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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2. 2023

물들어 간다



요즘 '저녁놀이 참 예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 몇 계세요.

요 며칠, 장미넝쿨 위로 비치던 끝물 봄 노을은 불타는 붉은 빛은 아니었지만요. 

은은한 주홍빛이 옅게 퍼지다가 황톳물 들이는 면천을 빨아 행굴 때 붉은 색물이 빠지듯이

또 그렇게 시나브로 사그라지던데요.     

그런데요. 사람들은 흔히 이 노을에 대해서는 소멸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죠.

'소멸하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찬란히 빛을 발하는' 자연현상이 '노을'이라고 말이죠. 그치 만요. 노을은 꼭 소멸의 표정만을 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노을은 새로운 세계라는 뜨거운 탄생의 막이 열리는 풍경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시인은 이런 저녁황혼을 '부활의 신당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러면 뜨거운 황혼은 밤이 오고 새 아침 찾아오는 '재생의식'의 의미를 지니게 되죠.      

노을이 그런 것처럼 실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해버리는 것이란 존재치 않는 게 아닐까요.

지금 이 저녁 보내면... 낮잠만큼이나 부드러웠던 봄날이 더 멀어질 테구요. 매혹적인 여름이 한 발 다가오겠죠. 와인 빛 장미도 다 질 테고, 그럼 또 그 옆자리엔 참외 빛 해바라기가 강건히 키를 자라고 있을 테고요. 하지만 매일같이 춤추던 지구가 또 널찍하게 한 바퀴 태양주의를 공전하고 나면 꽃 진 자리 그대로 제철 꽃들은 다시 고은 얼굴 드러냅니다.      

어둠이 차오를 이런 시간 저녁 풍경.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세상은 돌고 돈다'라는 말에 고개 끄덕여져요.     

사방팔방 분주하게 살아다가 매일같이 이 시간이면 꼭 다시 만나게 되는 분들

소중한 여러분 가슴에 노을처럼 잔잔히 물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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