의 경이로움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일상 밑그림을 채색하는 저녁 스케치. 이런 수묵화 속 풍경 같은 순간. 올드 팝의 진득하고 편안한 멜로디로 담백하지만 웅숭한 바탕색을 칠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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